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2일 수요일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16~22화([시즌1完])/김창대


#16. 멀미

어렸을 때 차를 타면 멀미가 심했다. 차에서는 책을 읽는 것은 고사하고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기도 힘들었다. 그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잠만 청해야 했다. 해외학회도 딱 그렇다. 영어멀미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연구자들이 모여 최신 연구에 대해 논하고 친목도 다지는 자리, 하지만 나에겐 논문 발표 땐 눈치코치로 대충 알아듣다가 발표가 끝나면 재빨리 숙소로 도망가는 자리다.

교수님은 늘 학회는 논문 발표 듣는 것보다 쉬는 시간 혹은 식사 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게 고스란히 인맥이 되고 인턴, 포닥(박사후과정)[1],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긴, 발표 동영상도 전부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대에, 발표만 들을 거면 뭐 하러 공중에 기름 뿌리면서 해외까지 온단 말인가.

학교 밖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영어를 잘하는 줄 안다. 영어로 된 논문을 척척 읽어내니까. 학교에서 영어 강의도 많이 듣지 않느냐며, 정말 영어를 못 하는 게 아니라 겸손한 척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난, 외국인을 보면 1시간 전에 사랑니라도 뽑은 양 입이 굳어버리는 평범한 한국인일 뿐이다. 물론 국민학교 4학년 때 눈높이 영어를 시작했으니 (내 나이 31, 내가 초등...아니 당시 ‘국민’학생 때는 영어가 중학생이나 되어야 정규 교과과정에 등장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는 어언 21년째다. 하지만, 다들 알잖아? 영어가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럼 영어 논문을 사전도 없이 읽어내는 건 뭐냐고? 공대생들이 전공 이야기를 할 때 ‘외계어’라며 손사래 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영어 논문에 쓰여 있는 것도 바로 그 ‘외계어’다. 공대생의 언어. 영어의 껍질을 둘러쓰고 있긴 하지만 문장 구조나 단어들도 다 거기서 거기다. 1년여만 고생하면 금세 익숙해진다. 하지만 논문 바깥의 진짜 영어들은 습득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면 영어 강의는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남들이 우리의 언어를 ‘외계어’라고 표현하듯, 우리는 교수님의 강의를 ‘외계어’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해도 못 알아듣는 내용이란 말이다. 실상은 프레젠테이션을 ‘읽고’ 교수님께서 흘려버리는 단어들 중 몇 개를 ‘주워서’ 주제어만 파악해 간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는 것이지. 그러니 프레젠테이션도 안 해주는 외국인들의 말을 어떻게 알아듣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난 박사 4년차, 수업을 안 들은 지 3년이나 되었다.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일본에서도 노벨상이 나오고[2] 한국에서도 노벨(평화)상은 나오듯[3], 공대에서도 영어를 기막히게 잘하는 사람은 꽤 있다. 내가 그렇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영어 잘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까지 포함해서.


본격적인 멀미는 입국심사장에서 시작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는 항공사와 상관없이 한국인 승무원이 꽤 많이 탑승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안내방송도 나온다. 착륙 후에도 사람들과 화살표만 따라가면 영어를 안 쓰고도 입국심사장까지는 갈 수 있다. 그리고 입국심사장만 통과하면 영어를 ‘정말로’ 잘하는 준상이만 따라가면 된다. 보아하니 길영이도 영어를 잘 하더라. 보영이는 모르겠고. 하여간 네 명 중 한 명 이상 잘 하니까, 일단 안심이다. 어쨌거나 입국심사장만큼은 나 홀로 오롯이 버텨내야 한다. 예수가 황량한 사막에서 홀로 사탄에게 시험 받았던 것처럼[4], 나도 곧 이질적인 존재의 질문에 답을 해야만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보영이가 말을 건다.
 
 전보영(2): 오빠, 입국 심사장에선 뭐 물어봐요?
 김정원(4): ? , , 왜 왔냐, 얼마나 있다 갈거냐, 뭐 그런 거 물어보지.
 전보영(2): 아잇.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강준상(4): 너 외국 나온 거 처음이랬나?
 전보영(2): .
 강준상(4): 그럼 내 바로 앞에 서. 그리고 정 못 알아듣겠으면 나한테 손짓을 해. 내가 가줄게.
 전보영(2): 우와. 그래도 돼요?
 강준상(4): 저기 봐. 저기도 어르신들이 영어 못 알아들으니까 다른 관광객이 통역해주잖아.
 전보영(2): , 그러네.
 
나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실은 나도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해외 학회만 벌써 4번째, 석사 2년차 후배들 앞인데,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가방 속의 학회 등록증이 잘 있나 확인해봤다. 말이 안 통하면 보여줄 심산으로 챙겨놓은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몸집 큰 흑인이 여권을 받아가서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하더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드디어 질문을 시작한다.

 “...................... pupose ...... trave..?
 
큰일 났다. 발음이 잘 안 들린다.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영어 공부를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나…. 어쨌든, purpose travel이면 여행의 목적을 묻는 거겠지? 준비한 대답을 했다.

 “I will attend a conference. (학회에 참석할 것입니다.)
 “Oh, ......... what con..................?
 
무슨 학회인지 묻는 건가? 그렇겠지?
 “HPDC, it is related to computer science. (HPDC라고, 컴퓨터과학과 관련한 것입니다.)
 “Are you ................. computer?
 
컴퓨터 전공했냐는 거겠지 뭐.
 “Yes. (.)
 “How long .............................?
 
뭐지? , 진짜 발음 안 좋네. 얼마나 있다 갈 건가를 묻을 타이밍이긴 하니까….
 “About a week. (일주일쯤이요.)
 “When ..... you back .......................?

? 일주일 있다 간다니까? 언제 가는지는 왜 묻지? 잠깐, 날짜를 어떻게 말하더라… 날짜가 앞이고, 그 뒤에 달을 말하면 됐나? 6월이 June 맞지?
 “Twenty-third, June. (6 23일이요.)
 “................................................ Good bye.
 “Good bye.

마음 같아서는 감사하다고도, 수고하시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사말을 따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때야 깨달았다, 얼마나 있다 출국할 건지를 묻는 게 아니라, 학회가 얼마나 오래하는 거냐고 묻는 것이었으리라는 걸.

보영이도 도움을 받지 않고 통과했다. 대충 찍어서 응답했는데 다 넘어가줬다면서 좋아한다. 짐작컨대 나보단 많이 알아들은 것 같다.

짐까지 찾고 나니 현지 시간으로 밤 10. 늦은 시간이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준상이가 있으니까. 준상이가 택시를 잡고, 택시 기사에게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말하고, 도착해서 호텔 수속까지 도맡았다. 그 때마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준상이가 리더십이 있어서 먼저 나서는 것처럼.

방은 두 개였다. 원래 이인용 침대가 하나씩 있는 방인데, 방 하나에만 침대 하나를 추가해서 준상이랑 길영이랑 내가 묵기로 했다. 나머지 하나엔 보영이가 묵고.

미국에서의 첫 날이고 뭐고, 밤이 깊었으니 일단 잤다.


여독이 시차를 이겼던 걸까? 비행기에서 잔 게 별로 신통치 않았던 탓일까? 깊은 잠은 아니지만 부족하지 않게 잤다. 옆을 보니 준상이랑 길영이는 벌써 일어나서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노트북을 붙들고 있다. 이미 샤워도 마친 것 같다. 하긴, 워낙 바른 생활을 하시던 분들이시니 시차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야, 늘 졸리면 자고, 깨면 일어나던 사람이고.
 
 김정원(4): 벌써들 일어났어?
 강준상(4): 너 진짜 잘 자더라. 나는 시차 땜에 못 자겠던데.
 김정원(4):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 자서 그랬나봐. 지금 몇 시야?
 강준상(4): 7 30.
 김정원(4): 너네 오늘 워크숍[5] 갈 거야?

학회 공식 일정은 이틀 뒤부터 시작이다. 그렇지만 오늘과 내일은 워크숍이 몇 개 열린다.
 
 강준상(4): 난 꼼짝 않고 발표 연습해야지. 어딜 가겠냐.
 
맞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하는 너지만, 많은 청중 앞에서 영어로 발표하려면 연습 많이 해야겠지. 사실 해외 학회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준상이의 논문 발표 때문이다. 교수님이 준상이가 발표를 하러 가는 김에, 몇 명 더 함께 가서 발표하는 것도 봐주고 학회도 잘 듣고 오라고 보내주신 거다. 엄밀히 따지면 길영이는 2저자[6]니까 같이 오는 게 당연하고, 나와 보영이만 공짜로(?) 온 거라고 볼 수 있다.

 전길영(2): 저도 연구 과제 보고서도 있고, 조교 일도 있어서, 오늘 내일은 일만 해야 할 것 같아요.
 김정원(4): 그래? 나만 할 일 없는 거야?
 강준상(4): , 비싼 돈 들여 학회 왔으면 워크숍 듣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지. 니가 대표로 열심히 들어줘.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뭔가 잘난 척 같다. 자격지심인가.

 전길영(2): 방금 메시지 왔는데 보영이도 일어났대요.
 김정원(4): 그래? , 8 30분에 로비에서 보자고 해주라. , 너네도 가서 아침은 먹고 와야지?
 강준상(4): 난 패스~
 전길영(2): 전 갈래요. 이따 같이 나가요.
 
학회 참석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다. 전부 치킨치킨치킨[7] 거리는 발표야 알게 뭐람. 몇 달만 지나면 모두 잊는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어느 대륙을 거쳐서 학회에 갔는지, 학회 끝나고는 어느 관광명소를 돌아보고 왔는지 뿐이다.

장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학회에서 제공하는 음식이다. 장소가 학회에 대한 장기기억을 담당한다면, 음식은 단기기억을 담당한다. 학회장에 앉아 있을 때의 기분을 결정한다.

아침부터 여러 종류의 빵과 시리얼, 카페인 짙은 커피가 부족하지 않게 계속 공급된다면 오전 발표를 들을 힘이 난다. 핵심은 커피다. 커피가 아니면 깨어 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오후 2~3시쯤엔 식곤증이 몰려오게 마련이다. 이 때 얼마나 단 꿈을 꾸며 졸 수 있느냐가 점심 식사로 판가름 난다. 조그맣게나마 칼질이라도 시켜주면 아이유[8]가 나와 금요일에 만나자고 할 것이고, 편의점에서 사왔을 듯한 샌드위치가 나온다면 이국주[9]가 나와 먹방을 찍을 것이다. 저녁 식사는 안 나오는 때가 많다. 그러면 해외 음식점의 비싼 물가를 체험하며 출장비 잔액 계산에 머리를 굴려야 한다. 하지만 저녁 식사가 제공된다면? 그 날은 세계맥주 해외로케를 가는 날이다.


다행히 이번 학회 아침은 괜찮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계란후라이도 놓여 있다. 큰 빵에 계란을 끼우고 시리얼에 우유를 만 다음 양손에 들고 한 쪽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전보영(2): 그걸 다 드시게요?
보영이는 조그만 빵 두어 조각과 커피 한 컵만 들고 왔다.
 
 김정원(4): 먹고 더 먹을 건데…. 이 뱃살이 괜히 나온 게 아냐.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결국 더 먹진 않고, 커피만 큰 컵으로 하나 받았다. 보영이랑 둘이서만 워크숍 장소에 가서 앉았다.

학회랑 비슷하게 워크숍도 1시간짜리 강연과 20~30분짜리 논문 발표들로 구성된다. 간단히 말해서 계속 수업 듣고 앉아 있는 거란 말이다. 졸음을 쫓으려 흡수한 카페인으로 각성된 탓에 안 그래도 지루한 수업만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 보영이가 조그맣게 물어본다.

 전보영(2): 그런데, 저 정도 연구도 논문이 되는 거예요?
 김정원(4): 워크숍이잖아. 완성된 연구였으면 학회에 내겠지. 워크숍은 완전하지 않은 초기 결과라도 의미가 있으면 다 선정해줘.
 전보영(2): 근데 우리 연구실에선 워크숍 논문 잘 안 쓰잖아요.
 김정원(4): 워크숍 논문을 쓰면 발표 하러 와야 하잖아. 그게 돈이 얼만데, 비행기랑 워크숍 등록비랑 체류비랑 하면 몇 백만 원이야. 예전에 실적이 급하게 필요할 땐 쓴 적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럴 일이 잘 없었지.
 전보영(2): 워크숍 논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 내용으로 석사 졸업하면 되잖아요.
 김정원(4): 근데 또, 별 거 아니어 보이는 저런 논문 하나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너도 봐봐. 지금 1년 반째 연구실에 있지만, 저렇게 정리할 만한 연구 결과는 없잖아.
 전보영(2): 그렇긴 하네요.
 김정원(4): 어차피 워크숍 논문 갖고 박사 졸업은 안 되겠지만, 나도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전보영(2): 오빠, 힘내세요.
 김정원(4): 크크크.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근데 넌 걱정하지 마. 석사 졸업은 어떻게든 다 해.
 전보영(2): 정말, 제 때 할 수 있을까요?
 김정원(4): 에이, 할 수 있다니까. 다 해, .
 
석사 과정 학생들은 믿기 힘들어하지만 모든 선배들이 해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석사 졸업은 어떻게든 다 해’이다. 아마 듣는 사람에겐 ‘다 잘 될 거야’라든가 ‘열심히만 하면 네 꿈을 이룰 수 있어’ 같은 말처럼 들릴 것이다. 위로는 되는데 약간 썩은 동아줄 잡는 느낌의 말들. 그런 말들은 일단 통계적으로 틀렸다. 하지만, 석사 졸업이 어떻게든 된다는 건 통계적으로 맞는 말이다. 석사 과정을 2년을 넘겨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석사 과정을 3년 이상 하고 계신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과 함께 경의를 표한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다시 4명이 모였다. 안내된 곳으로 가니 종이박스에 담긴 도시락을 준다. 고급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푸짐하게 들어 있다. 탄산음료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커피, 주스 등도 가장자리 테이블에 마련되어 있다.

음식은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식탁이 원탁이라는 것이다. 무려 6명씩 앉게 되어 있다. 우리가 4명이니, 두 자리가 빈다. 저 자리에 누가 와서 앉을지 모른다. 다시 멀미가 시작되려고 한다.

내가 보영이와 나란히 앉고 그 양쪽으로 준상이와 길영이를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모르는 외국인과 바로 옆자리에 앉는 일은 피할 수 있겠군.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자리가 거의 찼다. 이대로라면 우리 테이블도 꽉 차는 건 시간문제다. .

결국, 두 외국인이 왔다. 둘 다 중년쯤으로 보인다. 이름표를 흘끗 보니 꽤 유명한 회사에서 온 사람들이다. 앉으면서 인사를 한다. 안 그래도 조그마해진 마음이 아예 점[10]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hello”를 말하면서 그들이 부디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 리가. 정말 외국인들은 내성적인 사람이 없더라. , 내가 그렇게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마는.

 외국인1: (모두를 쳐다보며) Are you Japanese? (일본 사람인가요?)
 
나는 순간 고개를 팍 숙이고 먹는 데 집중하는 척했다. 보영이도 입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길영이가 준상이를 쳐다본다. 역시 우리의 호프 준상이가 훌륭하게 응대한다.

 강준상(4): Were from South Korea. Were graduate students of Dreaming University. (우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꿈꾸는 대학교의 대학원생들입니다.)

준상이는 외국인들과 발표할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더니, 한국 문화, 특히 싸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회사에 인턴 자리가 있냐고도 물어봤다. 외국인들은 명함을 주면서 인턴 자리가 있는지는 논문 발표를 들어보고 나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성적인 척 연기를 하면서 먹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먹는 걸 잊지 않았다. 먼저 다 먹어 버리고 나면 고개를 들어야만 할 것 같으니까. 제발 나를 지목해 말 걸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고 빌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학회에와도 자기들끼리만 노는 데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학회에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를 보고도, 넷이서 같이 다니기보다는 둘둘이 따로 다니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까지 말한다.

누구는 몰라서 그러느냐고. 나도 이 사람 저 사람 인사하면서 외국인 친구도 만들고 싶다고. 논문 저자 목록에서만 봐왔던 대가들을 만나서 인사라도 하고 싶고, 예쁜 미국 아가씨에게 미국 매너를 빙자한 뽀뽀라도 받아보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은 멀미가 심하다. 책을 볼 수도 없고 옆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힘들다. 그저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영어 귀미테[11]는 없으려나….

[1]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2] 서송희 기자, “노벨물리학상 나카무라 슈지 교수 “내가 국적을 바꾼 이유는…””, News1 -http://news1.kr/articles/?1897165
[3]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노벨상 수여 시기의 신문기사 제목이 “한국엔 왜 노벨상이 없는가?” 에서 “한국엔 왜 과학 분야 노벨상이 없는가?” 로 바뀌었다.
[4] 성경 마태복음 4 1~11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5] 워크숍: 반나절 혹은 하루 정도로 짧게 열리는 학술 행사로, 논문 발표, 패널 토의 등으로 일반적인 학회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다. 독자적으로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큰 규모의 학회가 열릴 때 처음 하루 이틀에 시간과 장소를 배정 받아 개최한다. 일부 워크숍은 독자적인 학회로 발전하기도 한다.
[6] 2저자(2 저자): 여러 명이 함께 연구한 결과물을 논문으로 쓰는 경우, 공헌도가 높은 순으로 저자 이름을 기재한다. 2저자는 두 번째로 공헌도가 높은 저자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제 1 저자가 절반 이상의 공헌을 한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특히 학교에서 낸 논문의 경우, 1저자만큼이나 마지막 저자도 중요하다. ‘내가 이 연구를 전체적으로 지휘했다’는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지도 교수가 마지막 저자가 된다. 여러 명의 교수가 참여한 경우에는 중심축을 담당한 교수가 마지막 저자가 된다.
[7] 치킨치킨치킨: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 Doug Zongker이 쓴 ‘Chicken Chicken Chicken: Chicken Chicken’이라는 논문이 있다. 논문들의 구성이 다 비슷비슷하고 내용은 전부 못 알아먹겠음을 풍자해서 쓴 것이다. 논문은 http://www.cs.washington.edu/orgs/student-affairs/gsc/offices/old/433/PoCSi43302/papers/dougz.pdf 여기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이 논문을 ‘발표’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yL_-1d9OSdk 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이 압권이다.
[8] 아이유: 정말 유명한 가수. 수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금요일에 만나요’도 불렀다.
[9] 이국주: 2014년 가장 인기 있는 뚱뚱한 여자 개그맨이다. 식탐송으로 유명하다.http://www.youtube.com/watch?v=qVKz_ofXxNI
[10] : 수학적인 의미에서 ‘점’은 부피가 없다. 위치를 지정할 수 있을 뿐이다.
[11] 귀미테: 모 제약회사에 ‘키미테’라는 상품이 있다. 귓불 약간 뒤쪽, 구체적으로는 귀 뒤의 털이 없는 건조한 피부의 표면에 붙이고 있으면 멀미를 예방해주는 상품이다. 본문에 쓰면 대놓고 간접광고를 하는 것 같아서 약간 다르게 썼다. (사실은 원래 ‘귀미테’인 줄 알고 썼는데 검색해보니 아니었다. 충격 받았다. 나름 어릴 때 많이 써 봤는데…)

#17. 이상

기백명의 사람들 앞이다. 사회자[1]의 발표자 소개는 짧다. 아직 유명하지 않으니까. 이제 막 유명한 학자로 발돋움하려는 순간이니까. 심호흡을 한다. 청중을 훑어본다. 절반은 앞을, 절반은 태블릿을 보고 있다. 차분하게 발표를 시작한다. 약간의 유머를 섞어 연구 동기를 설명한다. 태블릿을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새롭다. 슬라이드는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영어는 또박또박하지만 유려하다. 연구 결과는 아이디어의 유용성을 납득시켜준다. 새로운 연구 방향도 제시한다. 청중이 박수를 친다.

많은 사람이 질문을 하려고 줄을 선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다. 대가다. 유명 학회마다 논문을 쏟아내는 사람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하지만 예상 질문 목록에 있다. 이제 발표자는 답변에서 먼저 약점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리고 그 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보완책을 제시하고, 계속 연구 중이라고 답변한다. 대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질문자는 인도 사람이다. 잘 안 들린다. 정중하게 다시 말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한다. 좀 더 천천히 말해준다. 들린다. 간단한 질문이다. 친절하게 답한다. 두어 개 더 질문에 답하고 나니 사회자가 시간 관계상 그만해야 한다고 한다. 단상을 천천히 내려온다. 다음 발표가 진행된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사람이 다가온다. 못다 한 질문을 쏟아낸다. 하나하나 대답해준다. 몇몇은 이메일 주소를 받아간다. 명함을 주기도 한다.

이게 내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준상이 이야기다.
정확하게 내가 꿈꿔왔던 방식대로의 논문 발표를, 준상이는 잘 마쳤다. 평소 연구실에서 발표를 잘 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나다. 하지만 열 번도 넘는 리허설을 통해 다듬은 발표는 정말 훌륭했다. 재능은 타고 날지라도 결과는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자괴감이나 질투는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승리도 필요없다. 이미 숱하게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연구에 걸맞지 않은 인간일 뿐이다. 연구는 준상이 같은 애들이 해야 마땅한 일이다. 난 어느 대기업의 부품이 되는 것이 가장 쓸모 있는 길이겠지. 박사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대기업에서 박사 학위 소유자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석사과정 때는 해외 학회를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해외도 처음, 학회도 처음이었으니까. 박사과정 1~2년차 때 해외 학회를 가면 욕심이 생겼다. 다음엔 꼭 내 논문을 발표하러 와야겠다는 욕심이다. ‘내’ 연구 성과로 몇 백 만원의 출장비[2]를 받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도 하고, 하루이틀쯤 해외 구경도 할 수 있다는 건, 여러 모로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다. 하지만 4년차인 지금은? ‘포기하면 편하다’고 누가 그랬던가?[3]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쯤에야 준상이가 돌아왔다.

강준상(4): , 이제 끝났네.
전길영(2): , 진짜 수고하셨어요. 잘 하시던데요.
전보영(2): 맞아요. 오빠, 영어도 진짜 잘 하시구.
강준상(4): 잘 하긴 뭘 잘해, 아까 그 인도인 질문 못 알아들어서 혼났잖아.

24 40초 동안 잘 해놓고, 20초 못 알아들은 걸 굳이 집어내는 이유는 뭘까?
 
김정원(4): 한 번 못 알아들은 것 같고, 되게 티내네. 수고했어.
전보영(2): 전 진짜 질문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어떻게 알아들었어요? 아니 그보단, 그걸 어떻게 즉석에서 답해요? 발표야 외운 대로 한다지만….
강준상(4): 내가 예전에 어떤 학회를 갔을 때가 생각나는데, 거기서, 한 일본인이 발표를 하는 거야.[4] 너도 알잖아, 한국인이랑 일본인이 영어 진짜 못하는 거. 근데, 들어보니까 딱 스크립트 외운 그대로 발표를 하는 거야. 티가 팍팍 나더라. 20여 분이나 되는 발표를 다 외워서 하다니 대단하다 싶었지. 근데, 그러면 질문 답변은 어떻게 할지 내가 다 걱정이 되더라구. 근데 발표가 딱 끝나니까 그 다음 장이 뭐였는지 알아?
전보영(2): 뭐였는데요?
강준상(4): 슬라이드 하나에 예상 질문 스무 개 가까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거. 게다가 하나하나 링크가 걸려 있었어. 질문마다 슬라이드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지.
김정원(4): 나도 그거 같이 봤잖아. 진짜 장난 아니었지.
강준상(4): 슬라이드가 준비되어 있단 말은 뭐겠어, 또 각각에 스크립트가 준비되어 있단 말일 거잖아.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데,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하는 게 그 수많은 슬라이드 중에 하나를 보여주는 거였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마 각 슬라이드에 대해 스크립트도 써두지 않았을까?
전보영(2): . 진짜 헐이다.
김정원(4): 그거 진짜 감명 깊었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운다는 게 뭔지 정확히 보여준 거잖아.

생각해보니 그만큼 슬라이드를 준비하지 않고서도 답변을 훌륭하게 해낸 자신에 대한 잘난 척 같기도 하고….


점심 시간, 두리번거리던 동양인 한 명이 준상이 얼굴을 보더니 우리 쪽으로 온다. 다행이도 한국인이다.

오정현(2): 안녕하세요? 강준상씨 맞으시죠? 아까 발표하셨던….
강준상(4): , 맞는데요.
오정현(2): 저는 한겨레 대학교 김영하 교수님 연구실의 오정현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교수님 같이 안 오셨나요?
강준상(4): , . 이번엔 학생끼리 와서요.
오정현(2): 정말요? 논문 발표도 하는데 학생끼리 왔단 말이에요?
강준상(4): 교수님께서 바쁜 일이 있으셔서요.
오정현(2): 진짜 좋으시겠어요….

오정현씨라고 했나?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물론 교수님과 함께 해외 학회로 출장을 가면 좋은 점이 많다. 교수님과 친한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 논문 발표를 듣다가 질문이 생기면 바로 물어볼 수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토의해볼 수도 있다. , 학회 장소 근처 맛집으로 인도해주시거나, 일정이 비면 관광 명소로 안내해주시기도 한다. 학회가 열리는 곳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아서 교수님은 여러 번 가봤던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예 차량을 빌리고 직접 운전까지 해주셔서 국립공원에 다녀온 적도 있다. 교수님이 미국에서 박사과정 유학을 하실 때 운전을 많이 해보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교수님 없이 해외 학회를 간다면? 일단 ‘출장’이 아니다. 그냥 해외 나가서 좋은 세미나 들으며 외국 음식 먹다가 짬짬이 관광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출장비’까지 나온다.

오정현(2): , 어쨌든, 저희 교수님께서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요. 혹시 시간 가능하세요?
강준상(4): 정원아, 우리 오늘 뭐 없지?
김정원(4): 너 논문 발표도 끝났으니 축하파티 한 번 하려고 했지만…. 거절하긴 좀 그렇잖아. 김영하 교수님이라고 하셨죠?
오정현(2): .
강준상(4): 그치, 거절하긴 좀 그렇지. 너네도 괜찮지?

보영이와 길영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학교 교수님이긴 하지만, 어른이 부르시는데 굳이 거절할 명분도 마땅찮고, 좁은 학계에서 괜히 밉보일 것도 없으니까.

강준상(4): 그럼 언제 만나죠?
오정현(2): , 그건 교수님과 다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연락처 좀 알려주실래요?
 
오정현씨가 핸드폰을 꺼내서 준상이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받아 갔다.
 
김정원(4): , 교수님께 우리가 거절하기 그렇다고 했다고 한 거나 그런 건 좀 빼고 말씀드려 주세요.
오정현(2): 저도 같은 대학원생인데, 그걸 왜 모르겠어요.
김정원(4): 역시, 대학원생은 다 같네요. 좋아요.
 
 
저녁, 한겨레 대학교 사람들과 만났다. 학회장 근처 중국요리 전문점이었다.[5]

김영하(교수): , 자네가 아까 발표했던 학생인가?
강준상(4): , 강준상이라고 합니다.
김영하(교수): 그래, 발표 잘 하던데. 요즘 권대성 교수가 논문을 많이 써. 이번에 아스플로스(ASPLOS)[6]에도 논문을 냈다던데, 맞지? 축하한다고 전해줘.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해외 학회에 논문 내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엔 권 교수 같은 젊은 교수들이 열심히 해서 참 많이 보인단 말이야. 우린 겨우 워크숍 논문 하나 내서 여기 온 거야. 논문 좀 많이 써야 하는데.
강준상(4): 교수님께서도, 작년에 마이크로(MICRO)[6] 내지 않으셨나요?
김영하(교수): 아하하하, 그 논문 읽어봤나?
강준상(4): 자세히는 못 읽어봤는데요, 하드웨어로 보안 문제에 접근하는 거였잖아요. 저도 관심은 좀 있는데 시도는 못 해보고 있던 연구 주제거든요.
김영하(교수): 아하하, 그래. 그거, 여기 이 친구랑 쓴 거야. 나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러라구.
 
강준상 저 무서운 자식. 아까 태블릿으로 왠 논문을 찾아보나 했는데, 김영하 교수님 논문이었다.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삽시간에 김영하 교수님의 강연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그저 추임새를 넣거나 중간 중간 적절한 질문으로 교수님의 말씀이 잘 이어질 수 있게 도울 뿐이었다. 교수님에 대한 아첨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이 끊기면 끔찍한 어색함과 고요함만이 가득할 테니까.

김영하 교수님은 끊임없이 연구 이야기를 하셨다. 친한 교수들이 논문 많이 쓴 이야기, 기업에서 좋아하는 연구 주제 이야기, 본인이 생각하는 미래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 그런 모든 것에 대해 논문 쓰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애국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에 이바지하라고 하셨다. 자신은 국립대학 교수라는 사명감으로 날마다 12시간 이상씩 연구하고 있다고 하셨다. 학생들도 매일 자기처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논문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우리 분야가 논문 내기 힘든 분야라고도 하셨다.

‘교수님처럼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교수님께서 퇴근을 안 하시니까 퇴근을 못하고 있는 것뿐이겠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웃었다.

두 시간 여의 강연을 마치고, 식사비는 김영하 교수님이 내셨다. 공부 열심히 하란 소리 듣는 대가로 밥 얻어먹었으면 뭐, 그리 손해는 아니다.


목요일 저녁, 선배 한 명이 찾아왔다. 박대철, 우리 연구실에서 석사를 마친 뒤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간 형이다. 박사 졸업 후에 잡은 직장이 마침 학회장 근처라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나와 준상이가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석사는 마치고 유학 준비를 한다며 연구실에 남아 있던 상태였다. 함께 한 건 반 년 남짓 뿐이다. 하지만 이역만리에서는 한국인이기만 해도 반갑다지 않은가.

6 45분쯤, 대철이 형이 도착했다.
 
박대철(박사): 어이, 준상이, 논문 된 거 축하해! 발표 잘 했어?
강준상(4): , 그럭저럭 했죠.
박대철(박사): 그럭저럭이라니, 엄청 잘 했나보네. 정원이는 잘 지내고?
김정원(4): 논문 못 쓰는 거만 빼면요.
박대철(박사): 하하하, 인사말이 센데. 넌 똑똑하니까 곧 논문 나올 거야. 네가 몇 년차지?
김정원(4): 박사 4년차요.

아주 짧게, 형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논문 못 쓴다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박사 4년차는 좀 높은 연차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 만에 만난 사이였다. 형은 금세 다시 미소를 지었다.

박대철(박사): 원래 우리 분야가 논문 쓰기 힘들어. 곧 잘 되겠지. (보영과 길영을 바라보며) , 안녕하세요. 박대철이라고 합니다.
전보영(2): 안녕하세요. 석사 2년차, 전보영입니다.
전길영(2): 저는 석사 2년차, 전길영입니다.
박대철(박사): 얼굴을 보아하니 굳이 안 물어봐도 저보단 한참 동생들 같은데, 맞죠?
전보영(2): , 편하게 하셔도 돼요.
박대철(박사): 만나서 반가워요. 아참, 준상이 너 아스플로스(ASPLOS)도 됐다며, 너 진짜 잘 나간다?
강준상(4): 교수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그렇죠.
 
이 순간, 조금 전에 대철이 형이 “원래 우리 분야가 논문 쓰기 힘들어”라고 했던 걸 되새기는 건 나뿐이겠지? 준상이와 내가 지도교수가 같다는 것도. 그리고 준상이와 달리 나는 논문이 없다는 것까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 다 포기하지는 못 했나 보다.


우리는 대철이 형의 승용차를 타고 어느 바비큐 음식점으로 갔다. 메뉴 고르기를 어려워하자 형이 알아서 몇 가지를 주문해주었다. 잠시 후 기름진 음식이 가득 차려졌다.

박대철(박사): 근데 준상이 넌 졸업하고 뭐할 거냐?
강준상(4): 해외 포닥[7] 자리를 잡아보고 싶긴 한데요, 잘 될지 모르겠어요.
박대철(박사): 너 논문 몇 개 있잖아. 그거 내세우면 될 걸? 미국에서도 그렇게 일류 학회 논문 몇 개씩 있는 사람 많지 않아.
강준상(4): 그럼 다행이고요.
박대철(박사): 그래, 포닥이든 뭐든 미국에 나와. 미국에 있어야 여기서 취직하기도 쉬워져. 너만 관심 있으면 내가 졸업한 학교 교수님들께 좋게 말씀드려볼 수도 있으니까, 언제든 얘기하고.
강준상(4): 정말요? 그럼 저야 정말 좋죠!
 
잘난 자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어서 끝내버리고 싶었다.
 
김정원(4): 근데 형, 오늘 일찍 퇴근하셨네요?
박대철(박사): ? 오늘 막판에 뭐 좀 정리한다고 오히려 약간 늦게 퇴근한 건데?
김정원(4): 아니, 미국은 정말 칼퇴근하는 거예요?
박대철(박사): 여기는 칼퇴근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 퇴근은 원래 정해진 시간에 하는 거니까.
김정원(4): 소문으로만 듣던 게 정말 사실이군요.
박대철(박사): 그러니까 너도 꼭 알아봐서 미국으로 포닥부터 와. 그리고 여기서 직장 알아봐.
김정원(4): 논문이 있어야 포닥도 가죠.
박대철(박사): 얼마 전에 팀 사람들이 나보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한국 기업들은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했지. 그랬더니 깜짝 놀라더라. 애들 학교 데려다 주는 건 누가 하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학생 혼자 밤거리를 다니는 것도 그리 위험하지 않은 나라라고.[8]
강준상(4): 그거 좀 슬프네요.

김정원(4): 근데 애들 학교를 매일 데려다줘요? 그런 건 대치동 엄마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박대철(박사): 여기는 아이들 학교 행사 있으면 부모님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한국에서는 반장, 부반장 엄마나 가잖아. 그래서 맞벌이 부부 자녀는 반장하기도 힘들고. 그러니까, 보영씨라 그랬죠? 길영씨랑. 두 분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유학 가세요.
전길영(2): 전 군대 문제도 걸려 있어서, 유학 가기가 쉽진 않은데요.
박대철(박사): 그게 좀 어렵긴 할 텐데, 그래도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시고 나오시는 게 좋긴 할 거예요. 하나 더 말씀드릴까요? 제가 유학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지도교수님이 새로 온 사람도 있으니 파티 한 번 하자고 교수님 댁으로 초청을 하셨어요. 신입생 환영회 같은 거죠. 근데 거기서 교수님이 바비큐 굽고 음식 다 차리고 하는데, 학생들은 그냥 다리 꼬고 앉아서 히히덕거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초청을 한 거면 교수님이 일을 다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죠.[8] 물론 다 같이 일하는 게 더 좋기야 하겠죠. 그런데 교수만 일하고 학생들은 노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적이지 않아요?

전길영(2): 정말,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전보영(2): 그래도 전 한국에서 사는 게 편할 것 같은데…. 나라에서 하는 연구소 같은 데는 좀 낫지 않아요? 연구소는 대기업처럼 빡세진 않고, 직급도 몇 단 계 없어서 위계질서가 그렇게 엄하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강준상(4): 아는 형 중에 연구소 들어간 형이 있거든. 근데 연구소란 게, 우리가 지금 프로젝트 따와서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프로젝트를 따와야 운영이 되나봐. 근데 그 일들이 쉽지만은 않대.
전보영(2): 나라에서 월급 다 주는 거 아니었어요?
강준상(4):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프로젝트를 따오긴 해야 하나봐. 그리고, 연구하고 싶으면 연구소 오지 말고 학교로 가라던데?
전길영(2): ,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읽는 논문 중에 우리나라 연구소에서 쓴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김정원(4): 국내 학회 가면 종종 있어. 그리고, 우리 분야 연구하는 연구소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뭐 사실, 해외학회에 우리나라에서 쓴 논문 자체가 많지 않잖아. 우리 분야에서는 말야.
전길영(2): 그건 그렇죠.

전보영(2): 그럼 연구 계속하려면 교수를 해야 되는 거예요?
강준상(4): 근데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 받고 우리나라에서 교수하는 게 쉽진 않아. 워낙 유학파들이 교수하겠다고 쏟아져 들어오니.
김정원(4): 그리고 우리 교수님 봐라. 대기업 가는 게 더 낫다 싶을 정도로 밤낮없이 일하잖아.
전보영(2): 그럼 아예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나….
김정원(4): 근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괜찮다는 직장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긴 해. 하나 같이 척수 쭉쭉 뽑아먹는 직장이거나, 돈을 소금에 잔뜩 절여 주는 직장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전보영(2): 오빠들 왜 그래요! 이제 석사 졸업할까 말까 하는 후배한테….
김정원(4): 이게 현실인 걸 어떡하냐. 근데 우리가 좀 알아주는 학교에 있으니까 ‘어느 직장이냐’를 고민하는 거야. 학교 바깥으로 나가봐. 내 또래는 죄다 취업준비생 아니면 계약직이야.

음식 값을 지불하면서, 대철이 형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15%의 팁을 얹었다. 좀 아까웠다. 차라리 음식 가격에 포함시키던가, 왜 돈 계산만 복잡하게 따로 받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숙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팁’을 주는 건 그만큼 ‘사람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신사적인 손님들도 10~20%의 팁을 얹어주는데, 한국의 진상 손님들은 할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했다. 팁은커녕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제 값도 못 받는 서비스센터 기사들 이야기도 생각났다.[9]

야근 없는 나라 미국,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하던 정치인마저 결국 혼자 저녁이 있는 삶을 살러 사라진 한국.[10] 팁을 주는 나라 미국, 그리고 진상 손님이 개그 소재로 등장하는 한국.[11]정말 미국이 이상이고 한국이 이상한 걸까?

작가 이상[12]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러다 25세 때 시골에서 한 달간 지내게 되었다. 그 때서야 그는 도시 생활의 자극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시골 생활은 권태로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권태를 느꼈다. 마침내 더 화려한 도시, 일본 동경으로 떠났다. (당시는 일본 강점기다. 따라서 제일 큰 도시는 동경이었다.) 하지만 동경도 그가 동경하던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는 폐결핵이 심해져 동경에서 죽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가방엔 늘 불어사전과 영어사전이 있었다고 한다.[13]

이상의 이상은 끝이 없었다. 채워질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과 발밑에 밟힌 것은 완전히 달랐다.

그래, 이상 같은 미국도 알고 보면 이상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의료보험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병원도 제대로 못 다닌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국에 휴가차 들어온 유학생들이 꼭 치과에 한 번씩 들른다지. 복지 정책도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노숙할 정도가 되어야만 혜택을 받는 다고도 했다. 게다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총기 사고는 어떤가.

우리의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위험하지 않은 나라 아닌가. 그래서 야근도 할 수 있는 거다. 또 워낙 정이 많아서 다들 ‘밑지고 판다’고 하는 나라 아닌가. 팁을 받기는커녕.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절대 내가 영어를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 왜 자꾸 정신승리 같지….

[1] 사회자: 학회는 연구 주제 별로 여러 세션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세션마다 사회자가 따로 있다. 사회자의 역할은 주로 연사를 소개하고 발표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서가 시간 내에 끝나도록 해야 하며, 질문자가 아무도 없으면 직접 한 두 가지 질문을 해주어야 한다. 정식 명칭은 영어로는 ‘chair, 한국어로는 ‘좌장’이다. 본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자’라고 표기했다.
[2] 해외 학회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열린다. 그래서 비행기 삯만 해도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약 일주일 간의 숙박비, 식비 등의 체재비를 포함하면 2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몇 십만 원을 호가하기도 하는 학회 등록비도 추가된다.
[3] 포기하면 편해: 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대사는 정반대의 의미라고 한다. ‘포기하면 편해’는 누군가가 제작한 유머용 그림일 뿐이라고.https://mirror.enha.kr/wiki/%ED%8F%AC%EA%B8%B0%ED%95%98%EB%A9%B4%20%ED%8E%B8%ED%95%B4
[4] 2010년에 ‘이스카(ISCA)’ 학회에서 Yasuko Watanabe라는 일본인이 “WiDGET: Wisconsin decoupled grid execution tiles”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당시의 발표 자료는http://www.cs.wisc.edu/multifacet/papers/isca10_widget.pptx 에서 받을 수 있다.
[5] 전세계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면서도,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이 중국음식이다. 특히, 해외에서 ‘밥’을 먹고 싶으면 중국음식점이나 베트남음식점에 가서 빨간 고추 그림 그려진 메뉴를 시키면 된다. 그러면 십중팔구 밥이 딸려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 밥처럼 맛있진 않지만.
[6] 아스플로스(ASPLOS), 마이크로(MICRO): 둘 다 매 년 열리는 학회다. 컴퓨터 구조와 운영체제 분야를 포괄한다. 풀어 쓰면 각각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와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이다.
[7]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8]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형이 겪었던 일들을 각색해서 인용한 것이다.
[9] 박혜영. “비 오는 날 전봇대 오르다 죽어요”...A/S기사의 눈물. 오마이뉴스. 2014 10 19.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4199
[10] 최준영. 잠재적 대권주자 22인 한줄평. PPSS. 2014 9 18.http://ppss.kr/archives/29196
[11] 최근 tvN 코미티 빅리그의 ‘갑과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정말 웃긴데 슬퍼서 잘 못 웃겠다http://youtu.be/LAed3pYyi1k 에서 볼 수 있다. 예전에 KBS 개그콘서트에 나온 ‘정여사’ 코너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다.
[12] 작가 이상: 1910년 출생하여 1937년 작고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소설 <날개>, <건축무한육면각체>가 있다. ‘이상문학상’이 이 작가를 기리는 상이다.
[13]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프로네시스. 69-77, 100-107.

#18. 인과

아이티 대지진으로 30만여 명이 죽었을 때[1], 난 성금을 보내는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2만여 명이 죽었을 때[2], 난 방사능을 바다로 뿌린 일본에게 분노를 느꼈다. 세월호 침몰로 300여 명이 죽었을 때[3], 난 슬픔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자살 소식을 들었다. 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신 건강에 좋은 뉴스가 뜨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난 줄담배라도 피우듯 뉴스를 클릭해왔다. 그러다 ‘명문대생 아파트에서 투신’ 기사를 봤을 때는 안타까움에 담배 연기 내뿜듯 한숨 한 번 쉬었다. ‘투신한 D대생 끝내 숨져’[4]로 바뀌었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투신해서 목숨을 건지기란 어려우니까. 하지만 ‘대전 소재 D대생 자살, 학생들 충격’으로 바뀌었을 때, 두개골이 서늘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학교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앞뒤로 누운 삼각형 두 개가 보인다. 어느 언론사가 ‘꿈꾸는 대학교 학생 투신 자살’이라고 까발린 기사 링크가 올라와 있다. 가만히 웹브라우저를 닫았다. 오늘은 더 이상 뉴스도, 학교 커뮤니티도 보지 못할 것 같다.

연구실은 조용했다. 키보드만 인기척을 냈다. 다들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꼈다. 각자의 소리 속에 시간이 흘러간다. 기어코 예능을 하나 켰다. 연예인들이 여행을 다니며 게임을 한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을 검색해 본다. 제목을 보고 흥미 있어 보이는 것들을 골라 저장한다. 이중에 몇 개나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캘린더도 정리하고 이메일도 확인한다.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페이스북에서 친절히 알려준 메일을 지운다. 내년에 또 보내줄 테니까. 그런데, 그가 죽었어도 보내줄까? 핸드폰을 켜서 웹툰을 몇 개 보았다. 캐릭터들이 재미나게 살고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연구실 사람들과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에 연합뉴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D대학 학생 자살 소식이 나온다. 고개를 숙여 밥을 바라봤다. 준상이가 옆에 있던 주성에게 묻는다.
강준상(4): , 저거 어느 학교야?
정길이 형이 대신 대답한다.
심정길(3): 우리 학교잖아.
강준상(4): 진짜요? 허이구, 왜 그랬대.
하주성(1): 요즘 학부생들 학점 안 나오면 이공계 장학금 바로 짤린대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던데.
강준상(4): 학점 몇이면 짤리는데?
하주성(1): 3.0 못 넘으면 짤린다나봐요. 그게 원래 2.0이어서 거의 다 받는 거나 다름없었는데, 그게 3.0으로 올라가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대요.
잠시 정적. 준상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준상(4): 근데, 3.0이면 좀 열심히 하면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잠시의 정적 동안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지금 저 말로써 준상이는 죽음을 그저 현실 도피 방편으로 치부해버렸다. 망자에게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느냐고 비아냥대버렸다. 생각이 없는 걸까? 그러나 난 계속해서 밥만 집어넣었다. 말은 꺼내지 않았다.
심정길(3): 여기 학부는 학점 되게 짜게 주던데. 내용도 굉장히 어렵고.
강준상(4): 저도 조교 해봐서 그건 알죠. 그런데 열심히 하는 애들은 다들 B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아가던데요.
하주성(1): 근데 어차피 상대평가니까 누군가는 3.0 이하가 될 거 아니에요. 처음에 성적 기준 올라갔을 때 학교에서 절대평가 하니까 괜찮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아무리 봐도 상대평가인 과목들이 많아서 학생들이 불만이 많았어요.
심정길(3): 하긴, 요즘 조교 하면 학생들이 엄청, 뭐랄까, 경쟁적으로 한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더라.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1 1점에 엄청 목숨 걸더라고.
전길영(2):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하던 애들이 와서 하던 버릇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심정길(3): 원래도 좀 그러긴 했는데, 요 몇 년 새는 많이 심해졌어. 다들 신경 많이 쓰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강준상(4): 어쨌든 진짜 안타깝다. 그래도 좀 살아보지.
심정길(3): 그러게, 부모님은 어쩔 거야.
저 말들에 과자봉지에 담긴 과자만큼이라도 영혼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정적. 연구실 사람들끼리 밥 먹을 때 할 말 없어 조용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만큼 불편한 적은 없었다.
침묵은 주성이가 깼다.
하주성(1): 이거 샐러드가 학교 식당답지 않게 싱싱한데요?
보아하니 정말 그랬다. 우리가 좋은 타이밍에 온 걸까? 양상추가 아기 피부 같은 탄력과 수분을 자랑했다.
‘싱싱하다.’ 생각해보면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갑자기 무섭게 들린다. 사람들은 갓 캐낸 야채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갓 죽은 것을 좋아한다. 싱싱하게 보관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사체 보관을 잘 하려고 한다. 다시 식판을 보았다. 모두가 죽은 것이다. 죽여서 씻은 것, 죽여서 삶은 것, 죽여서 굽고 양념을 바른 것…. 우리는 죽음을 먹으며 삶을 연장시킨다.

인간도 탯줄이 끊기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아이에게 주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일지도.


밥을 다 먹고 들어오는 길,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뉴스 보고 전화하신 거겠지. 연구실 사람들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뒤쳐져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리 아들 잘 있었냐.
“네, 엄마. 밥 먹고 다시 연구실 들어가는 길이에요.
“또 연구할라고?
“해야죠. 출근도 늦게 하는데. 그래야 졸업하지.
“뉴스 보니까 니네 학교에서 학생이 자살했다더라.
“들었어요.
20대 후반쯤부터는 어머니께 단답형 대답은 잘 안 하려고 해왔다. 나라도 엄마의 애인이 돼주고 싶어서다. 엄마도 여자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엄마를 애인대접 해줄 리가 만무하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길게 대답하기 싫다.
“니는 힘든 거 없제?
“네,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내 컴퓨터엔 자퇴원이 다운로드 되어 있고[5], 논문이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 나오는 준상이와 다르게 난 씨앗 하나 제대로 뿌리지 못한 것 같고, 우울증이란 게 뭔지 조금씩 맛보고 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엄마가 뭘 어쩔 건가. 박사가 힘들다고 박사를 그만두면, 뒷감당은 고스란히 어머니 등골이 맡을 것 아닌가. 그러기엔 난 너무 철이 들어버렸다.
“그래, 정원아, 엄마가 살아보니깐 열심히 사는 거, 뭐 없더라. 그냥 편하게 적당히 해. 알았지?


별일이다. 늘 열심히 살라고 하셨던 엄만데.
“알았어요, 엄마.
“근데 갸는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 같다더라. 걔 엄마는 어쩌면 좋누.
정말 죽으면 고통이 끝날까? 아니면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걸까? 걱정은 늘 산자에게로 향한다.
“그러게 말이야.
이번에도 단답이다.
“근데 요즘 학교 분위기가 그렇게 안 좋았어? 그 장학금 성적 올라간 것 때문에?
“여기 애들 공부 진짜 잘 하던 애들만 모였잖아. 그런 애들이 남들 다 받는 것 같은 장학금을 자기만 못 받으면 엄청, 뭐라 그래야 되나, 부끄럽다고 해야 되나? 하여튼 그럴 거 아냐. 그러니까 경쟁도 심해지고 그랬어. 자기 점수만 챙기는 애들이 많아지고.
엄마가 묻는데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아까 준상이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해버렸다.
“공부 잘해야 장학금 받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거 가지고 자살까지 해버렸으니, 정말 부모는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한껏 답답해졌다. 하지만 엄마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함께 살아보지도 않았으니까. 함께 살아 본 준상이도 모르는 데 뭘.
“엄마, 이게 차라리 과에서 1등만 받고 그런 거면 몰라도, 이건 절반 정도는 받고 절반 정도는 못 받는 거잖아. 엄마도 생각해봐. 이건희가 돈 많은 게 부러워, 아니면 엄마 친구가 샤넬 빽 하나 산 게 부러워?
비유 한 번 참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대신 이어 붙였다.
“그리고 장학금 한 번 못 받으면 그게 몇 백인데, 그거 고스란히 부모님이 부담하시는 거 아냐. 그러니까 애들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 그래도 우리 아들은 잘 해줘서 고맙다. 너무 힘들 게 하지 말고, 적당히 하고 일찍 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건강하다. 건강이 최고야. 알지?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학원에 그런 제도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참았다. 엄마 아들만 잘 하면 끝이냐고 따지고도 싶었지만 참았다. 늘 같은 잔소리만 늘 같은 거짓말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일찍 잘 게요.
“그래, 그럼 들어가라.
나는 죽은 그 학생을 모른다. 그가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성적 때문인 걸로 단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동조해버렸다. 핑계는 있다. 그들이 그 학생이 열심히 안 해서, 그 학생이 약해서 자살한 것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 설사 성적 때문에 자살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다. 그리고 문화의 문제는 곧 구조와 정책의 문제이다. 하지만 내 항변은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되려, 그가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추측만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학생의 성적조차 알지 못하는데.

학교 밖 친구 몇몇에게 연락이 왔다. 하나 같이 뉴스를 보았다며, 너는 괜찮으냐고 했다. ‘나는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하니 걱정마시라’며 대충 넘겼다.
이름도 모르는 그 학생 덕에, 나는 불편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귀찮았다.


오늘은 다들 빨리 퇴근하는 분위기다. 나도 9시쯤 연구실을 나왔다. 연구 더 해서 무엇 하리,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오늘이니, 기숙사에서 빈둥대다 일찍 잠이나 청하련다.

여름[6] 밤공기가 고맙게도 선선했다. 머리카락 틈새로 미지근한 공기가 비집고 들어간다. 머리가 맑아온다. 나는 비로소 외면하고 있던 생각과 대면했다.
 
그는, 왜 떨어졌을까?
 
약한 심성 탓이었을까?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까?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을까? 극한 상황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그들처럼 정신력이 강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약한 사람이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료를 요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하다고 모두 죽음을 택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약하기 때문에 투신한 것도 아니다.

아니면, 실연을 당한 걸까?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을까?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신 걸까? 왕따를 당했을까? 누군가가 그랬다. 자살은 결코 한 가지 이유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니면, 정말 성적 탓이었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잘 나가던 한 학생이, 대학에서 더 이상 잘 나가지 못 하게 되자, 게다가 그로인해 부모님이 몇 백만 원을 더 짊어지게 되자, 그 정서적·경제적 부담을 못 이겨낸 걸까?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다시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보겠다고 한 걸까?

미국의 한 정신의학자가 과거 100여 년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7] 미국에서 인구 만 명당 살인율과 자살율은 공화당 집권기에 엄청나게 올라가고, 민주당 집권기에 거의 그만큼이 내려갔다고 한다. 물론 공화당이 집권했다고 무조건 살인율과 자살율이 폭등하는 건 아니었지만, 폭등하는 일은 공화당 집권기에만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는 일은 민주당 집권기에만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공화당이 직접적으로 살인과 자살을 늘리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살인과 자살의 진짜 원인은 ‘불평등’이다. 공화당은 불평등을 높이는 정책을 썼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사람들을 더 폭력적으로 만든 것이다. 타인을 향해서든 자신을 향해서든. 당연히 공화당이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사회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돈’이 ‘성적’으로 치환되어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좋은 성적이 졸업 후의 많은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될 거라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팽배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인식을 어른들이 심어주기 때문이다. “넌 공부 열심히 해서 큰 사람 되어야 한다.”고 어른들은 강조한다. ‘큰 사람’에 돈을 많이 벌지 못 하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 다는 건 상식이다.

그 와중에 학생을 ‘장학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는 정책이 나왔다. 이 정책은 불평등을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수치심을 심화시키고, 가정에까지 연결시켰다. 그리고 가장 연약한 학생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이런 결론, 참 섣부르고 명쾌하다. 나는 유서 한 번 읽어보지 않고 그를 성적 비관자로 명명했다. 성적 비관이 자살의 원인이며 정신력이 약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을 거라는 낭설을 결론 삼았다. 자기 성적을 비관하게 만든 원인으로는 사회를 지목했다. 미국의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근거를 더했다. 물론 그 ‘사회’에서 나는 빠진다. 나는 책임을 벗고 분노할 자격을 얻었다. 참 쉽다.


기숙사 로비에 도착했다. 게시판에 택배가 온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주문한 것이 없어도 괜시리 한 번씩 쳐다보고 가게 된다. 며칠 전부터 보이던 이름 하나가 오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택배가 왔는데 가져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문연구요원이라 훈련소[8]라도 간 걸까?

그래, 결과가 다 일어난 다음에, 원인을 찾은들 무슨 소용이더냐. 이미 죽었는데 뭐 하러 원인이나 찾고 있나. 원인을 제거해서 예방해야하지 않느냐고? 그럴 의지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며, 어쩔 수 없다며 또 외면할 것이 아닌가. 나도 이미 그렇게 묵인된 규정들을 다시 한 번 묵인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용케 잘 버티고 있는 것뿐이다. 수능으로 한 줄 세우는 것이 문제라고 뉴스에서 떠들 때, 우수 학생들을 뽑고 싶어 하는 대학들의 욕망과 우수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욕망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결책은 한 줄 세우기 밖에 없다고 자위했던 사람이다. 하나의 죽음을 서둘러 외면하고 다시 나의 생존에 감사하며 살아갈 사람이다. 긍정이나 열정 따위의 힘을 빌어서.

그래, 어쩌면 그는 그나마 꽤 앞에 서 있다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 뉴스라도 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요즘엔 노숙자의 죽음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무섭다. 혹시 기숙사 택배 게시판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이름도 그런 건 아닐까? 이제는 그 이름이 지워진다 해도, 그 지워진 사유를 몰라 두려워할 것 같다. 아냐, 훈련소에 갔을 거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죽음은 지워야 한다. 최대한 빨리 지우고 우리는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 그 ‘살던 대로’가 죽음을 향해 세차게 달려 나가는 길일지라도.

며칠간은 언론이 그의 죽음을 기억해줄 것이다. 하지만 3일장이 끝나고 나면, 언론도 더 이상 뉴스거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뒤따라 우리도 잊게 될 것이다. 나도 머지않아 죽음을 잊고 삶에 목맬 것이 뻔하다.

삶이란 게 어차피 죽음으로 향한 길이라면, 레이스를 벌일 필요는 없을 텐데….


[1] 이동경, “아이티 지진 참사 4주년…‘끝나지 않은 비극’”, 연합뉴스, 2014 1 13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1/13/0601230100AKR20140113030100087.HTML
[2] 조준형, “일본 원전사고 3주기,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4 3 10,http://www.huffingtonpost.kr/2014/03/10/story_n_4933673.html
[3] 손상원·박철홍, “세월호 실종자 시신 102일 만에 발견…여학생 추정(종합2), 연합뉴스,  2014 10 28,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0/28/0200000000AKR20141028175354054.HTML
[4] 이 소설의 배경인 가상 대학의 이름은 ‘꿈꾸는 대학교’, 영어로는 ‘Dreaming University’이다.
[5] 1 <새벽 세 시>  http://scienceon.hani.co.kr/153375
[6] 여름: 혹시 눈치 채신 분이 있을까 싶은데, 이 소설은 사실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7화에 나온 딸기파티는 4, 11화에 나온 친구 결혼식은 5, 13화와 14화에 나온 신입생 환영회는 5월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지요. 이번 17화의 배경은 6월입니다.
[7]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출판.
[8] 박사학위 과정 동안에 연구하는 것으로 병역 의무를 대체하는 것을 ‘전문연구요원’ 제도라고 한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하는 것과 비슷한데, 근무지가 학교라고 보면 된다. ‘산업기능요원’과 마찬가지로 병영생활은 하지 않지만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은 받는다. 이를 간단히 ‘훈련소 간다.’라고 표현한다.

#19. 비트

기다리고 기다리던 윤지광 선생님의 메일이 왔다. 입금됐다는 메일이다.
 
[ 2014-06-24 ] 지급(입금) 처리된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지급처리된 사항에 의문점이 있으시면
자금운용팀 출납(지급) 담당자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 : 윤지광 T.2276

두 개의 연구 과제에서 1,434,000원이 들어왔다. 세금 떼고 들어왔으니 원래는 150만 원쯤 됐을 거다. 내가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전일제 박사과정의 최대 인건비는 250만 원이다.[1] 250만 원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박사 학생들을 하루 종일 계속 부려먹어야 적절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정도로 많은 연구 과제가 있어야 한다. 돈 받는 연구 과제로만 말이다. 또한, 학생은 법적으로는 하루에 최대 8시간, 우리나라 이공계 현실을 고려하면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돈 받는 연구 과제를 하는 데 쏟아야 한다.

실제로 250만 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그만큼 많은 연구 과제를 따내는 게 힘들다. 5000만 원짜리 과제 하나 따내봐야 학교에 일정 비율 떼어 주고 나면 4000만 원도 안 남는다. 또 전부 인건비로 줄 수도 없다. 연구를 하려면 여러 가지 장비도 사야 하고, 학회 가서 논문 발표라도 할라치면 비행기 삯에 뭐에 해서 몇 백만 원씩 우습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5000만 원 과제로 대학원생 한 명 꽉 찬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 그런데 우리 랩처럼 교수 한 명에 대학원생이 10명쯤 되면? 답 없다.

, 꽉 찬 월급을 받는 것, 즉 계속해서 연구 과제만 하는 것은 대학원생의 존재 의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학원생은 연구를 해서 학위를 따려고 있는 존재다. 돈 벌려고 있는 게 아니다. 연구를 하고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연구 과제를 하는 것이다. , 수업도 들어야 하고 조교도 해야 하니 하루 종일 연구과제만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래서 ‘참여율’이란 게 존재한다. ‘일과 시간 중에 몇 %를 해당 연구 과제를 위해 쓰겠습니다’ 하는 의미다. 그리고 인건비는 참여율에 비례해서 나온다. 참여율 100%가 월급 250만 원에 해당한다. 두 개의 연구 과제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고 한 쪽은 참여율이 14.4%, 다른 쪽은 45.6%. 합이 60%, 150만 원이다.

참여율이 60%라고 해서 하루에 4.8시간(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의 60%)씩 꼬박꼬박 연구 과제를 하는 건 아니다. 모든 이공계인들의 일하는 방식이 다 그러하듯이, 평소엔 손 놓고 있다가 마감 기한이 다 되면 하루에 180%씩 한다. 그렇다고 돌을 던지진 마시라. 손을 놓고 있을 때라도, 뭐라도 공부하고 있으면 그게 간접적으로 과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논문이 과제 실적으로 들어가기도 하니까. 과제가,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의미도 있으니.


얼마 전에 들어온 조교 수당까지 하면 이번 달 수입은 약 200만 원.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저 임금이 평균 임금이 되고 그나마 수습이라는 이름, 심지어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깎여나가는 시대니까.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학교 다른 학과만 봐도 같은 대학원생인데 100만 원도 못 버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간혹 최대치에 가깝게 버는 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부럽진 않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노동하기 때문이다. 졸업한 선배들은 회사에 가면 덜 일하면서도 훨씬 더 많이 번다며, 지금은 적게 버는 거라고 한다. 신경 쓰기 싫다. 신발이 없는 나라에서는 나이키 운동화 때문에 자존심 상할 일은 없을 테니까.

국현이도 메일을 봤나보다.
김국현(3): ? 월급 들어왔나 보네요.
김정원(4): , 나도 메일 받았어.
뒤편에 앉은 연정이가 대화에 끼어든다. 
서연정(1): 월급이 들어왔어요?
김정원(4): 너 계좌번호 적어낸 적 있지? 그 통장 확인해봐.
김국현(3): , 1들 이번 달에 안 나오고 다음 달에 두 달 치 나온댔어. 과제에 너희 이름 넣는 게 좀 늦어져서 그러나봐.
서연정(1): 에이, 아쉽다. 그럼 선배님이 월급 받은 기념으로 저 밥 사주세요!
연정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굉장히 활기찬 목소리로 말한다.
김국현(3): 그러지 뭐. 오늘 저녁은 내가 사줄게. 정원이 형, 오늘은 학교 식당 말고 밖으로 나가서 먹을까요?
서연정(1): , 오늘은 제가 선약이 있구요, 다음에 따로 사주세요.
김국현(3): 그래? , , 그럼 다음에 얘기해.
저거 지금, 국현이는 돈만 내겠다는 거고, 연정이는 따로 만나자고 하는 거 맞지? 연정이는 확실히 보영이 보다는 시끄러운 구석이 있다. 같은 여잔데도.

국현이가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한다.
김국현(3): 그럼 이제, 나를 위한 선물을 한 번 해볼까나.
김정원(4): 나를 위한 선물?
김국현(3): 인생 뭐 있어요, 돈 벌었으면 날 위해 써야지.
김정원(4): 하하하하, 그래, 뭘 사려고?
김국현(3): 글쎄요, 생각해봐야죠. 스마트워치나 사볼까…. 전에 보니까 20~30만원이면 사는 것 같던데.
김정원(4): 아이워치는 아직 출시 안 된 거 아냐?
김국현(3): 저 안드로이드 쓰잖아요. 이번에 삼성에서 나온 건 통신모듈이 들어 있어서 시계만으로도 통화가 된대요.
김정원(4): 근데, 그 쪼끄만 게, 쓸모는 있을까?
김국현(3): 그런 건 사놓고 생각하는 거죠. 최저가가 얼마지….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나도 갖고 싶긴 하다.
잠시 뒤, 아니나 다를까, 주성이가 들어온다.
하주성(1): 형님들, 월급도 들어왔는데 쫄깃쫄깃한 족발 한 번 빨러 가시죠.
김국현(3): 족발?
하주성(1): 광세족발이라고, 거의 족발계의 허니버터칩이에요, 예약 안 해두면 없어서 못 먹음. 진짜.
김국현(3): 족발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길래.
하주성(1): 맛은 제가 보장합니다. 가시죠.
김국현(3): 그래, 그러자.
하주성(1): 정원이 형은? 형이 원하시면 소주 한 잔 곁들여 드립니다. ~ 어때요?
김정원(4): 술은 무슨 술이야. 나가기 귀찮은데.
하주성(1): 에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닙니까. 고생해서 월급 받아 뭐해요, 맛난 거나 먹고 살아야지. 같이 가요. 내가 차로 딱 모셔다 드릴게.
김정원(4): 알았어, 그럼 이따 5 30?
하주성(1): 오케이, 그럼 예약해 놓을 게요. 연정? 너는.
김국현(3): 쟨 약속 있대.
하주성(1): , , 연정이 약속 있는 건 어떻게 알아요?
김국현(3): 아까 지가 얘기했어. 정원이 형도 같이 들었다.
하주성(1): 에이, 안 넘어오네. 보영, 너도 콜?
전보영(2): 전 따로 먹을게요.
하주성(1): 오케이, 그럼 이따 봅시다잉.
족발은 맛있었다. 고기라는 게 무색할 만큼 입에서 스르륵 녹았다. 지방질의 느끼함은 콩이 살아 있는 된장의 향과 어우러졌다. 아삭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상추가 혀와 고기 사이의 밀당을 도와주고 있을 때, 앞니로 부러뜨린 고추가 입안에 알싸함을 더해주면, , 먹고 있어도 먹고 싶은 맛. 돈 버니 참 좋구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는 고생해서 돈을 벌고,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돈을 쓴다. 이건 무슨 순환출자[2]도 아니고. 그냥 안 벌고 안 쓰면 안 되나? 모두가 합의해서 우리가 딱 먹고 살 만큼만 생산하고 나머지는 즐기며 살면 안 될까? 하긴, 이미 마르크스가 제안했고 몇몇 나라에서 실현해봤지. 결론은 독재고.

맛있다고 족발 추가까지 해서 먹었더니 졸리다. 그렇다고 자버리면 소화가 안 될 것 같다. 월급도 들어왔으니 부모님께 십일조부터 보내볼까. 몇 년 전부터 월급을 받으면 10%씩 부모님께 보내드린다. 교회에 다니는 어느 친구가 한다길래 따라 시작해 본 것이다. 물론 우리 월급 절반을 떼어 드려봤자 생활비도 안 된다. 아직 은퇴도 안 하신 부모님께 딱히 도움 될 금액도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 말로는 지금부터 드려 버릇해야 나중에도 드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보낼 때마다 조금은 아깝다. 이 돈이면 아이패드 에어2 0.23개고 족발이 11번이고 예능이 200편인데. 그래도 원래 내 돈이 아니다, 생각하면서 눈 질끈 감고 보낸다. 별 거 아닌 돈에, 부모님은 정말 기뻐하신다. 몇 번 십일조를 드린 후에 새로 들어서 붓고 계신 적금의 목적이 좀 의심되긴 하지만.


스마트폰 앱을 켜서 부모님께 계좌이체를 했다. 정확히 계산해서 보낼까 하다가, 20만 원을 보내버렸다. 몇 푼 더 가져봐야 빙수 한 그릇 더 사먹겠지 뭐. 요즘 빙수집들이 손님이 없어 열불이 난다니, 빙수 사먹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닐 테지만.

그런데, 은행 전산프로그램은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결국 더하기 빼기일 것이다. 여러 겹의 보안 장치들이 있겠지만, 그걸 통과하고 나면 결국 내 계좌에 해당하는 어떤 숫자에 더하기 빼기하는 것일 거다. 그 숫자는 몇 비트(bit)[3]로 구성되어 있을까? 우리나라에 재산이 22억 원 넘어가는 사람들은 많을 테니 32비트 부호 있는 정수형(32bit signed integer)[4]은 아니겠지. 유튜브에서 동영상 조회수를 기록하는 데 사용하던 그 형식 말이다. 그런데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회수가 21억 건을 훌쩍 뛰어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고, 유튜브측에서는 ‘그런 조회 수가 나올 줄 몰랐다’는 해명을 남겼다.[5] 어쨌든 적어도 64비트 정도는 될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도 있으니 음수, 양수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형식으로 표현할 것이고.

그럼 돈을 923경 원 모으면 은행 컴퓨터에도 이상이 생길까? 돈을 ‘입금’을 했는데 마이너스 통장으로 바뀐다거나. 지금의 화폐 가치로는 힘들 것이다. 이건희의 10대 독자쯤 되면 가능할까? 30대 독자쯤은 되어야 하려나….

문자가 왔다. 카톡도 아니라 문자다.
‘바쁘냐?
학부 때 동아리를 함께했던 친구. 몇 달 만의 연락인지 모르겠다. 1년이 넘었을 수도. 얼마 전에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쳐서 밥 한 번 먹자고 한 적은 있다. 당연히, 인사치레로. 학교 식당 저녁 식사 시간도 끝나가는 타이밍에 밥 먹자는 말은 아닐 거고, 왤까?
‘뭐 그다지. 웬일이냐’
몇 년 전만 해도 문자는 띄어쓰기고 문장부호고 다 없애고 ‘뭐그다지웬일이냐’같이 보내는 게 보통이었는데, 스마트폰이 문자 문화도 바꾸어 놓았구나.
바로 답장을 했건만 다시 답장이 오는 데는 3분쯤 걸렸다.
‘술먹자’
뜬금없는 세 글자. 하지만 왠지, 응당 따라야만 할 것 같은 세 글자였다. 그저 화면속의 나눔고딕체[6]일 뿐인데, 뭔가 아우라가 풍겼다.
‘언제?
‘지금. 쪽문에서 보자.
‘ㅇㅇ15분뒤?[7]
‘ㅇㅇ’


 “나 그 친구 장례식 다녀왔어. 우리 과였거든.
오는 길에는 요새 뭐하고 지내냐 연애는 하냐 같은 하나마나한 질문만 던지던 친구가, 술 한 잔 받자마자 저런 말을 던진다. 얼마 전에 자살한 학생[8]을 말하는 것이겠지. 문자에서 풍기던 아우라가 이것이었나 보다. 대답할 말은 없었다. 조용히 잔이나 부딪쳐 줬다.
“걔 죽기 며칠 전에 나한테 연락했어. 밥 한 번 먹자고. 근데 내가 존나 바빴거든. 그래서 다음에 연락 준다고 했는데, 그 개새끼가….
젠장, 뭐라도 답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할 말이 없다. 마음만 끊임없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랬구나….
이런 여자친구 수다에 대응하는 방법 1번 같으니라구. 31년 간 갈고 닦아 온 한국어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넌 그래도 나와 줘서 고맙다. 씨발. 난 못 그랬는데. 내가 그 때 밥 같이 먹었으면 그 새끼 안 죽었을 수도 있는데.
정말 그랬을까? 전문 상담가도 아닌 이 친구가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저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자리가 되고 그 친구는 예정된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일이다. 이 친구가 그의 선택을 바꿀 만한 기똥찬 한 마디를 남겼을지, 그야말로 누가 아는가. 하지만, 마지막 인사라도 남길 수 있었다면, 마지막 부탁이라도 들어줄 수 있었다면, 이 친구는 죄책감이라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좀 더 진실하게 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난 뭐라 대답해야 할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같은 무정한 말도, ‘너 때문은 아닐 거야’ 같은 냉정한 말도, ‘힘내라’ 같은 공허한 말도 할 수가 없다.
정말 다행히도, 친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씨발, 다 의미 없다. 의미 없어. 이제 와서 뭐. , 미안하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소리나 해서.
친구는 계속해서 “미안하다”와 “고맙다”만 반복했고, 나는 “그래”, “힘내”, “마셔”로 돌려막기 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필요 없으니 같이 있어주는 것으로도 고맙다는 노래 가사[9]를 떠올리며, 무능한 나 자신을 달랬다.

술값은 내가 냈다. 자기가 불렀으니 자기가 내야 한다고 우기는 친구에게, 오늘 월급을 받았으니 내가 내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내 지난달 고생의 일부나마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밤공기가 선선하다.[10] 술기운이 올라 몸은 덥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차피 내일이면 잊을 말들, 어차피 10미터도 못 가 진폭을 잃어버릴 소리들을 내뱉었다. 그러다 은행 전산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내뱉었다. 결국 인생지사 덧셈 뺄셈 아니냐고도 했다. 아니, 그냥 죄다 뺄셈이고 덧셈은 한 달에 한 번 있으면 다행인 거 아니냐고 했다.

그렇다. 이 시대에 돈이란 그저 은행 컴퓨터에 저장된 몇 십 개의 비트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저 비트 몇 개 뒤집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걸 도루묵 만드는 데 우리의 여력을 다하는 것 아닌가. 쓸 모 없는 물건을 지르면서, 뼛속까지 지방질로 채우면서, 그리고 죽을 것 같은 이에게 술 한 잔 대접하면서.

[1] 미래창조과학부의 “학생인건비 계상기준”에 의하면, 전일제 박사과정 학생의 최대 인건비는 월 250만원, 석사과정은 월 180만원, 학사과정은 100만원이다.http://www.msip.go.kr/www/brd/m_215/view.do?seq=68
[2] 순환출자: A, B, C, 세 회사가 있다고 하자. 먼저 자본을 투자하여 A사의 대주주가 된 다음, A사가 B사에 투자하여 대주주가 되게 하고 B사가 C사에 투자하여 대주주가 되게 하고, 다시 C사가 A사에 투자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면 A사의 대주주가 되는 비용만으로 A, B, C, 세 회사를 거느릴 수 있다. , C사가 A사에 투자한 비용만큼은 자본증식도 된다. 물론 이 자본은 실재하지 않는다. 적은 자본으로 많은 회사를 거느릴 수 있다는, 재벌 입장에서의 장점은 있지만, 한 회사만 망해도 줄줄이 망한다는 단점이 있다. IMF 때 피 본 기업이 여럿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00346&cid=43665&categoryId=43665
[3] 비트(bit): 컴퓨터에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최소 단위. 0 또는 1의 상태를 갖는다. 현대 컴퓨터에서는 비트를 8개 모은 바이트(byte)를 기본 저장 단위로 한다. , 한 번에 32개 혹은 64개의 비트를 처리하는데, 각각 32비트, 64비트 컴퓨터로 부른다. 32비트 컴퓨터에서는 최대 32비트로 표현된 숫자를 한 번에 계산할 수 있으며, 64비트로 표현된 숫자를 계산하려면 32비트씩 쪼개서 계산해야 한다.
[4] 32bit signed integer: 32개 비트로 표현한 정수(integer). 첫 번째 비트는 음수, 양수를 나타내고 나머지 31개 비트가 숫자의 크기를 표현한다. 비트가 32개이므로 모두 232가지 숫자를 나타낼 수 있는데, 음수로 231( 21 5천만)까지와 0, 그리고 양수 231-1까지를 나타내는 것이 표준이다. 더 큰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 음수를 포기하고 0 ~ 232-1를 나타내는 방식도 있는데, 이는 32bit unsigned integer라고 부른다.
[5] 유튜브 측의 공식 해명: https://plus.google.com/+youtube/posts/BUXfdWqu86Q
[6] 최근 안드로이드폰은 나눔고딕체를 기본 서체로 사용한다고 한다.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21207145817
[7] ㅇㅇ: “응”을 나타내는 줄임말. 글자 수는 되레 늘었지만 입력하기 편하다.
[8]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18. 인과 – http://scienceon.hani.co.kr/213691
[9] 옥상달빛 <괜찮습니다>
[10] 일전에도 주석을 통해 알려드린 바 있지만, 이 소설엔 시간적 배경이 있고 이번 화의 배경은 6월 말입니다.

#20. 행복

세상에 팩트(fact)[1]는 없다. 관찰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언론은 팩트를 추구한다. 더 많은 곳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하지만 카메라가 닿는 곳이 한계다. 엄밀한 추론을 시도하다가 결국 “의혹이 제기된다”는 표현으로 결론을 비껴간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권을 가지고 더 깊은 관찰을 시도한다. 법원은 양측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더 넓은 관찰을 시도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은 사건 현장에 없었다. 목격자도 소용없다. 그들은 단 두 개의 눈을 가진 관찰자일 뿐이다. 게다가 사람의 기억은 흔히 사실을 왜곡한다.[2] 범인은 모든 것을 알지 않겠느냐고? 범인의 기억은 똑바를 성 싶은가?[3]

관찰이 한계가 있어 문제라면, 해석은 한계가 없어 문제다. 헌법재판소 판사들은 같은 문건을 보고 같은 변론을 듣고 정반대의 의견을 내기도 한다.[4] 같은 날, 같은 나라에서 두 개의 신문사는 전혀 다른 신문을 만든다. 성향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신문을 봐야 한다는 건 심지어 교육계에서도 정설이다.[5]

결국 무엇을 관찰하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다.



그리고 여기, 연구 환경 실태조사 결과보고서가 있다. 조금 전에 대학원생 총학생회에서 보내준 따끈따끈한 파일[6]이다. “꿈꾸는 대학교 대학원 연구 환경을 파악하여 환경 개선에 활용함”이 목적이라고 한다. 대학원생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와 약간의 분석이 실려 있다. 실상을 파악한다고 해서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여론을 만들어 교수들을 압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몇 주 전에 대학원생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메일이 뿌려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설문조사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답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답해봤자 평균만 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연구실은 좋다. 인건비도 생활비 걱정 안 할 만큼은 챙겨주신다. 과외나 아르바이트는 당연히 안 해도 된다. 사무원도 고용되어 있어서 자잘한 사무 처리를 할 일도 없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하는 건 아니긴 해도. 교수님이 연구 지도도 잘 해주신다. 너무 잘 봐주셔서 내가 못 따라가긴 해도. 출퇴근 시간도 자율이고, 주말 업무도 없고, 눈치도 안 보인다. 그렇다고 논문이 나오는 건 아니긴 해도.

그러니 내가 응답을 하면 평균만 올라갈 것이다. 대학원생 전반이 조금 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것이다. 그러면 학생회에서 보도자료를 만들어도 언론에서 기사화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마저 개선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평균만 보니까. 표준편차를 써놓아도, 크게 써진 숫자만 보니까. 굳이 그 평균값에 표준편차를 빼보고, 그런 경우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응답하지 않아야, 정말 환경 개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집단이기주의래도 할 말 없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일하고 단돈 30만원 챙겨가는 수많은 고급인력이 있다. 토요일 오전마다 전체 미팅이 있어서 불타는 금요일은 늘 실험용 초파리와 함께 보내는 수많은 청춘들이 있다. 논문 볼 시간에 증빙 자료와 결산보고서만 들여 보며 사무처리만 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이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방법이 대수일까. 누가 물어보면 그냥 귀찮아서 안 했다고 하면 되니까. 설문조사 응답률이 25.1%라고  나와 있다. 천 명 조사해서 오천만의 투표 결과를 가늠하는 나라인데,[7] 전체 학생의 4분의 1이 응답했으면 많이 한 것이다. 나는 빠져도 된다.


보고서를 좀 더 넘겨본다. 응답자 성비는 어떻게 되는지, 응답자들의 연차[8]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 나온다. 주성이가 우리 방에 들어왔다.
하주성(1): 이 형, 이거 보고 있네.
김정원(4): 넌 웬일이냐.
하주성(1): 왜긴 왜에요. 형 감시하러 왔지. 공부 안 하고 이런 거 보고 있는 거예요?
김정원(4): 우리 동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좀 알아야 할 거 아냐.
하주성(1): 이 형, 이유 한 번 기똥차네. 근데 이거 설문조사는 했어요?
김정원(4): 아니, 귀찮아서….
하주성(1): 이거 제 친구는 무서워서 못 했다던데.
김정원(4): ?
하주성(1): 사실대로 적어내면 교수님이 누가 했는지 찾아내려고 할 거 아니에요.
김정원(4): 이거 익명이잖아.
하주성(1): 에이, 그래도 적은 거 보면 딱 알죠. , 이거 아직 다 안 봤죠?
김정원(4): , 이제 6페이지야.
하주성(1): 그럼 이거 좀 봐 봐요.
주성이가 키보드 화살표키를 한참 눌러 어떤 페이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기타 의견’란에 ‘전산학과’라는 표시와 함께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지도교수보다 늦게 퇴근하면 안 되는데, 교수가 평균 새벽 2시에 퇴근합니다. 할 일이 없어도 무조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욕먹습니다. 4시 넘어 퇴근 할 때도 많습니다.[9]

하주성(1): 이거 보면 딱 어떤 교수님인지 알 거 같지 않아요?
주성이 말대로, 딱 한 명 떠올랐다. 가끔 밤늦게 복도를 돌아다닐라치면 꼭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그 교수님.
김정원(4): , 그 분?
하주성(1): 그 분이죠. 우리 과에 또 누가 있어요.
김정원(4): 근데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
하주성(1): 그래봤자 똑같죠. 그 분이랑 그 다른 사람이랑 둘 다 열 받는 거죠. 그리고 학생들 더 볶아대겠죠.
김정원(4): 그렇겠네.
하주성(1): 학생을 위한 거면 이런 거 좀 조심해줘야 되는데, 하다못해 말이라도 다시 써주지. 에효, 걔네들 분위기만 더 안 좋아지겠구나.
정말 날 감시하러 온 건지, 졸음을 쫓으려 돌아다닌 건지, 주성이는 도로 나갔다.


어쨌거나 다행이다.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은 것처럼, 매우 심각한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면, 평균은 안전할 테니까.

그러고 보면 평균만한 왜곡도 드물다.[10] 박사과정 학생의 월급 평균이 127만 원이라고 하면, 한 달에 127만 원을 받는 어떤 학생 한 명만 떠오르니까 말이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입 같다. 아직 학생이니까, 허리띠 졸라매고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30만 원 밖에 못 받는 사람에게 존재한다. 학교 식당에서만 삼시세끼를 해결해도 기숙사비조차 안 남는, 그래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과외를 해야 하는, 그러다 시간이 부족해 졸업이 늦어지는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또한 200만 원이나 받는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200만 원을 핑계로 하루 16시간씩 일하고도 모자라 주말에도 불려나가는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연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평균 20% 빠른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었다고 하자. 사실은 프로그램은 A 50% 느려지지만, 프로그램 B 70% 빨라지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중앙처리장치는 정말 빠른 걸까? 프로그램 A만 사용하는 사용자에게는 느릴 것이다. 결국 사용자가 어떤 프로그램을 쓰느냐에 달렸다.[11]

다시 한 번 화면에 떠있는 말을 본다.

“지도교수보다 늦게 퇴근하면 안 되는데, 교수가 평균 새벽 2시에 퇴근합니다. 할 일이 없어도 무조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욕먹습니다. 4시 넘어 퇴근 할 때도 많습니다.

한 사람이 그려진다.

그의 꿈은 대학교수였다.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지도교수님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이다. 존경스러웠다. 교수님은 자기보다는 더 늦게까지 해야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아직 배우는 입장이니까. 훌륭한 제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벽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연구 빼고 다른 삶은 아예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 점점 친구가 줄었다. 술 한 잔은커녕 식사 한 끼 함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에게도 채였다. 이별 통보를 받기 위해 여자친구를 만나고 온 날도, 연구는 안 하고 어딜 돌아다니느냐며 욕을 먹었다. 잠이 유일한 여가 생활이 됐다. 그나마 일요일에만 가능했다. 토요일도 출근해야 했다.

그는 교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몸 축내가면서 실적 쌓으면 뭐하나. 그렇게 돈도 얻고 명예도 얻는다 한들, 병마저 얻어서 일찍 죽을 것 같은데. 교수쯤 되려면 대학원 때도 열심히 공부하셨을 것이다. 이제 지겹지도 않나? 아니, 혼자만 그러던가, 왜 학생들의 행복추구권마저 박탈하느냔 말이다.


하지만 또 한 사람이 그려졌다.

그의 꿈도 대학교수였다.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새벽에만 몇 시간씩 자면서 끊임없이 공부했다. 논문을 여러 편 쓸 수 있었고 특허도 여럿 냈다.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교수는 3년짜리 계약직이었던 것이다. 정교수, 즉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실적이 많이 필요했다.

실적은 교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졸업 후에 좋은데 취직하려면 실적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벌써 정규직이라도 되는 양, 해만 지면 집으로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먼저 퇴근하지 못하게 했다. 학생들은 표정이 굳었다. 열정은커녕 피곤만 가득해보였다. 그래도 실적은 조금씩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진 않았다. 정교수가 되는데도, 그리고 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가는 데도. 더 노력해야 한다.

그는 학생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실적이 제대로 내지 않으면 박사학위를 받는다 해도 별 볼일 없어진다.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학생들은 자신이 대학원생 때 했던 것보다 훨씬 덜 공부하면서도, 훨씬 더 불만을 가진다. 이럴 거면 대학원에 왜 온 건가? 다 자신들을 위한 것인데 말이다.

그 교수만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그에게는 ‘잘못’조차 아닐 것이다.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연구 실적에 따라 지위가 주어지고 돈이 주어지고 안정이 주어지는 체계 속에서, 그의 선택은 최대 다수의 최대 효용을 끌어내는 방법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책입안자나 관료들을 탓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누구를 정교수로 승진시킬 것인가? 누구에게 연구비를 줄 것인가? 어떤 기준이 합리적일까? 논문 실적 같은 계량화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가능성이나 포부 같은 걸 본다고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연, 학연, 혈연이 판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신고를 할 것이고, 공무원 몇몇이 잘릴 것이고, 다시 객관적 지표가 도입될 것이다. 아니면, 실적에 상관없이 충분한 기간 동안 지원해준다고 하자. 일단은 돈이 부족하겠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몇몇 교수는 게을러질 것이고 많은 교수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단한 걸 만들어보고 싶어서 실적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자 혹은 어떤 국회의원이 혈세 낭비라며 날을 세울 것이다. 그러면 보완책이랍시고 최소 실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다시 객관적 지표가 고개를 들게 된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 한다. 다른 문화를 겪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유가 없다.


“어? 이거 보고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렸더니, 교수님이다.
김정원(4): , .
권대성(교수): 안 그래도 이것 땜에 왔어, 이거 뒤로 좀 넘겨봐 봐.
뭐지? 뭐가 문제지? 우리 랩 누군가도 기타 의견에 뭘 썼나? 그럴 만한 거 없는데…. 있다면 주성이가 말해줬을 텐데….
권대성(교수): 여기 이거 봐봐. 출근 시간이 몇 시라고 돼 있냐?
교수님이 보여주신 페이지에는 연구실 출근, 퇴근 시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있었다. 오전 10시에 출근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절반도 한참 넘는다.
권대성(교수): , 다들 10시엔 출근하잖아. 그치?
김정원(4): , 그러네요. 헤헤.
권대성(교수): 너네도 좀 일찍 좀 와봐, 아침에 미팅을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 사람이. 내일 사성기업 프로젝트 미팅하기로 한 거, 몇 시였지?
김정원(4): 오후 2시였습니다.
권대성(교수): 2? 오케이. 그 때까지 자다가 오는 건 아니지?
김정원(4): 하하, 설마요, 오후 2신데요.
권대성(교수): 그래. 중간보고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봐.
그리고는 나가셨다.
심각한 말투는 아니었다. 친할아버지가 나한테 “공부 열심히 해라”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혼난 건, 혼난 거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대학원생의 박한 현실을 알림으로써 교수들을 혼내려는 목적을 가진 보고서를 가지고 내가 혼난 것이다. 난 참 복에 겨운 놈이다.

매일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그 교수님도 우리 교수님과 같은 세계를 살고 있다. 같은 정부 정책 아래에서, 같은 연구소, 같은 기업들과 일한다. 그런데도 우리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자유를 준다. 자율적으로 일하게 한다. 존중한다. 분명히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으실 텐데도. 교수가 정부 정책은 못 바꿔도, 연구실 하나는 확실하게 바꿀 수 있구나. 교수님이 자랑스러웠다. 애사심 같은 것이 솟았다.

교수님께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 연구실 분위기를 약간만 더 빡빡하게 만들어주면 더 성실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뭘 연구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한동안 아무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으실 때도 불만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교수님 뜻대로 결정되는 회식 자리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 정도면 됐다 싶다. 그 정도면 참 행복한 것이다.


혹자는 절대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내게 주어진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나도 그걸 믿었었다. 비교하지 않으려 애썼고, 사소한 행복을 크게 느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국 행복은 상대적인 것 같다. 못 가진 사람을 보고서야,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서야 내 풍족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올백을 받지 못한 모든 아이의 부모는 행복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보기 전까지는.[12]

어쩌면 절대적인 행복을 찾았다는 사람도 사실은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닐까?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깨달음을 얻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내가 보기엔, 행복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내일부터는 일찍 출근해야겠다. 아무 때나 출근해도 되니까, 교수님이 좋아하는 시간에 출근해야겠다. 아침 공기도 좀 즐기고. 그리고 연구 좀 열심히 해야겠다. 이렇게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좀 누려야겠다. 오늘은 예능 한 편도 안 보고 연구만 할 거다. 페이스북도 이따 퇴근하고 나서 볼 거다. 평균 새벽 2시 넘어 퇴근하는 그 학생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1] 팩트(fact): ‘사실’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요즘 인터넷상에서 ‘검증된 정보’, ‘진실’ 정도로 의미가 확장되어 널리 쓰인다.
[2]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공저, 김명철 옮김, <보이지 않는 고릴라>, 김영사 출판
[3] 이와 관련한 소설로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출판)이 있다.
[4] 대표적인 예로,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판결이 있다. 같은 자료가 제공되고 같은 변론을 듣고, 1명의 판사와 8명의 판사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5] 정종법 기자, “논술 잘하고 싶다면 신문 읽어라”, 한겨레, 2012 2 6,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17677.html
[6] 따끈따끈한 파일: 파일을 내려 받으면, 그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디스크에 새로운 값을 쓴다. 이를 위해 디스크 내부 구조가 물리적으로 움직이거나 전기신호의 상태가 바뀐다. 이 때 (극미량이겠지만) 열이 발생한다. 따라서 ‘따끈따끈한 파일’은 적절한 표현이다. 정말로 따끈따끈하다. 전기신호로 저장되는데 이게 0에서 1로 바뀌면....약간의 열이 발생......
[7] 미디어 리서치, KBS 대선 기획 8차 여론조사 결과보고서”, 2012 11 25,http://news.kbs.co.kr/special/pdf/20121125.pdf
[8] 연차: 대학원생에게 ‘학년’에 해당하는 말이다. 석사과정에 들어가면 석사 1년차, 그로부터 1년이 지나면 석사 2년차라고 부르는 식이다. 석사 3년차, 박사 5년차부터는 실제 연차로 말하기보다는 ‘고년차’, n년차’ 등으로 말하는 것이 예의이다. 복학생이 동아리 모임에 가서 학번 밝히기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9]
 출처는 없습니다. 상상입니다.
[10] 게르트 보스바흐·옌스 위르겐 코르프 공저, 강희진 옮김,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작은 책방, 166-168
[11]
 그래서 평균적으로 많이 빨라지더라도, 크게 느려지는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중앙처리장치(CPU)는 좋은 평가를 받지 않는다. , 많이 빨라지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널리 쓰이는 프로그램들(웹서버 등)이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12] 김경미, “이제 학원 안 다녀도 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4 04 22http://www.huffingtonpost.kr/kyungmee-kim-/story_b_5184167.html

#21. 니즈


햇볕은 뜨거워도 마음만은 상쾌한 여름 아침이다.[1] 땀방울이 피부세포 틈새를 비집고 나온다. 하지만 아직 사선으로 비추고 있는 태양 탓에 양이 많지는 않다. 속옷 선에서 처리됐다.

하지만 연구실 문을 여니 다른 세상이다. 화생방 훈련이라도 하듯 숨이 막힌다. 창문이 닫혀 있다. 10년 전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온실효과가 피부로 느껴진다. 이른 새벽부터 티끌만 한 햇볕이라도 모두 그러모아 둔 것 같다. 게다가 겨울철 난방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컴퓨터들이 여름에도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사람에 평균 3대쯤 놓여 있는 컴퓨터, 1 1초라도 더 연구하려면 죄다 켜놓고 가야 한다. 아침에 와서 바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하니까. , 원격으로 접속해서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으니까. 자주 하진 않지만.

연구실에는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있고 따로 중앙냉방도 나온다. 에어컨과 선풍기는 죄다 꺼져 있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이 꺼놓기로 했다.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그 대신 창문을 꼭 열어두자고 했는데 안 한 것이다. 중앙냉방이 나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한여름의 햇볕과 15대의 컴퓨터를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다. 중앙정부 정책이 있으니 중앙냉방을 그리 세게 틀지도 못할 터다.

마지막으로 나간 사람이 실수로 에어컨을 안 껐어도 곱게 눈감아주고 고마워 할 판이다. 그런데 에어컨만 끄고 창문은 닫아놓고 가다니. 대체 누구야. 정말 오랜만에 일찍 나온 건데. .


 열기를 식히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내가 비록 컴퓨터 과학자이긴 하지만, 학부 1학년 때는 대학물리도 배우지 않았는가. 사실 기억은 안 나지만, 느낌은 아니까.

일단 이 뜨거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열기를 그대로 식히자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에어컨을 터보 모드로 켜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선풍기도 창문 쪽으로 틀어놓았다. 에너지 낭비는 심하겠지만 참기엔 너무 뜨겁다. 사실 열을 발생시키는 컴퓨터를 끄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것을 끌 수는 없고, 내 것은 이제 써야 하니까.

일단 복도로 피신했다. 더 있다간 ‘더위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질 것 같아서. 컴퓨터가 없는 복도는 중앙냉방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온도가 유지되고 있다. 복도를 살랑살랑 거닐며 페이스북이나 보다가 화장실도 다녀왔다.

10여 분쯤 지났을까? 다시 한 번 연구실로 진입을 시도한다. 킁킁, 가장 독한 ‘더위가스’는 빠진 것 같다. 이제 2차 진압작전을 펼 때다. 창문을 굳게 닫는다. 에어컨은 여전히 터보 모드다. 이번엔 선풍기가 방 전체를 휘감도록 회전시킨다. 무거운 찬 공기를 최대한 퍼뜨려 방 전체가 식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차, 에어컨 희망온도도 18도로 낮추었다. 터보 모드가 끝난 후에도 계속 강하게 돌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연구실에서 탈출했다. 이번엔 논문을 두 개 들었다. 배도 고프니 뭘 좀 먹으면서 논문이나 봐야겠다. 어딜 가든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어져 있을 테니.


우리 학과 건물과 가장 가까운 빵집으로 들어갔다.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수직 하강해서 내 열기를 씻어준다. 관자놀이까지 젖어들어 간 머리카락이 수분을 뺏기며 몸을 떤다. 액체가 증발하면 주변의 온도가 낮아진다 했던가.

빵집 알바의 출근길은 어땠을까? 나처럼 피신할 곳도 없었을 텐데. 요즘 시대에 알바의 근무 환경을 위해 미리 에어컨을 켜주는 사장은 없을 테니까. 먼저 출근해서 에어컨을 켜놓으라고 하면 모를까. 아마 그 김에 청소까지 해놓으라고 일러뒀겠지. 그의 아침은 바디로션 없이도 촉촉했으리라.

샌드위치 하나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페이스북을 켜보았지만 몇 분 전에 확인한 터라 새로 올라와 있는 건 별로 없다. 게임을 할까도 싶었다. 그러다 오늘부터 연구를 열심히 해보기로 한 게 생각났다. 그래서 일찍 나온 거니까, 논문부터 봐야겠다.

두 개의 논문을 가져왔다. 첫 번째 논문은 특정 서비스를 하는 컴퓨터들을 대상으로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전력 효율을 최대화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컴퓨터들이 꼭 필요한 만큼의 성능만을 내도록 설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2] 두 번째 논문은 스마트폰의 어느 부분이 전력을 더 많이 소비하는가를 밝혀냈다. 그리고 사용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전력 사용을 줄이는 기법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지속 시간을 늘렸다.[3] 사성기업과 하고 있는 과제와 연관된 논문들이다. 두 번째 논문과 비슷한 일을, 더 잘 해내야 하는 것이 이번 과제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내가 전력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게. 연구실에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어놓은 채로, 선풍기도 가득 틀어놓은 채로, 있는 컴퓨터는 죄다 켜놓은 채로, 그러고도 이미 에어컨이 켜져 있는 빵집으로 피신해놓고는, 지금 무슨 연구를 한다고?

과제를 하면서, 정말 전력 효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니 더 이상 그런 말은 못하겠다. 그냥 돈을 벌고 업적을 쌓으려는 것뿐이다. 하긴, 정확히 얘기하자면 전력 효율을 높이는 게 아니라 배터리가 오래 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더 얇고 더 가벼운 스마트폰을 더 오래 사용하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이쯤 되면 언행일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관성은 있는 것 같다. , 괜찮네.


연구실로 돌아왔다. 보영이가 이미 와 있다. 카디건을 입고 있다. 터보 모드에다 18도로 맞춰둔 덕분인지 어느덧 약간 쌀쌀해졌다.
김정원(4): 하이.
전보영(2): 오빠, 에어컨 틀어놓은 게 오빠였어요? 국현 오빤 줄 알았는데. 엄청 일찍 오셨네요.
김정원(4): 이제 연구 좀 열심히 해볼라고. 근데 추우면 에어컨 온도 좀 올려놓지 그랬어.
전보영(2): , 제 자리가 에어컨 옆이라 그래요. 국현 오빠는 자주 더워하는 거 같던데요.
김정원(4): 국현인 아직 오지도 않았잖아. 이따 낮춰도 되는데.
전보영(2): 전 괜찮아요. 카디건 입으면 돼요.
김정원(4): 그래도 조금만 올릴게. 아까 최저온도로 해놨거든.
에어컨 희망온도를 20도로 올렸다. 너무 올리면 좀 더워질 수도 있으니까. 막 출근하는 애들은 땀도 좀 식혀야 하고.

이상하다. 겨울철엔 이보다 높은 온도로 난방을 했던 것 같다. 약간 덥다 싶을 만큼이 될 때까지 난방을 했던 것 같다. 잔뜩 입고 온 옷들은 굳이 모두 벗어두고서 말이다. 그런데 여름엔 카디건을 입어야 할 정도로 냉방을 한다. 약간 쌀쌀하다 싶을 만큼이 되어야 만족을 한다. 하늘이 내려주는 따뜻함을 기꺼이 거부한다. 여름에 좀 따뜻하게, 겨울에 좀 춥게 살면 안 되는 걸까?

냉방, 난방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것 같지 않다. 업무 효율을 위한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자연을 거스르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 같다.


점심시간 즈음 되니 다들 왔다. 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들 점심시간이 시작하자마자 밥을 먹으러 와서 그런지 줄이 길었다. 문득 국현이의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김정원(4): , 그거 스마트워치냐? 산다더니 진짜 샀네?[4]
김국현(3): 결심한 건 사고 봐야죠. 어제 배송 왔어요.
전보영(2): 그래서 오늘 늦게 오신 거군요?
김정원(4): , 너 원래 일찍 와?
김국현(3): 원래 10시쯤이면 오는데, 어제 이거 갖고 놀다가 늦게 자 가지구요.
맨날 늦게 오니 누가 언제 오는지 알 턱이 있나. 앞으로도 일찍 좀 와야겠다.
김정원(4): 근데 그거 가지고 뭐하는데?
김국현(3): , 시계 보죠.
김정원(4): , 완전 스마트폰인데! 어차피 스마트폰도 100만 원짜리 시계잖아.
김국현(3): 푸하하, 그러네요.
김정원(4): 아니 근데 진짜 진지하게, 어따 쓰냐.
김국현(3): , 길 안내 기능이 된다는데, 그건 아직 한국에서는 서비스가 잘 안 되고요, 음성명령 내리고 하면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많다는데, 솔직히 화면이 너무 작아요.
김정원(4): 그럼 정말 시계인 거야?
김국현(3): , 그건 있어요. 전화 오면 누구한테 왔는지 여기서도 뜨거든요. 그래서 광고전화를 다 걸러낼 수 있어요. 문자도 내용이 뜨고, 메일도 제목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은근 괜찮은 것 같아요. 당장 답할 내용인지 나중에 봐도 되는 건지 그런 건 바로 판단할 수 있거든요. 스팸메일이면 여기서 바로 지워버릴 수도 있고요.
김정원(4): , 그럼 나쁘진 않겠네. 배터리는 얼마나 가?
김국현(3): 어제 밤에 와서 잘은 모르겠는데요, 밤에 잘 때 한 번씩 충전하면 충분하대요. 하루 종일은 너끈하나 봐요.
 
나도 스마트워치를 갖고 싶었다. 싼 건 20여 만 원에서 비싸봐야 40만 원이니 무리하면 못 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걸렸던 게, 사서 어따 쓰나, 였다. 국현이는 그냥 갖고 싶으니까 사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난 양심상 그러지 못했다.

요약하면, 시계 기능과 전화, 문자, 메일에 대한 미리보기 기능 정도가 유용한 것 같다. 대충 짐작해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횟수를 40 퍼센트쯤 줄여줄 것 같다. 이게 30만 원의 가치를 할까? 거기에 매일 밤 충전기에 꼽아야 하는 수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기숙사에 멀티탭을 하나쯤 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그냥 갖고 싶다. 시계 기능밖에 없다고 해도 그냥 갖고 싶다. 액정화면이 달려 있고 연산기능이 있는 기기에 대한 공대생들의 일반적인 욕망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있어도 추가로 태블릿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해낸 것이 우리 공대생들 아니던가. 국현이가 말했듯이[4] 사놓고 쓰다 보면 뭔가 유용한 걸 발견해 낼 것이다. 정말 살까…?

쉬이 결정은 못하겠다. 이게 정말 욕망 때문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지, 이 욕망을 충족시켜서 얻는 행복이 30만 원 값어치는 하지 않을까? 한 번 사두면 주욱 쓸 거 아냐. 어차피 이 작은 화면에서 뭔가 대단한 걸 할 수 있게 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면 굳이 최신 기기로 바꾸지 않아도 한동안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폼 좀 나잖아. 더 있다가 사면 폼이 덜 날 것 같은데… 남들 없을 때 사야 폼이 나지. 30만 원, 질러버려?

, 두근거린다. 그런데 용기는 안 난다. 곱게 밥이나 먹었다.

밥을 먹고는 다 같이 카페에 들렀다. 몇 년 새 댓 개는 생긴 것 같은 학교 내 카페 중 하나다. 얼음이 든 카페모카 한 잔을 손에 들고 연구실로 갔다. 한 모금 빨아보았다. 달달함이 혀를 찌르고 카페인이 뇌를 찌른다. 빨간 국을 먹어 매큼해진 혓바닥과 배불리 먹어 나른해진 뇌를 동시에 치유한다. , 이거다.


오후 두 시, 교수님과 미팅하기로 한 시간이다. 국현이, 길영이와 함께 교수님 방으로 갔다.
권대성(교수): 중간보고서가 일주일쯤 남았나?
김정원(4): 다음 주 월요일까지니까, 6일 남았습니다.
권대성(교수): 주말도 있으니까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오늘, 내일, 모레 해서 끝내자고. 알았지?
김정원(4):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좀 어렵지 않을까요?
권대성(교수): 이런 거에 너무 힘 쏟으면 안 돼. 연구를 우선시 해야지. 어쨌든 내일 밤까지 초안 작성해서 나한테 보내. 그럼 내가 금요일에 좀 보고, 월요일에 자잘한 거 채워 넣고, 그러고 끝내자구.
일을 늘 급박하게 처리하는 교수님과 벌써 6년째 일하지만, 늘 당황스럽다. 아직 ‘중간보고서-초안.hwp’도 안 만들었는데 내일까지라니. 그렇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는가. 미리 대비해서 준비하지 못한 게 잘못이지.
전길영(2): 그럼 분량은 얼마나 하면 될까요?
권대성(교수): 그래도 분량은 좀 채워줘야 돼. 25페이지? 30페이지? 뭐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평소 교수님의 언행을 미루어보아, 이건 이틀 만에 30페이지를 뽑아내란 말이다.
권대성(교수): , 사성기업에서 받아온 핸드폰 상태는 어때?
김정원(4): 그게, 열심히 해서 구동은 되는 상태인데, 아직 실험까지는 못 해봤습니다.
“열심히 해서”에 힘을 주었다. 구동시키는 데만도 엄청 힘들었단 말이다. 교수님도 옛날엔 구현하고 실험하는 것 깨나 해보셨을 테니 이해해주시겠지?
권대성(교수): 그래? 그건 원래 기업 쪽에서 좀 해줘야 되는 건데 기술유출 문제 때문에 못 해준 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럼 그건 그 상태대로 쓰면 되고, 일단 첫 부분엔 정원이 니가 연구 동기랑 그런 거 채워 넣어. 제안서 니가 썼으니까 그거 참고해서 분량 좀 채워 봐. 그 다음엔 길영이가 학회 논문 냈던 거 있지? 그 내용으로 채워. 그 다음엔 국현이가 다른 스마트폰에서 실험했던 거 있잖아, 그걸 넣자. 다 넣진 말고 지난 번에 논문 내려다 못 냈을 때 있지? 그 결과까지만 넣어. 나머지는 결과보고서에서 써먹어야 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정원이 니가 그 받아 온 장비에서 했던 거 간략하게 써넣고. 그럼 뭐, 30쪽은 금방이겠네.
역시, 25쪽은 립서비스였고 30쪽을 원하신 것이다.
김국현(3): 이거 원래 사성기업 핸드폰 기반으로 해야 하는 프로젝트 아닌가요?
권대성(교수): 자기네들이 해줘야 할 걸 못 해줘서 그런 건데 어떡해. 그리고 프로젝트가 기존의 스마트폰 앱들 분석하는 것이 절반이니까, 전반기에는 기존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런저런 분석을 했다고 하면 돼.
참 대단하다. 솔직히 그동안 별로 한 일이 없어 걱정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미 대비책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도 꽤 그럴 듯하게.
권대성(교수): , 그리고 정원이는, 앞부분 쓸 때 사용자 니즈(needs), 뭐 그런 단어 좀 넣어줘. 그래야 회사에서 좋아해.
김정원(4): .
권대성(교수): 그럼 내일 밤까지, 정원이가 취합해서 나한테 보내. 할 수 있지?
김정원(4): 해보겠습니다.
권대성(교수): 오늘, 내일 빠싹 해서 끝내버리라고, 너무 힘 쏟지 마.
이틀 만에 끝내라면서 힘을 쏟지 말라니. 지쳐 나가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어쨌든 교수님 방을 나왔다.
전길영(2): 형한테는 언제까지 드리면 돼요?
김정원(4): 내일 저녁까지만 주면 될 거 같아. 가능해?
전길영(2): 저야 써둔 논문 가지고 말만 늘리면 되잖아요.
김정원(4): 국현이 너도 괜찮지?
김국현(3): , 최대한 빨리 해서 드릴게요.
사실, 안 괜찮으면 어쩔 거냐. 교수님이 하라시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있는 자료를 정리하면 되는 것인 반면, 내가 써야 할 부분은 창작을 해야 한다. 제안서에 써둔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때 목표와는 약간 다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좀 고쳐야 할 것 같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나….[5] 사실 보고서란 게 문장의 유려함보다는 두께가 더 중요하긴 하지만.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다양해지면서 긴 배터리 지속 시간에 대한 사용자 니즈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대충 이 정도면 괜찮은 문장 아닐까? 연구 동기의 핵심은 잘 담아낸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전개하면 좋을까?

그러다 문득, 니즈란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영어로는 ‘needs, 직역하면 ‘필요’라는 뜻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필요’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지 않다. 한국어로 직역할 쉬운 단어가 있는데도 굳이 영어 단어로 표기하는 것부터가 의뭉스럽다. ‘욕망’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우리는 정말 긴 배터리 지속 시간이 필요한가? 그냥 스마트폰을 덜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스마트폰이 필요한가? 우리는 연구실에 앉자마자 메일을 확인하는 대신 출근길 버스에서 메일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가? 장문의 문자를 보내는 대신 다른 메신저를 써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제길, 아니라고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누가 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방금 나온 최신 노래를 들을 필요도 있다. 화장실에 앉아 3분간 즐길 게임마저 필요하다.

분명히 만들어진 필요다. 몇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없이 잘 살았는데, 지금은 못 살겠으니까. 스티브 잡스가 말한 대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일까?[6] 아니면 그들이 우리가 모르고 살던 욕망까지 밝혀내어 자신들의 지갑을 채우는 것일까?

아까 마셨던 카페모카도 생각났다. 언제부턴가 밥을 먹고 나면 꼭 커피 컵 하나를 손에 들려야만 할 것 같다. 매큼하면 물 마시면 되고, 졸리면 잠깐 자면 해결될 것 같은. 국현이의 스마트워치도 생각났다. 스마트폰을 꺼내는 몇 초를 줄이는 데나 유용한, 그 몇 초 절약해서 웃긴 동영상이나 하나 더 볼 것 같은. 아침에 틀었던 에어컨 터보 모드도 떠올랐다. 컴퓨터만 끄고 다녔으면 필요하지 않았을 것 같은.

우리의 욕망은 창조된다. 그리고 소멸하지 않는다. 우리의 돈만 소멸할 뿐이다.

‘중간보고서-초안.hwp’을 만들었다. 첫 문장을 적었다.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다양해지면서 긴 배터리 지속 시간에 대한 사용자 니즈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왜냐면 나도 돈을 벌어야 하거든. 나도 먹고 살아야 하거든. 내 돈도 소멸하고 있거든.


[1] 이번 화의 시간적 배경은 7월입니다.
[2] David Lo, Liqun Cheng, Rama Govindaraju, Luiz André Barroso, and Christos Kozyrakis. 2014. Towards energy proportionality for large-scale latency-critical workloads. In Proceeding of the 41st annual international symposium on Computer architecuture (ISCA '14).
[3] Alex Shye, Benjamin Scholbrock, and Gokhan Memik. 2009. Into the wild: studying real user activity patterns to guide power optimizations for mobile architectures. In Proceedings of the 42nd Annual IEEE/ACM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 (MICRO 42).
[4]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19. 비트. http://scienceon.hani.co.kr/221586
[5] 강원국은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 출판)에서 “말과 글의 성패는 첫마디, 첫 문장에서 판가름 난다”라고 단언했다. 참고로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의 첫 문장은 “자퇴원을 다운로드 받았다”이다.
[6] 스티브 잡스가 1998년 비즈니스위크와 한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A lot of times, 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라고 말했다.http://www.businessweek.com/1998/21/b3579165.htm


#22.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아차, 파일 첨부를 안 했구나. 답장 보내기를 누르고 ‘사성과제_중간보고서_초안_종합2.hwp’를 끌어다 넣었다. “파일을 빼먹었네요, 첨부합니다.”라고 쓰고 다시 ‘보내기’를 눌렀다. 첨부가 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수신자도 다시 확인했다. 첨부된 파일을 받아서 열어보았다. 방금까지 작업한 것이 맞다.

시계를 보니 새벽 . 하아.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사성과제_중간보고서_초안_김정원.hwp’를 일단락 지은 건 아홉 시쯤이었다. 10쪽을 채웠으니 내 분량은 채운 것 같고, 편집도 깔끔하게 했다. 국현이와 길영이는 이미 여덟 시쯤 담당한 부분을 보내주었다. 국현이는 더 도와줄 건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냥 퇴근하라고 했다. 내가 맡은 부분을 떠넘기긴 싫어서다. 그리고 문서 합치는 거야 금방 하니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서 오타는 좀 수정해야 할 테니 한 시간쯤은 작업해야겠지. 그러면 열 시쯤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퇴근이다.

그런데 보내준 파일을 열어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분량이 7, 8쪽밖에 안 된다. 교수님께서 30쪽을 말씀하셨으면 10쪽씩은 채워놓아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그림은 이미 큼직큼직하다. 길영이 것은 줄 간격이 180%. 쓸 만한 스킬은 다 쓴 것이다. 편집도 엉망이다. 글자 크기가 들쭉날쭉하다. 멀미가 다 나려 한다. 얘들이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런가. 문서에도 각이 생명이거늘.

이미 기숙사로 들어간 애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도 그렇다. 그냥, 다시 해오라고 하기가 좀 그렇다. 내가 뭐라고. 사실 걔네가 연구해놓은 걸로 다 때우는 보고서 아닌가. 평소에 일을 안 했으면 문서 작업이나 해야지. 월급도 똑같이 받는데.


그렇게 보고서를 다시 손보기 시작한 것이 5시간이 걸린 것이다. 먼저 줄간격을 160%로 맞췄다. 이건 자존심이다. 대신 간결하게 쓴 부분들을 풀어서 썼다. 논리적 연결고리가 약한 부분도 글을 더 넣었다. 이상한 문장도 다듬고 그림도 더 찾아서 넣었다. 줄글로 설명된 것 중에 표로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은 새로 정리했다. 당연히 줄글은 그대로 두었다. 마지막으로, 각 챕터가 끝나면 새로운 쪽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그렇게 30쪽을 채웠다.

모든 본문의 글자체와 글자크기도 맞췄다. 소제목들도 수준별로 글자모양을 같게 했다. 본문 각 단락의 앞뒤 여백도 맞추고 모든 표의 제목 줄엔 음영을 넣었다. 오타도 많이 고쳤다. 심지어 바이트(byte) 비트(bit)로 쓴 것도 있기에 고쳤다. 꼼꼼하지 못한 녀석들.

이러니까 내가 시간 관리가 안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예상한 시간에 끝나질 않으니. 몸이 축 처진다. 몸이 병약하니 괜히 신경질마저 나려 한다. 그래, 선배랍시고 도와준 것도 별로 없는데, 이거라도 도와줬다 생각하자.

책상 위가 어지럽다. 각종 논문과 자료들이 쌓여 있다. 보고서에 인용한 것들이다. 조금이라도 관련 있다 싶으면 다 인용해 놓았다. 주석이 많이 달려 있어야 폼이 사니까. 한 입 거리쯤 남은 딸기 케이크도 있다. 저녁 먹고 왔더니 보영이가 사다 놓은 것이다. 보고서 쓰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사왔다고 했다. 착하기도 하지. 입에 털어 넣었다. 달다. 책상정리를 하려다 말았다. 새벽 세 시니까. 쓰레기만 대충 버리고 연구실을 나왔다.


기숙사로 향했다. 초안은 보냈지만 어떻게 수정하라고 하실지 모른다. 그러니 너무 늦게 출근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면 내일 하루도 그렇게 날아가겠지. 아마도 주말까지 주욱. 내일 끝난다 해도 주말엔 푹 쳐져서 쉬어야 할 것이다. 이번 주 연구는 안녕이다. 꼭 연구 좀 해볼라치면 별 일이 다 생긴다니까. 연구 체증은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스마트폰에서 게임만 안 할 거라면 성능이 좋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성능을 포기하고 전력효율만 엄청 높여서 디자인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성능을 계속 높여가면서 배터리도 오래 가게 하려니까 힘든 거잖아. 생각해보라. 스마트폰이 느려서 짜증날 때가 더 많은가, 배터리가 없어서 짜증날 때가 더 많은가? 더 느린 스마트폰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카톡을 주고받고 인터넷 기사도 보고 지도도 보지 않았던가.

두께도 그렇다. 좀 더 두꺼워도 상관없을 것 같다. 대신 배터리가 오래 가는 게 더 이득일 것 같다. 몇 밀리미터 줄어든다고 손에 쥘 때 느낌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현대의 제품 개발이란 이미 있는 기술들 중에 어느 걸 선택해서 모아놓느냐의 문제이다. 아이폰은 이미 있는 아이팟에 통신모듈을 붙였을 뿐이고, 아이패드는 액정을 키웠을 뿐이다. 긴 배터리 지속시간에 대한 니즈는 분명 있을 텐데, 왜 그런 기술들을 선택한 스마트폰은 안 나오는 거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영업사원 등에게 잘 팔릴 것 같은데.

일등 기업들이야 자존심 때문에라도 성능 경쟁을 해야겠다면, 이등 기업들이라도 과감히 투자해볼 만한 것 같은데. 어차피 안 될 게임에 매달리지 말고 확실한 시장으로 가는 거지. 내가 회사 기획팀에 있으면 한 번 밀어볼 텐데.

이런 문구 어때? “요즘 누가 명절에 충전기 챙겨가나요?” 캬. 기막히다. 나라도 사겠다. 역시 밤공기가 창의력에 좋다니까.


아침 아홉 시쯤 잠깐 깼다. 긴장하며 스마트폰을 켰다. 역시나 교수님 메일이 와 있다. “수고했어.” 한 마디다. 다시 잤다.


열한 시쯤, 가방을 멘 채로 교수님 방부터 노크했다.
권대성(교수): 새벽까지 했으면 좀 더 늦게 와도 되는데.
김정원(4): 그렇게 일찍 온 것도 아닌데요. 빨리 해야죠.
권대성(교수): 지금 해놓은 거 보고 있는데, 나쁘지 않아. 편집도 깔끔하고, 이대로 제출해도 되겠어.
, 이 얼마만의 칭찬인가. “나쁘지 않아”가 무슨 칭찬이냐구? 원래 이 바닥 사람들이 말을 보수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늘 비평을 주고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평에 익숙해지다보니 모든 경우를 다 따져서 확실한 것만 말하려 한다. 과장만큼 까이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그러니 “좋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 경우에는 좋다.” 혹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 않은 결과를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방금 교수님이 말씀하신 “나쁘지 않아”는 실제로는 이런 의미일 것이다. “난 좋아 보여. 하지만 이 보고서를 읽는 회사 사람들 눈에는 어떨지는 내가 알 수 없는 거잖아. 그렇지만, 절대 나빠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해.” 그러니 칭찬이다.

하지만, 이 바닥 사람들은 늘 비평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무엇이든 깔 수 있는 사람들이다.
권대성(교수): 근데 여기 이 부분은 1, 2번으로 쓰지 말고 도식화해서 그림으로 만들면 더 좋을 것 같아. (몇 장 넘긴다.) 또 여기는 내가 메모해둔 거 보이지? 이런 문장을 추가해. 그냥 놔두면 인과 관계가 좀 허술해져. 여기 말고도 몇 군데 표시해뒀어. 오타도 몇 군데 표시했으니까 고치고. 보자…, 그래. 첫 번째 장에 스마트폰 사용 시나리오 좀 사진으로 넣어. 두 가지쯤 골라서.
김정원(4): .
권대성(교수): 혼자 다 하지 말고 애들이랑 나눠서 해. (보여주던 문서를 주며) 이거 가져가. 다 고치면 메일로 보내줘.
김정원(4): , 그럼 작업하고 나서 알려드릴 게요.
교수님 방을 나왔다. 국현이와 길영이를 부를까 하다가 관뒀다. 어차피 문서 파일은 하난데, 나눠서 작업하고 다시 합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다. 어제 해놓은 걸 보니, 이런 거 맡겼다간 몇 가지 빼먹을 것 같기도 하고.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애들이 밥을 먹자고 불렀지만 먼저 가라고 했다. 후딱 하고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교수님이 표시해놓은 부분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고쳤다. 사진도 더 추가하고, 문장도 더 추가했다. 오타도 고쳤다. 순서도도 추가했다. 그러다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 내용도 좀 더 추가했다.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편집을 살폈다. 오타가 하나 있다. 이놈의 오타는 고쳐도 고쳐도 계속 나온다니까. 세상에 오타 없는 문서란 게 존재하긴 할까.

처음부터 훑어봤다. 문서에 각이 잘 잡혀 있다. 글자가 좀 있다 싶으면 한 번씩 그림과 표가 나오는 게 어린이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내용은 그렇지 않지만. 어쨌든 정말 좋은 보고서처럼 보인다. 뿌듯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다.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안 먹고 일했구나. 어쩐지 목이 타더라니.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고 일어섰다. , 파일 첨부 돼있나? 확인했다. 되어 있다. .


 빈 소장이 몸을 배배꼰다. 위장벽에선 할 일 없는 위액들이 파도 타기나 하고 있다. 쓸개[1]가 쓸개즙으로 배터질 것 같다고 난리다. 금방이라도 토할 태세다.

학교식당은 두 시까지 한다. 늦었다. 대신 햄버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수분 적은 빵과 패티[2]에 침을 적셔 본연의 맛을 찾아내는 과정은 참 매력적이다. 침이 부족하다 싶으면 기름으로 목욕하고 소금으로 옷 입은 감자튀김으로 혀를 자극하면 된다. 짜다 싶으면 바로 달콤한 콜라 한 모금. 콜라가 치아를 녹인다지만, 우리는 치과에서 스케일링도 받지 않는가.

10분쯤 걸어 교내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했다. 햄버거 세트를 하나 주문했다. 유명한 메뉴를 시켰더니 진동벨도 안 주고 바로 쟁반에 담아준다. 역시 빠르다.

자리에 앉아 한 입 베어 물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 맛이다. “먹어봐야 내가 아는 그 맛”[3]이라는 다이어트 명언 따위. 내가 아는 그 맛이 좋으니까 먹는 거 아닌가. 오물오물. 혹여 흘릴까 포장지를 조심스레 부여잡고 먹었다.

그런데 이 포장지 좀 불편하지 않나? 조금씩 벗겨 먹는 형태로 나오면 안 되나? ,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콘도 3단계로 나눠서 벗겨먹을 수 있게 되어 있잖아. 그것처럼 햄버거도 몇 번에 나눠서 벗겨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종이도 약간 두껍게 해서. 감자튀김 담는 그 종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그러면 훨씬 먹기 편할 것 같은데.


갑자기 깨달았다. 그래, 나는 연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예전에도 많이, 아니 자주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난 연구보다는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거나마케팅 업무를 하는 데 더 적합한 것 같다. 그게 더 적성인 것 같다. 더 재밌어 보인다.  행복할 것 같다.

생각해봐. 내 연구는 잘 못 만들어내고 있지만 논문 내용을 가지고 발표하는 건 잘 하잖아. 내용 파악도 잘 하고 쉽게 설명해내잖아. 쓸데없는 질문들도 꽤 잘 받아쳐내고 말이야. 이건 마케팅에 꼭 필요한 능력 아니냐고. 그리고 아이디어도 자주 내잖아. 연구로서는 가치가 없는 게 대부분이라 그렇지. 주위 사람들이 내 생각을 재밌어 한 경우는 많지 않아? 이건 기획팀에서 필요한 능력 아니냐고. 또 논문은 막막해서 못 쓰면서도 보고서는 열중해서 써내잖아. 문서를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 내는 것도 재밌어 하잖아. 회사가 딱이네. 그치? 그러네, 그러네.

그럼 박사를 접어버릴까? 어차피 연구자가 될 게 아니라면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이제까지 해온 것도 다 매몰비용일 거고.

, 아닐 수도 있겠다. 박사를 받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입시니까. 내 지금 상태는 기획자나 마케터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스펙이다. 취업 준비계의 운전면허증 같은 4년제 대학 졸업장에 대학원 입시 턱걸이한 텝스 성적 뿐. 하지만 박사학위를 받는다면? 나는 기획팀 내에서 최신 기술 동향을 가장 잘 파악해서 새로운 제품을 기획할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엔지니어에게 꼰대 짓 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의 소통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보팀 내에서 엔지니어의 제품 설명을 가장 잘 알아듣고 팀원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게 되겠지. 괜찮지 않은가?


물론 안 해봤으니까,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 있다. 연구는 해봤으니까 안 맞는 걸 아는 거고. 근데, 안 맞는 걸 아는데 괜히 매달릴 필요 없잖아? 석사 2년에 박사 4년 해봤으면 대충 사이즈 나오잖아. 평생 연구로 잘 나가긴 힘들 거란 걸.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명문대생 중 꼴찌보다 평범한 대학의 일등이 졸업 후 논문 실적이 훨씬 좋다고 한다. 입학 성적은 명문대생의 꼴찌가 더 높았는데도. 명문대 꼴찌는 주변에 더 잘하는 사람밖에 없다보니 자기가 못하는 줄 알고 더 못하게 되고, 평범한 대학의 일등은 자기가 잘하는 줄 알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낫다는 말이다.[4] 내가 회사에 간다고 머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골반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자로 나선다면 볼 것도 없이 꼬리 끝의 각질쯤 되겠지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래, 난 박사과정의 미운 오리가 아니다. 훗날 회사에서 날아오를 백조. 수많은 연구자들이 내 논문을 읽으며 무릎을 치게 하고 싶다는 꿈은 포기해야겠다. 이십 대 초반의 똘망똘망한 학생들이 내 강의에 감명 받아 전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일을 해내기를 꿈꿔보면서.


애초에 박사를 꿈꿨던 게 잘못인 것 같다. 박사를 받으려고 한 게 잘못이 아니다. 그것을 “꿈”으로 삼는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박사과정은 수능시험 준비와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이 목표일 수는 없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정류장에 내려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박사과정 아닐까? 버스가 늦게 온다고 불평하지 말자. 갈아타려고 한 건 나니까.

난 더 이상 박사를 꿈꾸지 않는다. 박사과정을 밟아나갈 뿐이다.

[1] 쓸개: 간에서 분비하는 쓸개즙을 저장해뒀다가 음식이 들어오면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2] “맥도날드 햄버거가 썩지 않는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ㅍㅍㅅㅅ http://ppss.kr/archives/32352
[3] 옥주현이 자신의 저서 “내 몸의 바운스를 깨워라”에서 쓴 말로 유명하다. 
[4] 말콤 그래드 웰 지음, 선대인 옮김, “다윗과 골리앗”, 21세기 북스 출판, 1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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