신랑 신부만 부러워하면 됐던 결혼식, 이젠 하객들도 쌍쌍이다.
대체 왜 저들은 쌍쌍이 오는 걸까? 신랑, 신부의 친구는 한 명뿐이면서. 축의금 일인분으로 식권을 두 개 타내서
본전을 찾겠다는 심산인가? 축의금이란 게 결혼 비용에 대한 곗돈의 의미도 있거늘, 본인의 본전을 위해 신랑, 신부의 본전을 방해하다니.
아니면 하객 모집이라도 하려는 건가?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이
함께 등장하는 법이 없다. 꼭 결혼 이야기가 얼마간 오간 뒤에야 등장한다. 그러고서는 본인들의 결혼 소식을 알린다. 결혼식의 흔한 인사말 중
하나가 “다음엔 누구누구 결혼식에서 보면 되겠다”이다. 그래, 본인들도
언젠가 남의 결혼식에서 하객 모집을 할 테니까. 미리미리 서로 돕는 거지.
내 말이지만 당최 뭔 소리냐. 당연히 황금 같은 토요일, 데이트를 할 시간에 친한 친구의 결혼식도 가야 하니 같이 오는 걸 선택한 거겠지. 애인의 친한 친구들에게 인사도 좀 드리고 말이다. 이렇게 비뚤어진
생각을 갖는 건…,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쌍쌍이니 어느 자리에 낀단 말인가. 쌍쌍바는 갈라먹으라고 있는 건데[1],
우이쒸.
결혼식의 3대 요소는 축의금,
식사, 사진 촬영이다. 축의금을 내야 명부에
내 이름이 남고, 내가 왔다간 증거가 남는다. 그래야 나중에
페이백(pay back)도 받는 거니까. 그리고 축의금을
냈으니 식사를 안 하면 섭하지. 안 그래도 비싼 뷔페를 웃돈까지 얹어 주고 먹는 느낌인데 말이다. 또한, 축의금 명부가 장롱 속 깊숙이 들어가 있을 것을 감안하여, 거실 벽에 걸릴 사진에도 얼굴을 남겨주는 게 중요하다. 신랑 신부가
내가 다녀갔음을 매일 알 수 있도록.
그러니까 축의금은 이미 냈고 사진 촬영 시간은 아직 남아 있는 지금, 식사가
가장 중요하단 말이다. 거대한 뷔페를 홀로 헤쳐 나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학부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의 결혼식에 와서, 축하는 고사하고
이런 생각이나 한다. 축하를 안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식장
입구에 서 있는 신랑과 악수나 한 번 하려고 다가갔지만, 갑자기 어른들이 떼로 몰려오는 통에 눈인사나
주고받고 말았다. 나와 눈 마주친 걸 기억이나 할까? 이따
사진을 꼭 찍어야겠다.
결혼식장은 생각보다 으리으리했다. 얘네 집이 이렇게 잘 살았나
싶다. 그저 함께 숙제에 허덕이다 술이나 마시던 친구였는데. 무슨무슨
국회의원의 화환도 보인다. 부모님이 잘 나가시나 보다. 앞으로
페이스북 좋아요라도 신경 써서 눌러줘야 될 것 같다. 사시사철 정장 한 벌로 모든 경조사를 때우는 나로서는.
“정원아!”
누군가 나를 부른다. 뒤를 돌아봤다. 아… 아… 쟤 이름이 뭐더라. 제길. 무슨… 뭐더라. 가운데 글자가 ‘재’였던 것 같기도 한데… 재훈? 재혁? 재식? 쟤가 이씨였나, 박씨였나… 분명 얼굴이 익숙한데, 뭔가 친했던 것 같은데… 제기랄, 쟤를 어디서 봤지? 근데 학부 동기 맞지? 선배 아니지? 나랑 동갑 맞지? 아오. 형이면 존대말 써야 하는데… 그래 근데 뭔가 동갑 같긴 하다. 일단
대답부터 해야겠다.
“어, 안녕. 오랜만이네.”
“야, 너 결혼식 볼 거야?”
“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어.”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식권 받았지?”
“어, 그러자.”
딱히 반발이 없는 걸 보니 동갑 친구가 맞는 것 같다. 휴우.
말없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이름 모를 친구와 마주 앉았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알 것이라 생각할 테니 스스로 이름을 말해주지는 않겠지. 수업을 함께 들은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혼자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번에도 친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음식 괜찮네. 육회가 냉동이 아닌 것 같은데?”
다행히도 내 접시에도 육회가 있었다. 한 입 먹어봐도 되겠냐는
말을 하지 않고도 받아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 그러네. 이
뷔페 비싸 보이는데.”
“여기 식장도 되게 비싸 보이는데. 형택이가 잘 사는 걸까, 제수씨네 집이 잘 사는 걸까?”
“아까 형택이 쪽에 무슨 국회의원 화환도 보이던데.”
“우와. 형택이 다시 봐야겠네. 친하게 좀 지내야겠다.”
잠시 침묵. 머릿속에 지식을 넣으면서 사회성이 빠져나갔는지 대화
거리를 못 찾던 찰나, 이번에도 친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넌 요즘 뭐하고 사냐?”
“나? 대학원 갔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대학원에 있다’는 말이 함의하는
수만 가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반면,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면, 아무리 자세히 설명한다한들 “이야, 박사님이네. 나중에 교수 되는 거야?” 같은 소리나 할 테니까. 갓 치킨집을 차린 부부에게 “이야, 사장님이네. 이제 떼돈 버는 거야?”라고 하는 거나 진배없는 소리. 하지만 이야기는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 이제 몇 년차야?”
“4년차야.”
“그럼, 석사 2년에다가…
이야, 바로바로 들어갔네. 이제 곧 졸업하는 거야?”
아, 제발, 좀. 고3에게 “내년에 서울대 갈 수 있는 거야?”라고 물으면 좋아할 것 같으냐고. 가뜩이나 성적도 안 좋은 학생에게
말이야. 이름도 모르는 친구에게 험한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 태연한
척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게 내 맘대론 안 되지. 넌 요즘 뭐하고 사는데?”
“아, 난 요즘 그냥 조그만 회사에서 개발자해. 야, 근데 너 진짜 개발자는 하지 마라. 허구한 날 야근밖에 안 해.”
야근이라. 따지고 보면 야근은 지금도 하고 있다. 물론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연구실에
있는 시간만큼은 절대적으로 많으니까. 대기업으로 간 선배도 허구한 날 야근하는 것 같던데. 연구소들도 그렇게 야근이 많다며? 대학 교수는 또 어떻고. 우리 교수님을 봐, 밤 9시
이전에 퇴근하는 걸 본적이 없는데. 심지어 모든 이공계인의 최종 정착지라는 치킨집도 대부분 새벽까지
하니까 매일 야근하는 셈이다. 이공계인의 숙명인가?
“대기업도 다 야근한다던데 뭐, 이 바닥에 야근 없는 직업이
어디 있어.”
“야, 그래도 대기업이 나아.
중소기업은 완전 을이야, 을. 대기업 쉬키들. 맨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어휴, 말도 마.”
친구의 연설이 계속 되었다. 나는 입을 먹는 데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접시를 비웠을 때, 친구의 이야기에 잠시 틈이 생겼다.
“나, 좀, 더
가져 올게.”
음식을 가져오니 친구도 그새 다 먹었는지 자리에 없다. 곧 접시를
채워오겠지. 비싼 예식장이라 그런지, 식당에도 텔레비전이
달려 있어 예식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주례사가 막 시작된다.
“신랑 양형택 군은, 꿈꾸는 대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로서, 사성전자에서 근무를 하다가 이번에 미국 미시간 대학교로 입학까지 하게 된 훌륭한 신랑감이며, 신부 이지은 양 또한, 한나라 대학교를 나오고, 신랑과 같은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훌륭한 재원입니다. 본 주례는
신랑의 아버님이신 양회성 사장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지가…”
캠퍼스 커플도 아닌 다음에야 주례사에 학벌이란 웬 말인가. 회사에서
만난 커플이라 들었지만 굳이 회사 이름을 언급한 것도, 결국 떠벌리기일 것이다. 결혼은 두 사람뿐만이 아닌 두 가족의 결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신랑 아버지 이름을 “사장님”이란 호칭과 함께 언급하는 것도 이상했다. 주례사는 산으로 갔다. 결혼이 두 가족의 결합인지, 두 정치경제 세력의 연합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형택이, 저 친구는 참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는데. 하긴, 이 결혼식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거겠어, 주례 선생님도 아버지께 등 떠밀려 모셔온 거겠지.
친구가 돌아왔다. 대뜸 내 접시에 고기 두어 점을 내려놓는다.
“이거 소고기 스테이크래, 먹어봐. 굽는 족족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 가져가서 겨우 몇 점 집어왔어.”
나도 두 번 들렸지만 항상 덜 익은 상태였던 소고기 스테이크. 친구의
접시에도 네 점쯤 올라 있는 걸 보니, 그도 누군가에게 ‘아저씨’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공식 질문이 나왔다.
“넌 결혼 안 하냐?”
“대학원생이 무슨 결혼이야.”
“왜, 내가 아는 사람은 대학원생 때 결혼 하던데.”
그래, 사실 대학원생 때 많이들 결혼 하곤 한다. 우리네 미래야 어차피 불확실하고, 모아둔 재산도 없는데다, 미래에도 재산을 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대학원생
시절이 차라리 처가 쪽 승낙을 받기 쉬울지 모른다.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왠지 현재 상태보다는 가능성을
봐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생각보다 빨리 본질에 접근했다.
“여자친구는 있고?”
“그럼, 있지. 어딘
가에 살아 있겠지. 내 나이가 서른하난데, 여자친구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면 좀 그렇잖아.”
“푸하하하. 그래, 그래. 이상하고 말고. 푸하하하.”
이름 모를 친구와의 참을 수 없는 어색함이 못 견뎌져 던진 개그가 생각보다 먹혔다.
할 이야기가 떨어졌는지 친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몇몇은 학부 동기가 확실하다. 이 친구도 내 예상대로 학부 동기가 맞나보다.
누구는 사성기업에 들어가서 벌써 진급까지 했다더라, 누구는 사업을
했는데 대박을 쳤다더라, 누구는 외국에서 벌써 박사 학위를 땄는데 교수 임용이 됐다더라, 누구는 엄청 예쁜 여자랑 결혼을 했다더라, 누구는 속도위반을 해서
벌써 애가 있다더라…
다른 사람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골라 보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과정은
없이 결과만 보게 된다. 물론 그들도 많이 고생했겠지마는, 내게는
자고 일어나니 갑부가 되어 있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열등감이 차오른다. “그래?”, “그렇구나.”, “대박이네” 같은 ‘여자 친구와 대화하는 법’에 나올 만한 대답들을
계속했더니 피곤하기도 하다.
축가를 마칠 때쯤, 결혼식장으로 올라갔다.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 식장에서 나오면서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온 여자 친구를 소개받기도 하고, 청첩장을 받기도 했다. 요즘 뭐하느냐는 질문과, 졸업 언제 하냐는 질문,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도 받았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서, 별로 되묻지 않았다. 그대가 나와 같다면, 내 질문도 곤란해 할 것이기에. 혹여나, 나에게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안 준 거라면 미안해.
나는 언제 결혼을 하게 될까? 결혼을 하려면 돈과 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돈이 없다. 교수님이 생활비와 학교 등록금만큼은 인건비를
주시지만, 한 밑천 마련할 정도는 아니다. 그 이상을 벌려면
결국 프로젝트를 더 해야 하고, 그러면 졸업이 늦어지니까. 먹고
살 만큼만 벌면서 빨리 졸업하는 게 나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돈이 없다. 월세 보증금할 정도는 모아뒀지만, 그나마 서울 지역은 안 된다. 예식장 비용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축의금으로 퉁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예물이니 예단이니 하는, 나는
차마 생각도 못 해보고 있는 것들도 있다더라.
또, 결혼을 하자면, 연애를
해야 할 텐데, 연애에 돈을 쓰자니 결혼할 돈을 못 모은다. 이
무슨 괴상한….[2]
그렇다고 졸업을 하면 돈이 생기는가. 눈 딱 감고 대기업의 실리콘(반도체의 구성 물질)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돈은 좀 벌 것이다. 하지만 ‘사오정’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한창 애들 학원비 댈 나이면
나는 다른 직장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정말 운이 좋아 끝까지 버티면
60세, 그러면 내 아이가 지금의 나처럼 결혼자금을 걱정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차마 온 힘을 다 쏟아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원망할 수는 없을 테니,
홀로 결혼만 늦추고 있겠지.
물론 돈이 없어도 사랑만으로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처가에 돈이 많아서 맨몸으로 와도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여자가 없다. 내가 자웅동체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여자는 어디서 만날 것인가. 어차피 이름조차 비어 보이는
공대에 누가 있진 않고, 소개팅을 한다 치자. 그러면 어쩔
것인가. 공대 학부 과정 4년, 석사 과정 2년, 박사
과정 4년 동안, 대화해 본 여자라고는 공대 여자들뿐인데. 공대 여자의 여성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절대 남초 환경에
적응하여 모든 공대남성적 행동을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공대 남자들과 함께일 땐 그들과 유사한 양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까지 지녔다. 가끔 그들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음식 사진이나 메이크업 정보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낯설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연애 기술만 없으면 다행이다. 자신감도 없다. 본업도 쩔쩔매면서 무슨 연앤가 싶다.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고시생과 같으면서도, 끝난다고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또 고시생과 다르다. 거기에 더해서 졸업 후에 해외로 포닥[3]이라도 1~2년 가게 되면, 이것은 학군단보다도 못한 신분이다. 이 모든 걸 극복할 만큼 나만을 사랑해줄 여자를, 소개팅으로, 서른한 살 먹고, 만날 수 있을까?
박사과정만으로도 버거운데.
어렸을 땐, 대학 가면 다 연애하는 줄 알았고, 대학 졸업하면 다 취직하고 결혼하는 줄 알았다. 딱히 환상도 아니었다. 어른들이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연애고 결혼이고 너무 힘들다. 날마다 텔레비전과 페이스북에 떠도는 ‘남자는 이래야 해’들이 나를 옥죈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며 점잖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도 나를 깜깜하게 한다. 뉴스에 보면 허구한 날 집값이 엄청 떨어져서
부동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데, 여전히 내가 가진 돈으로는 택도 없다.
취업도 버거운 시대에 연애는 스펙이 되었다.[4] 홑몸
가누기도 어려운 시대에 결혼은 정상인의 척도가 되었다. OECD 평균을 향한 사회적 목표가 되었다. 잔인하다.
6.25 전쟁 통에도 사랑하고 결혼했다며, 바쁘다고
연애를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사람들도 있다.[5] 하지만 이것은 과학적인 유추가 아니다.
두 가지 사실이 있다. “6.25
전쟁 통에도 사랑하고 결혼했다.” 그리고 “요즘 청년들이 연애하기 힘들어 한다.” 여기서 흔히들 내리는 결론은 이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약해빠졌다.” 하지만, 다른 결론을 유추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이 6.25 전쟁 때보다 안 좋다.”
물론, 6.25 전쟁 때는 총칼과 포탄에 의해서든,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해서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선 어떤가? 상대방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전쟁 통에 무슨 조건을 따지나. 먹을 것이 귀한데 무슨 혼수를 셈하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무슨 결혼 시기를 가늠하나.
하지만, 지금은 소개팅 한 번 할라 쳐도 외모, 나이, 학벌, 성격, 센스 자세히도 따지고 든다. 본인들은 사랑으로만 만나더라도 상대방
부모님 눈초리가 있기에 통장 잔액을 채워놓아야 한다. 그러자면 결국 스펙을 쌓아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진급을 해야 하고…. 평균 수명 80세 시대[6]는
연애와 결혼을 준비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한경쟁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니 졸려온다. 안 입던 양복을 하루
종일 입어서일까, 잠시 잔다는 게 저녁 무렵까지 자버렸다. 밍기적
대다가 밥을 먹으니 해가 져 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이렇게 또 졸업은 하루 멀어져 간다. 하루하루의 연구가 쌓여서 논문도 만들어지는 것일 텐데.
나는 결혼식에 왜 갔는가. 결혼한, 커플이 된, 잘 나가는 친구들 얘기에 열등감을 증폭시키러 갔는가. 오늘 결혼한 애는 유학을 간다고 했으니 어차피 내 결혼식에도 못 올 텐데. 물론, 내 결혼식이 있긴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그냥, 갑자기, 논문이
읽고 싶어진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내일도 일요일이니까. 학구열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논문을 읽을 때의 그 머리 회전을 느끼고 싶다. 논문 하나 집어 들고 침대에 가서 엎드렸다.
[1] 연구실 후배인 ‘김종율’군의 표현임을 밝힙니다.
[2] 곽백수, “가우스전자 234화 차 사지마”, 네이버웹툰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335885&no=236
[3]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더 나은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4] 김자현, “연애, 마침내 ‘스펙’이 되다”, 한겨레21
제1000호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6496.html
[5] 2014년 1월 30일 jTBC 썰전 49회에서
김구라(http://www.tving.com/vod/player/S005199787)가, 그리고 2014년 5월 21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376회에서 배철수(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504266)가
이런 논조로 이야기한 바 있다.
[6] 구글 공개 데이터 ‘기대수명’ 부분 ‘대한민국’ 데이터를 보면 2012년 신생아 기준 기대수명이 81.37년이다.https://www.google.co.kr/publicdata/explore?ds=d5bncppjof8f9_&met_y=sp_dyn_le00_in&idim=country:KOR&dl=ko&hl=ko&q=%ED%8F%89%EA%B7%A0%E
#12. 창의력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의 탄생>[1]이란 책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13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관찰, 추상화, 감정이입, 모형
만들기, 변형, 통합 등등.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창의적인 생각들의 13가지 분류일 뿐이다. 예를 들면, 아이폰은 컴퓨터(정확히는
아이팟)와 전화기를 합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통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와 ‘전화기’를 통합한 것이 핵심이다. 아무거나 통합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현대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도 책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다.[2]창의력이야말로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먼저 기술과
테크닉을 가져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한다. 아이디어는 공기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하면서
또한 행운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세 줄 요약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을 익혀라. 아무 거나 마구, 계속 시도해봐라. 새로운 게 하나쯤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언제 나오는 것인가?
카이스트 한동수 교수는 ‘느긋한 몰입’을 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강조한다.[3]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바쁘게 일을 하거나, 게임에 열중할 때 뭔가가 생각날 리는 없지
않은가.
공식을 만드는 데 공식은 없다. 새로운 것이 나오는 데 정해진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공식을 대입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창의적 활동은 아니지 않은가. 정해진 방법대로 생각해서 나온 것을 새롭다고 보는 것도 좀 이상하다. 물론,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그랬듯이, 새로운 생각들을 정해진 방법으로
분류해 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발명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4]거나 ‘창의력도 노력하면 키워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면 더 많이 커진다.’[5]고 하는 사람도 있다. 창의력을 훈련할 수 있다는 책도 나온다.[6] 다분히 신자유주의적인 메시지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새로운 생각은 해보았을 것이다. 쓸모가 없었을
뿐이지. 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더 새로운 생각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더욱 기괴했을 뿐이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마음먹을 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수많은 예술가들이
슬럼프를 겪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면, 창의력에 대한 수많은 책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주제의 책이 나오고, 계속해서 팔리기까지 한다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데 대한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과학자에게도 뮤즈[7]가
필요하다. 뮤즈를 향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카페에서
우아하게 생각에 잠겨도,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느긋한 몰입을 해도, 산책하며
찬바람에 머리를 식혀도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뮤즈가 속삭이고 떠난다. 그 순간, 누가 더 귀를 기울이고 누가 더 재빠르게 받아 적어내려
갔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뮤즈는 원래 학문과 예술의 신이라고 한다.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신과 거리가 먼 ‘과학’이란 분야에서 그리스 신화를 끌고 들어온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70억 인구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내는 것이, 결코 나만의 능력으론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밤하늘을 보며 우주 끝을 상상할 때 같은,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그려낸 그런 막막함이 나를
짓누른다. 기도할 대상이라도 필요하다.
지도교수님께서 도와주지 않느냐고? 물론 도와주시긴 하지. 하지만 교수님이 명확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밝혀내야 연구다.
그리고 난 마침내, 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났다.
침대를 뒹굴며 논문을 읽던 중이었다. 공유캐시메모리, 그러니까 탕수육 나눠 먹기에 대한 논문이었다. 지난번에 발표했던
논문[8]은 한 접시의 탕수육을 정해진 비율대로 미리 나누어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기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한 접시의 탕수육을 어떤 비율로 나누어 먹어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풀었다. 반면, 지금
읽고 있는 논문[9]은 한 접시의 탕수육을 미리 나누어 놓고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정했다. 현실적인 가정이다. 요즘 팔고 있는 컴퓨터의 대부분에도 공유캐시메모리를
지정한 비율대로 나누어 놓고 사용하는 기능이 없으니까. 대신, ‘식탁이
두 개 이상이고 각각 한 접시의 탕수육이 놓였을 때, 사람들을 어떻게 앉혀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푼다. 결론은, 한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먹는 양 평균을 비슷하게 맞출수록 좋다는 것이다. 많이
먹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있으면, 한 곳엔 탕수육이 모자라고 한 곳엔 탕수육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제 실험 부분을 읽어볼까 하는데,[10] 문득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로 향했다. 몸의 노폐물을 내보냈다. 그 순간, 뮤즈가 내게 찾아왔다.
몸이 더 정결해졌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난 적이 있다.
잠시간 가만히 뮤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들은 것을
까먹지 않으려 급히 손을 씻고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물기는 웃옷에 대충 비빈 뒤 메모장 프로그램을
켜서 메모를 시작했다.
‘cache 파시텬이 있으먄
cache thrashing하는 프로그램과 cpu ㅑㅤㅜㅅ두퍛ㄷdin 프로그램을 똑같이 취급할 수 이싸.’
오타를 바로잡고, 다시 한 번 탕수육으로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탕수육을 미리 나누어 놓고 먹는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을 식탁에
앉힐 때,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사람과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사람을 똑같이 취급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도 조금만 주는 것이 가능하니까. 따라서 이 경우엔
사람을 식탁에 앉히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내가 요즘 연구해보려고 했던 것은 cache partitioning (탕수육을 미리 나누어 놓고 먹는 방법)이
있을 때 스케줄러(사람을 식탁에 배정하는 방법)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지에 대한 것이었다.[11]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생각해본 것이다. 스케줄러를 cache partitioning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아직 뮤즈의 속삭임을 끝나지 않았다. 계속 적어내려
갔다.
1. 독립적으로 연구되어 온 cache
paritioning & cache-aware scheduling
2. 여러 가지 프로그램 조합에 대해서, 최고의 cache-aware schedule과, partitionig이 있을
때 schedule 비교. 그리고 두 개의 성능 비교.
3. 아이디어: cpu intensive와 cache thrashing을 대충 나누어 놓고, 나머지 cache fitting을 분산시키면 됨. (cache-aware
scheduling과 차이를 보임. 프로그램 특성 파악은 대충 cache miss ratio로 하면 될 듯)
4. simics+gems 써서 실험. quad-core? intel nehalem like?
그럴듯하다. 연구 동기 부분의 실험도 있고, 아이디어도 간단하지만 기존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실험도 가능할
것 같다. 당장에라도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빨리만
하면 여느 저널에 출판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나마 상상의 나래가 행복하다.
사실 그리 대단한 생각은 아니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도 아니고, 하다못해 상품으로 팔릴만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잘하면 논문은 되겠다.’ 정도다. 논문이 된다 한들 우리가 사용하는 중앙처리장치(CPU)나 운영체제가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까. 물론, 현대의 모든 발전은 논문에서 시작한다. 단지, 그 모든 발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논문이 나오는 것이 문제다. 지금
내 아이디어는 그 발전에 기여할만한 것까진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내 아이디어는 아직 증명된 바가 없다. 물론 사고실험[12] 결과로는 잘 될 것만 같다. 그렇지만, 석사 2년, 박사 4년 해서, 약 6년 동안 해봤는데, 사고실험은 대부분 틀렸다.
하지만 가슴이 뛴다. 왠지 이번에는 논문이 될 것만 같다. 이제껏 수많은 실패를 했으니, 왠지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을 것만
같다. 도전해보고 싶다. 졸업하고 싶으니까. 아직은 박사를 꿈꾸니까.
월요일, 점심때쯤 연구실에 갔다. 복도에서 교수님을 마주쳤다.
“잠깐 시간 돼? 연구하던 거 얘기 좀 할 수 있어?”
평일 일과 시간에도 시간이 되냐고 물어봐주시는, 참 좋은 교수님. 대학원생이 교수님의 부름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간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할 말이 없어서. 하지만
오늘은 할 말이 있다. 당당하게 교수님 방에 따라 들어갔다.
(여기부터 전문용어 압박 주의. 늘
그렇듯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cache partitioning이랑 scheduling이랑 엮어보겠다고 한 거, 좀 생각해봤어?”
“생각을 해봤는데요, cache partitioning이 있으면, cpu intensive 프로그램과 memory intensive 프로그램을
똑같이 취급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차피 partitioning에
의해서 cache를 얼마 못 받게 될 것이니까요. 그러면 cache-aware scheduling과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최대한 cache-aware scheduling과 다른
점을 부각시킬 수 있게 해야겠네. 얼마나 달라지는 지가 중요해.”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 조합에 대해서 모든 가능한 scheduling에 대해서 cache partitioning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최대 성능을 조사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해보고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
“네.”
“이번 이스카(ISCA)[13]에 cache partitioning 관련 논문 나왔던데, 그거 읽어보고, 아스플로스(ASPLOS)[14]에
Varofedo가 쓴 논문 알지? 그거 다시 한 번 읽어봐.”
“네.”
“시뮬레이터는 뭐 쓸 건데?”
“Simics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거 말고 Gem5도 괜찮은지 한 번 알아봐. 준상이가 좀 만져봤으니까, 물어보고.”
“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지.”
“네.”
그리고 교수님 방을 나왔다. 요약하자면, 나쁘진 않으니 해보라는 것이고, 시뮬레이터는 준상이가 쓰고 있는
것을 가져다가 사용하라는 것이다.
연구실에 돌아와 앉았다. 힘이 빠진다.
먼저, 아이디어가 너무도 평이하게 취급받은 까닭이다. 계속 해 보라셨으니 무시당한 건 아니지만, 그제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아이디어가 아무 칭찬도 못 들으니 힘이 빠졌다.
또, 여전히 머나먼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문에서 일부를 바꾼, 어찌 보면 간단한 아이디어이지만, 이것을 구현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 실험을 통해 내 아이디어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통해, 내 아이디어가 쓸모없다는 것만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나는 9999번의 실패를 한 게 아니고, 다만 전구를 만들
수 없는 9999가지의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9999번의 실패를 하게 되면, 나는 재학 연한 초과로 인해 박사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박사 4년차, 실패는 너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한 발짝도 떼지 않는다면 영영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틀린
길로 가보는 것이 가만있는 것보다는 빠르다. 검색창에 ‘Gem5’를
입력했다. 연구를 시작하려고.
[1]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에코의
서재 출판, 2007년
[2] 트와일라 타프 지음, 노진선 옮김,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 문예출판사, 2005년
[3] 한동수, <카이스트 한동수 교수의
특허 무한도전>, 흐름 출판, 2013년
[4] 같은 책, 9쪽
[5] 노원경, <생각 3.0 ? 스마트를 뛰어넘어 크리에이티브로 가는 생각의 도구>, 엘도라도
출판, 2010년, 31쪽
[6] 케리 스미스 지음, 신현림 옮김,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갤리온
출판, 2010년
[7] 뮤즈(Muse):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많이 알려져 있다. 본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명의
여신으로, 학문과 예술의 신이다. 영어 표기가 Muse이며, 그리스어 표기는 '무사'라 읽는다.https://mirror.enha.kr/wiki/%EB%AC%B4%EC%82%AC#s-3
[8] Moinuddin K. Qureshi and Yale N.
Patt. 2006. Utility-Based Cache Partitioning: A Low-Overhead, High-Performance,
Runtime Mechanism to Partition Shared Caches. In Proceedings of the 39th Annual
IEEE/ACM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 (MICRO 39). IEEE Computer
Society, Washington, DC, USA, 423-432. 11화 <질문 ? 제가 쓴 논문이 아니라서요> 참고. http://scienceon.hani.co.kr/179949
[9] Sergey Zhuravlev, Sergey Blagodurov,
and Alexandra Fedorova. 2010. Addressing shared resource contention in
multicore processors via scheduling. In Proceedings of the fifteenth edition of
ASPLOS on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
(ASPLOS XV). ACM, New York, NY, USA, 129-142.
[10] 논문은 보통 초록, 서론, 관련 연구 소개, 제안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 실험 방법 및 결과 분석, 결론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련 연구 소개가 결론 바로 앞에 위치하기도 한다.) 실험 방법
및 결과 분석 전까지 읽었다는 것은 2/3쯤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 8화
<또 하나의 입시 - 연구실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요?> 참고.http://scienceon.hani.co.kr/media/173132
[12] 사고실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 때 했던 것으로 알려져 유명한 실험 방법. 사고(思考)를 통해 하는 실험, 즉, 상상을
통해 결과를 추측해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가들이 해야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구현과 실험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므로, 그전에 사고실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허투르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13] 이스카(ISCA, International
Symposium on Computer Architecture): 매해 열리는 컴퓨터 관련 국제학회로, 주로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련한 분야를 다룬다.
[14] 아스플로스(ASPLOS,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 매해
열리는 컴퓨터 관련 국제학회로, 중앙처리장치 등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등을 폭넓게 다룬다.
#13. 꼰대
출근길에 들른 식당, 혼자 식판을 놓고 앉았는데 누가 부른다.
“조교님? 혼자 오셨어요?”
프로그래밍 기초반 여학생이다. 프로그래밍을 해 본 경험은 없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습도 똘똘하게 잘하는, 귀여운 학생이다. 성격도
활달한 편이라 실습 시간에 농담도 많이 주고받았다.
“아, 네.”
거짓말을 할 순 없어 진실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친한 학생이더라도, 실습실이 아닌 공간에서 만난다는 게
그리 기꺼운 일은 아니다. 조교의 탈을 쓰고 있지 않은 순간에는 평범한 학생이고 싶으니까. 특히 지금처럼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땐 더더욱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야
익숙하고 편하지만, 자칫 처량해 보일 수 있으니까.
근데 뭐, 학생도 비슷한 상황 같으니까. 아직 대학교 1학년 밖에 안 된 학생이 왜 벌써부터 혼자 밥을 먹지? 역시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가… 아참, 나도 혼자 밥을 먹고 있지.
“그럼, 여기 앉아도 되죠?”
학생이 앞자리에 식판을 내려놓는다.
밥을 혼자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 옛날에는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불편하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지 못한 채, 내가
괜찮은 상태라는 듯이 있어야 하니까. 뭐라도 공감거리를 찾아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제길,
게다가 조교와 학생 사이니까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조교님, 프로그래밍이
너무 어려워요.”
학생이 가장 전형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나, 점심시간이 조교 활동 시간이 될 것 같다. 하긴, 학생이 조교를 만나서 무슨 얘길 하겠나.
전형적으로 되받아칠까도 생각해봤다. ‘하다 보면 잘 될 거예요’라며
공감 못할 희망을 줄 수도, ‘맞아요, 저도 처음엔 힘들었어요’라며
공감하는 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레퍼토리는 따로 있다. 특히
이 학생처럼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면.
“왜요, 잘 하고 있잖아요.”
“제가 뭘 잘 해요.”
“에이, 실습 시간 때 하는 거 제가 다 보고 있잖아요.”
“실습 때도 맨날 제일 늦게 나가잖아요.”
실습 시간은 그 날 주어진 과제를 다 하는 순서대로 먼저 나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먼저 나가느냐를 가지고도 묘한 경쟁과 열등감이 형성된다. 프로그래밍 경험이
많은 애들이 얼마 안 돼서 나가버리는 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그런 학생들과 짝이 되어 자신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로 먼저 나가버리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못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정말 문제이긴 하다.
“프로그래밍을 대학 와서 처음 해보는 거라면서요. 그 정도면
정말 잘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학생들은 제대로 이해도 안 하고 시키는 것만 대충대충 하고 가는데, 학생은 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늦게 가는 거잖아요.”
“지난 번 숙제도 밤 새가면서 했단 말예요. 다른 애들은
몇 시간 만에 해내던데.”
자기가 못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걸까? 아니면, 모범생들한테 흔한 겸손한 척일까? 시험 보러 와서는 ‘공부 하나도
안 했어’라고들 하는 그런 거. 어쨌거나, 내가 ‘그래, 너 못 해. 열심히 좀 해’라고 말하기 전까진 자신이 못 한다는
증거만 계속 찾을 것 같다. 그렇다고 못한다고 말해줄 순 없다. 정말
잘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처음 하는데 그 정도 속도로 알아듣고 해내고 있는 거 보면. 왜 더 잘 하는 사람과만 비교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몇 점 받았는데요?”
“점수는 잘 받긴 했는데요…”
이런 말을 할 땐 보통 5점 이하로 깎인 것을 의미한다.
“에이, 그럼 잘 한 거네요. 그리고 원래 숙제는 밤새서 하는 게 정상이에요. 몇 시간 만에 끝냈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잘 했던 사람들이든지, 아니면
친구 껄 보고 베껴가면서 해낸 사람들이든지, 둘 중 하나일 걸요? 안
그래요?”
“음… 그런 거 같긴 한데요…”
“그런데 뭐가 문제에요. 그리고 어차피 결과만 중요한 세상
아니에요? 못 하면 밤새서 좋은 결과 남기면 되는 거지.”
너무 격앙된 걸까? 하지만 좀 강하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정말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실습 때 친해 놓은 게 있으니까 이 정도
말은 해도 괜찮겠지? 앞으로도 좀 더 잘 챙겨줘야겠다.
“그런데, 조교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하세요?”
“제가 이 바닥에서 10년째에요. 제가 for문[1]을
써도 수백 번, 수천 번은 더 썼어요. 1학년 과목쯤은 당연히
쉽죠.”
“저도 조교님처럼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요?”
“그냥 많이 하면 돼요. 저도 프로그래밍 처음 배울 땐 정말
힘들었어요. 한 10년쯤 해봅시다. 잘 하나 못 하나.”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2] 어떤
일을 1만 시간 동안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노력을 한다고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최고가 되지 못할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력이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확실하다.[3]
그런데 우리는 늘 쉬운 길만을 찾는다. 나도 얼떨결에 걸려 얻은
논문 하나로 졸업했으면 참 좋겠으니까. 그래, 그러면 나도
마음잡고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의
가장 큰 함정은, 1만 시간을 넘긴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당장
전 세계 우리 분야의 박사 4년차 이상 모든 연구원들부터 해서….[4]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자주 들어 지겨운 질문들이라 짧게 끝낸
게 실수다. 그냥 좋은 이야기 길게길게 해볼 걸. 이번엔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혼자 먹어요?”
“제가 어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아침 수업을 못 갔거든요. 원래
수업 같이 듣는 애들이랑 밥을 먹는데, 오늘은 늦었어요.”
“어이구. 몇 시까지 했길래요?”
“세 시쯤에 자러 들어갔거든요. 아침에 알람 들었는데 다시
잠들었어요. 아침 수업 출석 체크 했다는 데 어쩌죠?”
“세 시요? 뭘 그리 늦게까지 했어요.”
“오늘 일반물리 과목 퀴즈 보거든요.”
“퀴즈, 그거 점수 얼마 들어가지도 않잖아요.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학점은 잘 받아야죠.”
“그렇게까지 무리하면서 살지 않아도 돼요. 지금이야 학점
소수점 첫째 자리에 그렇게 목숨 걸고 그러지만, 나중 되면 다 거기서 거기에요.”
“친구들은 다 이렇게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하세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면서 살아도 돼요. 1학년 때 공부 좀 안
한다고 인생 안 망가져요.”
내가 대학교 1학년이고, 어떤
나이 지긋한 선배가 (11살 차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주위 모두가 보고서 하나, 시험 하나에 목매다는데, 부모님도 선배들도 학점 이야기만 하는데
나 혼자 유유자적할 수 있을까? 가정법은 집어치우자. 나도
그 땐 목매달았다. 나도 새벽 세 시 넘기기 일쑤였고, 아침
수업 빼먹기 일쑤였다. 시험 잘 보고도 출석 점수가 안 좋아 C학점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걸 후회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냥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건강하게 살았어도 됐을 것 같다. 학점
약간 낮아진다고 해도 대학원은 붙었을 것 같고, 취업에 큰 장애물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지금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그
때야, 학점 0.1이 오르면 행복은 10점쯤 오를 것 같았지만.
그런데 학생 표정이 좀 굳은 것 같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전산과 올 생각 없어요?”
우리 학교는 1학년에는 학과 없이 입학해서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결정한다.
“제가 어떻게 가요. 이렇게 못 하는데.”
“아, 정말, 잘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처음 해보는데 그 정도로 이해하는 거면 정말 소질 있는 거예요. 제가 조교 한 두 번 한 게 아니에요. 정말 잘 하는 편이라니까요.”
“저보다 잘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 데요.”
“정보올림피아드 한 애들이요? 그거 별 거 아니에요. 3학년만 가도 티도 안 나요. 뭐,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 날린 애들이야 계속 잘 하긴 하는데, 어차피 걔네랑 우리는 클래스가
다르잖아요. 프로그래밍 재밌어 하잖아요. 그럼 가는 거죠!”
“에이,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그럼 어느 과 생각하고 있는데요?”
“화학과요.”
“왜요?”
“제가 화학 경시를 했거든요. 뭐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적성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적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얼마나 잘 참아낼 수 있느냐’, 이걸 적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산이 재밌다, 그러면 끝인 거죠.”
“그래도 전산은, 좀…. 아빠가
전산과는 가지 말랬어요.”
“아버지께서요? 왜요?”
“아빠가 아이티(IT) 쪽에 근무하시거든요.”
“아, 죄송해요. 그럼
인정. 안 오셔도 돼요.”
“하하하하. 이렇게 빨리 포기하시는 거예요?”
“업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해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을 제가 어떻게 이겨요.
그것도 자기 딸한테 시키기 싫다는 건데.”
“그런데, 전산과 대학원은 어때요? 거기선 어떤 거 하는 거예요?”
“정말 자세~하게 한 번 말씀드려요?”
“아, 아뇨. 그냥
대충….”
아, 어렵다. 이걸
무슨 수로 설명한담. 대학교 1학년에게 예능 보고 게임한다고
말할 수는 없고….
“제가 하는 건 주로 운영체제에 관련된 건데요, 그냥 그것들을
어떻게 고치면 성능이 더 좋아질까, 혹은 전기를 덜 먹을까 그런 거 연구해요.”
“아, 그럼 막 윈도우즈 같은 거 만드는 거예요?”
“하하하, 그걸 어떻게 만들어요. 그냥 이미 있는 걸, 일부분 고쳐보고 그러는 수준이에요. 운영체제를 만드는 건 큰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야 가능한 거고요.”
“아….”
대학원에서는 엄청 대단한 걸 할 줄 알고 있었을 텐데. 환상을
깨뜨린 것 같아 좀 미안했다. 그래서 덧붙였다.
“그렇게 우리가 고쳐보면서 만들어낸 기술들을, 회사에서 적용해서
제품을 만드는 거죠.”
“그럼, 대학원은 재미있어요?”
재미…라니. 최근에 재미를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음, 사실 재미를 느낄 기회는 별로 없어요. 실습 시간에 하시는 건 간단해서 몇 십 분이면 다 구현하고, 바로
돌아가는 것도 확인해볼 수 있잖아요. 그치만 대학원에서 하는 일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구현만 해도 엄청 오래 걸리고요, 그러고 나면 그게 진짜로 성능이
올라가는지 확인해 봐야 해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결론을 내리고 나면, 또 그게 가치가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다른 사람이 했던 것은
아닌지, 검증을 받아야 하고요. 세계 최초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헐. 정말 힘들겠네요.”
“뭐, 그렇긴 해요. 되게
막막하고요.”
“근데 그런 데를 오라고 한 거예요, 아까?”
“누가 대학원 오랬어요? 전산 전공하랬죠. 대학원 오는 건, 저부터 말려 드릴게요. 그리고 어차피 인생살이 다 힘들어요. 안 힘든 게 없어요.”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대학생 시절 겪은 재밌는
일들 몇 가지를 이야기해주며 마저 밥을 먹었다. 아주 다행히도, 식사
후에 갈 곳은 나와 정반대의 방향이라, 바로 헤어질 수 있었다.
문득, 학생과 나눈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하나 하나 곱씹어보니, 전부 다른 사람과 나눠봤던 대화들이다. 그것도 여러 번.
어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예전에 들었던 말을 또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거니 싶으면서도 조금은 짜증도 났다. 새로운 생각은 잘 못 해내는 것
같아서, 저렇게 굳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어느덧 나에게도 그런 모습을 발견한다. 핑계는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보니, 가장 안전하면서도
재미있는 레퍼토리만 꺼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을 두 번째 만났는데, 지난번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나도 어른들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생각이 더 굳어가는 것 같다. 말을
반복하는 그 순간마다 내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내 생각이 맞는다는 확신이 더 커지게 되고, 다음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반복.
다시 생각해보면 내 생각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첫째, 이 학생이 지금 전산을 재밌어 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잘 하고
있는 학생들을 이기기는 힘들 수도 있다. 이미 잘 하는 학생들도 재미있어 할 수도 있으니까. 또, 잘 하는 학생들이 노력까지 한다면, 어쩌면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제논의 역설처럼.
둘째, 학점 대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겨보려다가, 말 그대로 학점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도 대학원도 못 올
정도의 학점이 나왔을 수도 있다. 정말 인생 망가질 수도 있다. 역사엔
가정법이 없다고 한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에도 나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급작스런 암 선고를
받고 나니, 몸 축내가며 일했던 시간이 후회된다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이게 다 뭔가 하는 생각에 일을 확 줄이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며, 여러분도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몸을 혹사시키며
살았던 세월’의 결과물에 의지해서 살고 있더라. 그 때 얻었던 능력 혹은 재산 덕에 지금의 여유가 가능하더라. 나는 이미 대학원까지 온 주제에, 학생의 상황도 모른 채로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다른
학생을 만난다면 또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 이렇게 꼰대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소통은 듣는 것’이라고 열심히 가르치는 통에 정작 자신은 들을 기회를 놓치는 그런 어른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긴 참 싫은데, 안 그럴 순 없는 걸까?
그래, 내 나이 서른하나, 스무
살 땐 확고하게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던 그 나이, 이 나이를 먹어놓고 꼰대가 아니길 바라는 것도 과욕이겠다. 차라리 내가 꼰대임을 인정하고 조심 조심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된다는 게 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굳는 것이다.
[1] for문: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정해진 횟수만큼 반복해서 실행하려할 때 쓰는 문법. 많은 경우 ‘for’라는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에 ‘for문’으로 불린다.
[2] 이상훈, <1만 시간의 법칙>, 위즈덤하우스. “1만
시간의 법칙”은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에 나온 것으로 유명해졌다.
[3] 충분조건, 필요조건: 강원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내가 대한민국에서 돈이 제일 많다”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 때, 그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주장이 참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것을 “충분조건”이라고 한다. 만약, 그 사람이 “강원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자. 이것만 가지고는 그 사람의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주장은 보나마나 거짓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주장이 참이려면
이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것을 “필요조건”이라고 한다.
[4] 박사 4년차면, 보통 전공 공부를 10년쯤 하게 된다. 학부 때는 전공 공부 이외의 것도 많이 하니까 10년을 평균해서
하루에 4시간씩 공부한다고 가정하자. 보수적으로 잡아서 평일에만
한다고 하자. 또, 1년은
55주이지만 휴가와 각종 공휴일을 제하기 위해 5주를 빼자. 그러면 일주일에 20시간씩 50주이므로 1년에 1000시간이 나온다. 그러니
박사 4년차만 되도 1만 시간은 채우게 된다.
[5] 제논의 역설: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가 1m 앞서서 출발한다고 하자. 토끼가 1m를 쫓아갈 동안 거북이는 얼마간의 거리를 갔을 것이고, 그만큼의 거리를 토끼가 다시 쫓아가는 동안 또 거북이는 얼마간의 거리를 갔을 것이다. 따라서 토끼는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는
제논이 만들어서 ‘제논의 역설’이라 칭한다. 물론 ‘역설’이며, 틀렸다. http://ko.wikipedia.org/wiki/%EC%A0%9C%EB%85%BC%EC%9D%98_%EC%97%AD%EC%84%A4
#14. 연결고리
메일이 왔다.
오늘 저녁, 석사 신입생 환영회가 있습니다.
6시에 ‘내동 생고기’[1]로 예약해
두었습니다. 학교에서 5시
40분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신입생은 이한길(26, 남), 서연정(24, 여) 두
명입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 하주성 드림
김정원(박4): 야, 벌써 신입생 들어왔냐?
옆자리의 국현에게 물었다.
김국현(박3): 오늘부터 배정이잖아요. 한 명 받네, 두 명 받네 하더니, 두 명 받았네요.
김정원(박4): 이제 박사 4년차 되니까, 통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진석[2]은 목록에 없다. 나랑 면담했던 그 학생은 어느 연구실로 갔을까? 인연이 아닌가 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그 때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날 원망하진
않겠지.
김국현(박3): 이번에 들어오는 여학생이 예쁘대요. 주성이가 그러던데.
김정원(박4): 어? 한 명은 여학생이네? 근데
주성인 어디서 봤대?
김국현(박3): 자기한테 연락을 해 와서 한 번 만났었대요.
김정원(박4): 그래? 그럼, 이제
보영이 안 외롭겠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보영이를 쳐다보았다.
전보영(석2): 뭐, 달라질 거 있나요.
시크하게 대답한다. 늘 그렇듯.
김정원(박4): 아, 그런가.
하긴, 1명이 2명
된다고, 소수가 다수가 되는 건 아니니까. 불편함은 그대로, 괜히 챙겨야 할 것 같은 부담만 더 하겠지. 좀 미안해졌다. 얘기를 돌렸다.
김정원(박4): 오늘은 또 얼마나 마시려나.
김국현(박3): 그러게요. 아, 할
거 많은데. 1차만 끝나고 들어오긴 무리겠죠?
김정원(박4): 그래도 명색이 신입생 환영횐데, 3차까진 가줘야 하지 않겠어?
김국현(박3): 아씨. 몇 시간 남았지? 후딱
해봐야겠다.
국현이가 모니터를 매섭게 쳐다보며 손을 움직인다.
국현이는, 그래도 연구실에 새 구성원이 들어온 건데, 시간이 그렇게 아까운가?
시대가 바뀌고 있다. 공동의 목표보다 개인의 행복으로 우선순위가
옮겨가고 있다. 각 개인의 의사와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꽤 중요해졌고,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것은 과거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시대에
대한 반대급부일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더 바뀌어야 할까?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는 자리조차 귀찮아진다면, 균형추의 반대 방향으로
조금 넘어간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앙처리장치(CPU)의 발전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처음 멀티코어를 만들 때는 모든 코어가 똑같았다. 듀얼코어는 똑같은
코어가 2개 합쳐진 형태였다. 따라서 모든 프로그램이 같은
구조의 중앙처리장치를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ARM에서 빅리틀 구조(big.LITTLE architecture)를
선보인 것이다.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코어들이 공존한다. 그리고
각 프로그램이 최적의 코어에서 실행된다. 어떤 기술이 제품으로 나왔다는 말은, 이미 수많은 관련 논문들이 나왔음을 의미한다. 훨씬 많은 종류의
코어들을 함께 탑재한다거나[3], 코어 자체가 변신을 해가면서 프로그램에 맞춰간다거나[4], 아예 특정 프로그램을 위한 구조를 가지기도 한다.[5]
어쨌거나 세게 말할 순 없었다. 웃으며 말하고 넘어가버렸다. 얼마 전에 느꼈던 대로, 단지 내가 꼰대일 수도 있으니까.[6] 그리고 국현이가 틀리고 내가 옳은 것이라 해도, 국현이가
내 말 한 마디에 바뀔 것도 아니니까. 애써 변화시킨들, 내가
얻을 것도 별로 없으니까. 이쯤 되면 누가 더 ‘개인적인’ 것인지가 좀 헷갈리긴 하다.
사실 나도 부담스럽다.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일까, 연차가 쌓여서일까.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게 두렵다. 그 사람을 알아가고 이해하기가
귀찮다. 피곤하다. 그냥 있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졸업이나 하게. 어차피 연구는 다른 선배에게 배우는 게 나을 테니까.
오후 5시 40분, 주성이가 문을 벌컥 연다.
하주성(박1): 자자, 신입생 환영회 갑시다!
김국현(박3):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주성(박1): 뭘 그리 또 열심히 하실라구. 일단 신입생은 화끈하게 환영해주고
나서 해요.
김국현(박3): 야, 나 이 실험만 돌려놓고 나갈게. 먼저 가라.
하주성(박1): 아따, 이 형, 되게
열심이네. 근데 원식이 형은 없어요?
김정원(박4):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하주성(박1): 흠. 뭐, 일단 가죠. 알아서 오든가 말든가 하겠지.
김정원(박4): 교수님은?
하주성(박1): 집에 들렀다가 고깃집으로 바로 오신대요. 먼저 가요.
1층으로 내려가니 모르는 얼굴이 둘 있다. 주성이를
보고 서로 눈치를 보더니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쟤가 연정이란 앤가. 예쁘긴 하네. 왕년에 공대 아름이[7] 역할 좀 했겠다. 근데 내 스타일이 아니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인상이 좀 그렇다. 숙제나 프로젝트가 있으면 오빠들 꽤나 찾아다녔을
것 같다. 잘못 친해지면 호구되겠다.
저 남자 애는 이름이 뭐랬지? 어쨌든 사람이 착실착실하니 성실성실하니
생겼다. 좀 말랐고. 피부가 돌하르방 같은 게 학부 때 밤
깨나 샌 모양이군. 뭔가 맘에 든다. 그냥 느낌이.
대충 인사하고 출발했다. 학과 건물에서 고기 집까지는 15분쯤 걸으면 된다. 재학생들이 삼삼오오 앞에 가고, 신입생 둘이 약간 뒤에서 따라왔다. 석사 동기이긴 하지만, 그리 친해보이진 않았다. 주성이만 이따금씩 신입생들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어색어색하게 답한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어색해할 신입생들과 함께 가면서 이런 저런 농담이라도 할 텐데. 이젠 귀찮다. 어차피 이따 술자리에서 인사할 텐데 뭐.
고기 집에 도착하니 테이블 세 개에 불판과 반찬들, 그리고 맥주
두 병에 소주 한 병씩이 차려져 있다.
심정길(박3): 이야, 우리 이제 테이블 세 개 잡는 거야?
하주성(박1): 신입생 2명 포함하면, 이제 10명이거든요.
심정길(박3): 많다, 많어. 그럼, 저, 신입생들이 여기 앉으세요.
정길이 형이 가운데 테이블의 두 자리를 가리킨다. 교수님이 앉으실
자리의 맞은편이다. 오늘의 주인공이니까.
이제 치열한 영역 다툼이 시작된다. 서로 눈치로 자신의 연차와
나이 등등을 신호로 보내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쓴다. 좋은 자리란 무조건 교수님과 먼 자리이다. 교수님과 가까이 있으면 아무래도 술을 한 잔이라도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신입생
환영회는 평소보다 더욱 피 튀기는 전쟁터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교수님을 대신해 신입생들과 술잔을 기울일
장수로 임명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하주성(박1): 정원이 형, 여기 명당자리 앉으시죠.
비워둔 교수님 자리 바로 옆을 가리킨다. 이 자리는 술도 술이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고기 굽기도 전담해야 하는 자리다. 안 그래도
긴장한 상태에서 술잔 받으랴, 질문에 답하랴 정신없을 신입생들에게 고기마저 구우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김정원(박4): 야, 거긴 연구실 대표인 네가 앉아야지.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하주성(박1): 형님이, 저보다 주량이 두세 배는 되잖아요.
김정원(박4): 넌 이럴 때만 형님이냐? 거기 앉아 고기나 구워.
하주성(박1): 알았어요. 그럼 여기! 제
옆자리 앉으시죠. 제가 마시는 만큼 마시는 거예요.
교수님과 한 자리 떨어진 자리를 가리킨다. 교수님 시선의 사각지대다. 어차피 멀어봤자 한 테이블 거리니, 이런 자리가 오히려 명당이다.
나머지들도 자리를 잡았다. 보영이는 새로 온 남학생의 옆 자리에
앉았다. 길영이가 여자 신입생 옆 자리, 정길이 형은 내
옆 자리, 국현이도 교수님과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았다. 간단히
말해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교수님과 떨어져 앉았다.
딱 한 명, 준상이만 예외다.
교수님의 반대편 옆 자리에 앉는다. 고기를 구울 필요까지는 없는 자리지만, 맨 몸으로 사자굴에 뛰어드는 격이다. 학위논문심사가 그리 멀지 않은
까닭이다. 교수님과 교감이 한 번이라도 더 있는 게 좋으니까.
하주성(박1): 사장님, 여기 맥주는 치워주시고요, 소주 한 병씩 더 주세요.
강준상(박4): 야, 맥주 마시면 안 돼?
하주성(박1): 형, 신입생 환영회잖아요. 교수님
오셨을 때 맥주병이 존재하는 순간 소맥 말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럴 바에야 순수하게 소주 마시는 게
낫잖아요.
시대가 바뀌면서 또 하나 바뀐 게 있다면, 바로 술 문화다. 내가 석사 과정 때만 해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폭음을 일삼았다. 1차는
당연, 2차는 필수, 3차는 기본, 4차쯤 돼야 선택이었다. 요즘은 폭음은 고사하고, 술자리 자체가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그나마 1차면 절반이 사라지고 2차면 마무리 된다. 하긴, 삼성에서도 119운동(1차까지만, 1가지 술로만, 9시
전까지만)을 한다더라.[8]
하지만 여전히 신입생 환영회는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야, 신입생들의 주량을 측정하여 차후 회식 때 적정량의 술만을 권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냥 어색하니까 술이라도 진탕 먹는 거지 뭐.
왜 친해지려는데 술을 마실까? 사실 이건 우리 연구실만의 문화가
아니다. 학과 행사나 동아리 모임에서도 처음 인사하는 자리는 곧잘 술자리로 이어지곤 한다.
한 책에서는 “술은 양쪽을 카오스 상태에서 개방시키고 화해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함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잘 열지 않기도 한다”[9]라고
했다. 술은 함께한 사람들을 혼돈의 상태로 밀어 넣어, 서로의
내면을 강제적으로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데 익숙한 나이가 되고 나면, 술의 힘이라도 빌어야 마음을 열 수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효용이 크지는 않다. 술이 깨고 혼돈의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오히려 전보다 더 어색해진다. 해장을 핑계로 한 번
더 만날 수도 있겠지만, 겨우 간밤의 술자리를 복기하며 이따금씩 끊어진 기억들을 조각모음 해볼 뿐이다. 술 마시는 도중에 말을 놓기로 했던 것은 1순위 후회감이다. 말 붙이기만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처음 만나는 사이의 이 어색함은 술이 아니고서는 견뎌낼 수 없기에, 오늘은 술을 마실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합심하여
어색함을 선택한다. 교수님이 오시면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우리끼리
먼저 전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신입생들은 지금 이 순간이 더할 수 없이 어색하여 술이라도 마시고
싶을 테지만,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잠시 뒤, 교수님이 고기 집 입구에 등장했다. 정길이 형을 필두로 모두가 기립한다. 신입생들이 얼떨결에 따라 일어난다. 교수님이 가까이 오자 따로따로 인사를 한다. 교수님이 비어 있는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서, “그래, 앉자”하시자, 그제야 앉는다.
권대성(교수): 음, 이한길, 서연정, 맞지?
이한길(석1), 서연정(석1): 네.
권대성(교수): 여기, 고기는 시켰냐?
하주성(박1): 교수님 오시면 시키려고 했습니다. 사장님! 여기 테이블당 삼겹살 4인분씩 주세요,
권대성(교수): 그래, 어, 일단 한
잔씩 받지.
교수님이 소주를 한 잔씩 따르신다. 입 밖으로 꺼낼 것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입을 채울 것을 찾는다.
[1] 무심코 읽어보면 엄청 잔인한(?) 간판으로
유명하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data&no=903886
[2]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 8화 <또 하나의 입시> http://scienceon.hani.co.kr/173132
[3] 다음 논문에서는 다양한 구조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쉽게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한다. Niket K. Choudhary, et. al. “FabScalar: composing synthesizable RTL designs of arbitrary cores
within a canonical superscalar template.” ISCA '11.
또, 몇 가지 종류의 코어가 있어야 최적인가에 대해 연구한 논문도 있다. Marisabel Guevara, et. al. “Navigating
heterogeneous processors with market mechanisms.” HPCA '13.
[4] 실행되는 프로그램의 조합에 따라 설정을 바꾸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는 많은 종류가 제시되었다.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다. Engin Ipek, et. al. “Core fusion:
accommodating software diversity in chip multiprocessors.” ISCA '07; Paula Petrica, et. al. “Flicker: a dynamically adaptive architecture for power limited
multicore systems.” ISCA '13 ; Yuya Kora, et.
al. “MLP-aware dynamic instruction window resizing for
adaptively exploiting both ILP and MLP.” MICRO-46.
[5] 다음 논문은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능들을 빠르게 하기 위한 중앙처리장치(CPU) 구조를 제안한다. Nathan Goulding, el. al. “GreenDroid: A Mobile Application Processor for a Future of Dark
Silicon.”HotChips. 2010. 또, 웹서버
등의 프로그램만을 위한 중앙처리장치(CPU) 구조를 제안한 논문도 있다. Pejman Lotfi-Kamran, et al. “Scale-out
processors.” ISCA '12.
[6]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 13화 <꼰대> http://scienceon.hani.co.kr/191353
[7] 공대 아름이: 공대에는 여학생이 매우
희귀하다. 기계과 등에서는 특정 학번에 여학생이 한두 명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이런 희귀한 여학생을 가리키는 용어.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http://www.youtube.com/watch?v=wnPNsoWMukQ
[8] 곽정수 기자, “119, 222, 112 송년회…기업 60%가 절주 캠페인”, 한겨레.http://www.hani.co.kr/arti/economy/working/614729.html
[9] 최규창 저,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강 같은 평화 출판, 84쪽
#15. 백조
신입생 환영회, 고기는 익어 가는데 분위기는 쉬이 익지 않는다. 고기 굽는 사람이야 고기를 들춰봤다가 뒤집었다가 하지만, 나머지는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댈 뿐이다. 이럴 때는 신입생을 이용하면 좋다.
하주성(박1): 교수님, 그럼 자기소개 시간 좀 가질까요?
권대성(교수): 그래.
하주성(박1): 자자, 그럼, 신입생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친다. 신입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한길이가 먼저
일어선다. 주성인 다시 고기를 뒤집는다.
이한길(석1): 안녕하십니까! 저는 꿈꾸는 대학교 아초스(ARCHOS) 연구실에 들어오게 된 이한길이라고
합니다.
잠시 눈치를 본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말을 잇는다.
이한길(석1): 나이는 26살이고, 사이언스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다시 한 번 눈치를 본다. 주성이가 도움 아닌 도움을 준다.
하주성(박1): 주량은
얼마나 돼요?
이한길(석1): 소주
한 병 정도 마십니다.
권대성(교수): 그래, 세 병 정도 된다고?
이한길(석1): 네? 아뇨, 한 병이요.
권대성(교수): 보통
주량은 삼분의 일쯤으로 얘기하던데….
이한길(석1): 아, 아닙니다, 정말 한 병입니다.
하주성(박1): 교수님, 시간당 한 병인가 봅니다. 요즘엔 주량에 시간 개념이 도입됐잖아요.
이한길(석1): 네?
권대성(교수): 허허허, 그래. 그럼 좀 마시는 모양이지?
자 먼저 한 잔 받아.
교수님이 소주병을 들자 한길이가 급히 두 손으로 잔을 든다. 모두의
시선이 소주잔에 모인다. 한길은 85%쯤 채워진 잔을 한
번에 마신다. 자동으로 찌푸려지는 얼굴을 금세 편다. 모두가
박수를 친다. 짝짝짝짝.
주성이가 눈짓을 주자, 연정이가 일어난다.
서연정(석1):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꿈꾸는 대학교 아초스(ARCHOS) 연구실에 들어온
서연정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교수님과 너무도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최고로 잘 팔린다는 크리스마스이브 나이! 스물 네 살이고요, 꿈꾸는 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석사과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술은…
잘 못해요. 주량은… 소주 세 잔 정도?
모두가 박수를 친다. 이번에도 교수님이 소주병을 든다.
권대성(교수): 그럼
이거 마시면 두 잔 남는 건가?
서연정(석1): 교수님이
주시는 건, 특별히 예외가 될 수 있을 건 같은데요?
권대성(교수): 허허허, 그래그래. 근데 저기 보영이는 소주 세 병씩 마시고 그러는데, 넌 어째 좀 적다.
거짓말인 걸 모두가 알면서도, 모두가 웃는다. 주성이는 맞장구치며 보영을 향해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든다. 보영이는
“아닙니다”라고 하면서도 말꼬리를 올린다든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꼬리를 올린다든가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연기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트렌드가
누군가를 놀려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인데, 이번이 자기가 놀림을 당하는 차례라면 한 번쯤 희생해줄 수
있는 거니까. 나도 맘 편히 웃어 넘겼다.
교수님이 연정의 잔에 소주를 따른다.
서연정(석1): 보영
선배님보단 약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연정이가 보영이를 보고 싱긋 웃는다. 다시 교수님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뒤로 돌리고 한 번에 들이켠다.
서연정(석1): 교수님! 그럼 제가 감히 한 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연정이가 소주잔을 돌려가며 윗부분을 휴지로 슥슥 닦더니 교수님께 살짝 내민다.
권대성(교수): 허허허, 그래. 한 잔 줘 봐라.
요즘 들어 학생들이 술을 드리려 해도 그 잔을 되돌려 한 잔 더 먹이시기 일쑤인 교수님, 이번엔 웬일로 곱게 잔을 받아든다. 연정은 다소곳이 소주잔의 65%쯤을 채운다. 잔을 채운 듯하면서도 가장 적게 따른 양이다. 나이를 보면 대학 졸업하자마자 진학한 것 같은데, 저런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거지?
회식의 모든 것은 교수님이 결정한다. 메뉴를 결정하고, 술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고, 누가 그 날의 제물(?)이 될지도 결정한다. 아마도 교수님은 메뉴 결정을 학생들에게 맡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애인이 “아무거나 먹을래”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교수님이 가장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르기 위해 애쓴다. 보통은
몇 번 가봐서 교수님이 괜찮다고 했던 음식점 중에 고른다. 괜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 교수님이 갑자기 “거긴 너무 많이 간 것 같지 않냐?”라거나
“거긴 지난번에 좀 안 좋던데”라고 하는 건, 솔로들에게조차 연애 스트레스를 체험할 기회를 주시는 거다.
이제 교수님이 술 공격을 시작하신다. 오늘의 주목표는 신입생들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절대 자신의 손에 피를, 아니 자신의 간에 술을
묻히고 싶지 않아 한다. 교수님은 지휘관이다. 전쟁이 나면
지휘관들은 벙커에 들어가서 전략을 짜지 않는가. 직접 싸우는 것은 병사들이다.
권대성(교수): 길영아, 신입생들이 목 마르단다.
길영이 자기 잔을 들고 와서 신입생들의 소주잔을 채운다. 그리고
자신의 잔을 그들의 잔과 부딪친다. 신입생들은 원샷을 한다. 물론
신입생들은 목마르다고 한 적이 없다.
권대성(교수): 준상아, 얘네들 이름은 아니?
이번엔 준상이가 자기 잔을 들고 온다. 연정이에게 이름을 한
번 묻고는, 함께 소주 한 잔 원샷을 한다. 한길이에게도
이처럼 한다.
이처럼 한 곳에서 국지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면, 다른 테이블에서는
술을 극도로 자제하게 마련이다. 언제 불려갈지 모르니, 간
체력을 예비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이 다른
학생들이라고 곱게 살려두고 싶어 하시는 건 아니다. 이럴 때는 “짠 파도타기” 권법을 쓴다.
1단계. 조용히 자신의 잔을 든다. 이러면 옆 학생은 자연스레 잔을 들 수밖에 없다.
2단계. 자신의 잔과 따라 올라온 옆
학생의 잔을 부딪친다. 잔과 잔의 부딪침, 속칭 ‘짠’이다. 잔을 부딪칠 경우, 잔을 든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이 이 바닥의
규칙이다.
3단계. 잔을 들고 있는 손, 혹은 턱을 사용하여, 옆옆 학생을 가리킨다. 이것은 ‘짠’을 옆으로 이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교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힘이므로, 이어갈 상대가 선배든 형이든 상관없다.
‘짠 파도타기’를 통해 모든 학생은 술을 마시게 된다. 이것은
수학적 귀납법[1]으로 증명할 수 있다.
0) 먼저, ‘짠’을 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하며, 이것은 술자리에서의 공리[2]이다.
1) 첫 번째 사람인 교수님은 두 번째 사람을 골라 ‘짠’을 했다.
2) 교수님에 의해 k번째 사람은 k+1번째 사람이 누구이든 ‘짠’을 이어간다.
따라서 모든 참석자는 ‘짠’을 하게 되며, 즉,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소주잔이 너무 작아서일까? 교수님이 드디어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한다.
권대성(교수): 주성아, 사이다 한 병 시켜봐라.
하주성(박1): 드디어
‘사주’ 마는 건가요?
‘사주’는 우리 연구실 전통주(?)로, 사이다와 소주를 섞은 술을 의미한다. 물론, 양과 비율이 매우 중요하다. 양의 표준은 1700cc나 3000cc 맥주를 주문했을 때 나오는 작은 맥주잔을 80%쯤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음주자의 주량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 핵심은 비율인데, 사실 비율이랄 것도 없다. 소주로 전부 채우고, 사이다는 사이다 병뚜껑만큼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페트병 뚜껑이 아닌 유리병 뚜껑 만큼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의 사이다를 넣게 되면 사주 본연의 맛을 잃고 단맛만 남게 된다. 치맥(치킨+맥주)에 중독된 사람이
치콜(치킨+콜라)은
너무 달아서 싫어하는 걸 생각하면 된다.
맥주잔 두 개에 사주가 만들어졌다. 하나의 양은 표준, 다른 하나는 절반이다. 한길이 앞에 표준잔이, 연정이 앞에 절반잔이 놓여진다.
하주성(박1): 자자, 이거 원샷하면 돼. 하나도 안 써.
사이다 맛만 나.
이한길(석1): 원샷이요?
맥주잔에 따라진 소주를 처음 본듯한 표정인 한길이가 채 다 놀라기도 전에 주성이가 말을 잇는다.
하주성(박1): 자자, 신입생들이 우리 연구실 전통주인 사주를 마시겠습니다. 박수!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한다. 물론, 편치만은
않다. 사이다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권대성(교수): 자,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지?
결국 사주가 한 바퀴를 돈다. 마지막엔 교수님도 드신다. 취하지 않으려 서둘러 고기 몇 점을 집어먹었지만, 곧 몸이 달아오른다. 띵해진다. 하지만 혈압이 제 자리를 찾기도 전에 계속 잔이 파도를
탄다. 내 눈으로 보이는 세상도 조금씩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권대성(교수): 주성아, 2차는 어디로 가면 되냐?
2차 세계대전은 핵폭탄으로 종결되었지만, 우리들의
술자리는 핵폭탄부터 투하하고 2차로 이어질 모양이다. 근래에
잘 없던 일인데,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하주성(박1): 아, 그럼 제가 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보아하니, 보영이가 꽤 많이 마신 모양이다. 여학생 들어왔다고 연계해서 마시게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주성이를
붙잡아 귓속말을 건넸다.
김정원(박4): 야, 보영이 좀 데려가라.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같이 나가면 어쨌거나 잠시 술도 안 마실 수 있고, 바깥 공기도
쐴 수 있으니까.
하주성(박1): (손짓하며) 보영아, 같이 가자.
권대성(교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야, 니네는 연애하냐?
하주성(박1): 에이~ 교수님. 혼자 가기 심심해서 그런데, 좀 같이 가면 안 됩니까?
보영이는 술을 피해 도망 나갔다. 잠시 뒤, 주성이와 보영이가 돌아왔고, 우리는 근처 ‘정원맥주’로 옮겼다. 교수님이 함께하시기에, 아무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술을 마시다보면 제2차 정상상태(second wind)[3]로 접어드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태 뒤에 찾아오는 편안한 상태 말이다. 술이 술술 잘 들어가면서도, 이미 취한 상태 이상으로 더 취하지는 않는 것 같은 그런 상태. 지금
내 상태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느낌일 뿐, 몸은 정직하게 섭취한 알코올의 양에 비례하여
반응한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던 순간 신호를 느낀 것이 되려 다행이라고나 할까? 무언가가 식도를 노크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토를 하면, 내가 술에 지는 것 같아 싫다. 정신을 부여잡으며 자꾸 침을 삼켜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렇지만 만일의 사태를 위해 변기로 향한다.
읍… 꿀꺽. 꿀꺽. 꿀꺽. 읍… 토사물이 약간 새어나왔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완패할 것 같다. 계속해서 침을 삼키며 진정시켰다. 다행히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간다. 후. 잠시간 더 가만히 있다가 물을 내렸다. 아직 세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손을 씻는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꽤 벌겋다. 후. 하. 숨을
몇 번 크게 쉬었다.
나가려는데 한길이가 들어온다. 지체 없이 내가 방금 빠져나온
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토하는 소리. 연정이는 조금씩 내빼기도
하던데, 이 녀석은 정직하게 주는 대로 마신 모양이다.
문도 못 잠근 채로 토하고 있는 한길이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김정원(박4): “야, 정말 힘들면 말을 했어야지. 힘들면 술 주는 거 거절해도 돼. 그렇다고 누가 뭐라 그러지 않아.”
연구실 분위기라고는 알 턱이 없는 신입생에게 참 의미 없는 말을 뱉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여전히 껄껄껄 웃으며 술을 즐기던 교수님이 나에게 살짝 물어보신다.
권대성(교수): 한길이
토한 거냐?
이럴 때 보면 소름 돋는다. 누가 어찌돼든 상관없다는 투로 술만
마시고 먹이던 분이, 은근히 모두를 관찰하고 있다. 저래야
교수 하는 건가.
김정원(박4): 네.
권대성(교수): 그럼
들여보내. 니가 좀 데려다 주고 와라.
김정원(박4): (한길이에게
다가가서) 야, 이만 들어가자.
이한길(석1): 아님다. 괜차습니다.
김정원(박4): 얌마. 교수님께서 들어가라셔. 가자.
이한길(석1): 그래오? (눈을 꿈뻑한다.) 그럼, 드러가아조. (교수님을 바라보고 고개를 꾸뻑 숙이며) 교수니, 먼저 드러가보게습니다. 죄소압니다.
정신을 차려보려 애쓰지만, 발음이 자꾸 새는 한길이를 데리고
나왔다. 자꾸 “저 혼자 갈 수 이씀다”, “안 이러서도
되는대”, “선배니, 감사함미다”만 연발한다. 숙취해소 음료를 하나 사 먹였다. 그래, 이 정도면 주사가 나쁘진 않다.
한길이를 기숙사에 넣어 놓고 나오니 메시지가 와 있다. 태진아노래방으로
옮겼으니 오라는 내용이다. 교수님도 함께 가셨다고 적혀 있다. 솔직히
가고 싶진 않다. 이미 마실 만큼 마셨으니까. 테이블에 맥주도
깔려 있을 것이 뻔하고. 하지만 그쪽으로 향했다. 교수님이
계시니까.
우리 교수님이 권위적인 편은 아니다. 지금 내가 노래방에 안
가고 들어가겠다고 연락을 하면, 뒤끝 없이 잘 들어가라고 하실 분이다.
연구 지도를 할 때도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들어보고, 되도록 그 아이디어를 살리는
방향으로 말씀해주신다. 어떤 교수님은 뭘 말해도 단점만 속속들이 찾아내어 기운 빠지게 하기 일쑤라던데. 또, 학생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잘 다독여 주신다. 어떤 교수님은 툭하면 화를 내고, 심하면 재떨이를 던지기도 한다던데.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예능을 보고 있어도, 그거 재밌냐고 물어보기도 하신다. 다른
연구실은 연구실 내에선 게임이나 예능은 절대 금지라던데. 출퇴근 시간도 정해두지 않고 학생들의 생활패턴을
존중하신다. 주말에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아서 긴다. 술자리는 최선을 다해 끝까지 남는다. 한길이야 신입생이라 토하는 것도 들킨 거지, 사실 다른 학생들은
토하는 것도 안 걸리게 한다. 그리고 다시 마신다. 또, 교수님이 ‘제안’을 하면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인다. 교수님의 아이디어는
늘 내 아이디어보다 우선이다. 슬럼프에 빠져 우울할 때도 절대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게임을 하거나 예능을 보다가 교수님 발소리가 들리면 후딱 Alt-Tab[4]을
누른다. 물론, 출퇴근 시간까지 교수님과 맞추는 건 너무
힘들어 포기했지만, 주말에 연구실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다른 약속들은 알아서 취소한다.
교수님은 우리를 그저 늦잠 자는 학생, 주말에 별 할 일 없는
학생쯤으로 아실지 모른다. 자신이 전혀 권위적이지 않으며, 특히
술은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백조처럼, 교수님께는 최대한 자유롭고 편안한 척하는 모습만 보여드리면서, 물밑으로
열심히 물길질을 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교수님은 정말 권위적인 편은 아니다. 강압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도 하신다. 하지만 교수와 대학원생, 평가하는
사람과 그 평가에 의해 너무도 많은 것이 결정되는 사람의 사이에서, 참으로 인격적인 관계는 가능한 걸까?
노래방에 가니 옛 가요들이 흘러나온다. 교수님의 청춘 시절 노래부터, 교수님이 신세대 코스프레가 정말로 가능했던 약 10년 전 노래까지가
그 범주다. 교수님이 포크송을 부르시면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시면 다함께 일어나 몸을 흔들고, 약간 지치신다 싶으면 최신 가요로 재롱잔치를 벌인다. 아니나 다를까, 맥주도 피처 두 개를 더 비웠다.
즐거웠다. 진심으로. 내가
옛날 노래라고 싫어하는 건 아니고, 교수님의 포크송도 꽤 운치 있어 좋다. 어차피 취해서 별 부끄러움도 없는 차에 댄스곡에 몸을 흔드는 것도 신난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시며 이렇게 늦게까지 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오늘 밤은 숙취로 밤새 뒤척이겠지.
[1] 수학적 귀납법: 어떤 명제(주장)이 무한개의 자연수에 대해 성립함을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증명
방법이다. 먼저, 어떤 명제가 1에 대해 성립함을 보인다. 그 다음, 그 명제가 일반적인 자연수 k에 대해 성립한다고 가정할 경우, k+1에 대해서도 성립함을 보인다. 그러면 1에 대해서 성립하였으므로 2에 대해서도 성립하고, 2에 대해서 성립하였으므로 3에 대해서 성립하고, 이런 식으로 무한개의 자연수에 대해서 모두 성립하는 것을 보일 수 있다.
[2] 공리: 어떤 이론 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 너무도 자명한 사실들을 골라 증명 없이 맞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이용해 다른 명제들을 증명한다. 대표적인 공리로는
“두 점이 주어졌을 때, 그 두 점을 통과하는 직선을 그을 수 있다.”가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3%B5%EB%A6%AC
[3] 제2차 정상상태(second wind):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3287&cid=40942&categoryId=32783
[4] Alt-Tab: 윈도우 운영체제를 쓰는 경우, 키보드의 Alt 키를 누른 상태로
Tab 키를 누르면 현재 앞에 떠 있는 프로그램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다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누르는 키조합이다. 당연히, 이 키조합을 누르면 바로 인터넷 강의가 뜨도록 준비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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