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논문 발표 준비를 하느라 세 시간밖에 못 자서가 아니다. 예은이
때문이다. 예은이가 미소 한 번 지을 때마다 진짜 죽겠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터지려고 한다. 데이트하다 돌연사하진 않아야
할 텐데.
둘은 족욕카페에 있다. 예은이가
오자고 했다. 정길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다. 사실 일찍
들어가서 자게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예은도 안다. 하지만
너무 보고 싶어서 그건 안 되겠다고 했다. 사랑과 배려를 동시에 잡는 두 마리 토끼 같은 여자라니. 연애 4일차. 정길은
결혼을 마음먹었다.
탁자 위로 손을 만지작거리고, 밑으로 발을 간질였다. 피곤도 잊고 나이도 잊었다. 광활한 우주에 정길과 예은 뿐이었다.
“오빠는 박사 따면 뭐할거야?”
예은이 생글거리며 물었다.
곧잘 정길을 사지로 내몰던 그 미소를 띠면서.
한 조사 결과[1]에
따르면 대학원생이 제일 싫어하는 질문은 “졸업 언제 해?”라고 한다.
2위는 “결혼 언제 해?”, 그리고 3위가 “학위 받으면 어디로 가?”다.
정길이 이 질문을 한 두 번 받아봤겠나. 레퍼토리야 넘쳐난다. 친구에겐 ‘박사부터 따고 생각해봐야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말을 돌린다. 부모님껜 ‘아, 그런 거 좀 묻지 말라고’ 하며 화낸다. 친척 어르신들께는 ‘연구소나
대기업 같은 데로 갈 것 같은데, 천천히 알아보려고요’라며 대충 둘러댄다. 교회에 다닌 뒤부터는 ‘주님은 아시겠죠’가 더해졌다.
하지만 예은이 묻는다. 피곤할
테니 그냥 자라고 하고도 싶지만 너무 보고 싶어서 족욕카페에 데려온 예은이 묻는다. 눈가 주름마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려준 듯한 예은이 묻는다. 카톡 하나를 써도 김수현 작가가 대필해준 듯한 예은이 묻는다. 제일 사랑하고, 제일 사랑해주는 예은이 묻는다.
“솔직히 모르겠어. 내가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학교로 온 게, 정말 뭐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거든.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연구도 더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이왕 왔으니
학위는 꼭 따고 싶지만, 그걸 이용해서 뭐가 돼야지, 이런
생각은 없어.”
정길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다. 정길은 스스로도 놀랐다. 정말 오랜만에 꺼내보는 초심이다.
“멋있다….”
예은은 반짝거리는 따뜻함으로 정길을 응시했다. 정길은 좀 쑥스러워졌다.
“에이, 뭘. 사내라면 큰 포부가 있어야 하는데, 그치?”
“아냐. 난 이런
게 더 멋있어. 역시 우리 오빠 최고다.”
내심 바라던 바로 그 대답을 해준다. 정길은 예은의 부모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분일까? 날 마음에 들어 하실까?
예은과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정길은 예은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오빠, 지영이
있잖아, 어린이집 교사하는 애, 걔가 그러는데, 어린이집 교사는 자기 자식은 절대 어린이 집에 안 맡기려고 한대. 불안해서
못 맡기는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아이들한테는 엄마가 더 필요하겠구나, 그런 걸 느끼나봐. 교사 한 사람이 아이 세 명씩 돌봐주게 되는데, 그것부터 좀 한계가 있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애를 낳으면 적어도 세 살까지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 경력단절이니
뭐니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제일 소중하잖아. 안 그래?”
정길은 이 말을 듣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어린이집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어린이집 교사가 아니라 그 부모부터 욕하던 부모님이었다. 아이는 어떻게든 엄마가 키워야지, 어떻게 핏덩이를 남들 손에 맡기냐는
것이다. 넌 그런 여자 데려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 하셨다.
그 때마다 정길은 반박했다.
요즘 시대에 혼자 벌어서 먹고 살기 힘든 거 모르느냐, 요즘 시대에 집에서 살림만 하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느냐, 아예 결혼을 하지 말란 소리냐, 하면서. 하지만 내심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를 데려오고 싶었다. 이왕이면
부모님께 예쁨 받는 며느리가 좋으니까.
그런데 예은이 먼저 이런 말을 해주다니. 정길은 후손들에게 미안해졌다. 향후 10대손 정도까지의 행운은 자기가 다 끌어다 쓴 거 같아서.
정길은 겨우 이와 발만 닦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예은에게 보낼 카톡을 쓰다가 전송 버튼을 못 누르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 부족한 몸에 뜨끈한 물로 족욕까지 한 탓이다. 피곤과 노곤과
행복. 정길의 밤은 달았다.
정길은 11시간이나
잤다. 깨자마자 아침 인사를 하려고 핸드폰부터 찾았다. 그런데
쓰다만 카톡이 보인다. 풉.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군. 간밤의 카톡도 보인다. ‘오빠 벌써 잠든 거야?’, ‘잠들었나 보네. 많이
피곤했지이? 잘자요! 예은이 꿈꿔!!!!’ 하는 예은의 카톡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예은이 꿈은 꾸지
않았다. 너무 깊이 잠든 탓일 게다. 아쉽다.
정길은 다시 어젯밤의 추억을 그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5일째인가?
와, 시간 정말 안 간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예은의 질문도 떠올랐다. “오빠는 박사 따면 뭐 할 거야?” 다른 말도 떠올랐다. “애를 낳으면 적어도 세 살까지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
정길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애를 대신 낳아줄 수는 없다. 젖을 대신 물릴 수도 없다. 그러니 세 살까지 직접 키운다면 주된 역할은 예은이가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정길이 박사를 따고 뭔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예은이가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
‘박사는 딸 수 있을까?’
정길은 여기서부터 막혔다.
박사과정 3년에 논문이라곤 워크숍 논문 하나.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는데 이제 겨우 쌀밥 한 번 안 태우고 지어봤다고 보면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박사를 받으려면 학회나 저널 논문 2개 분량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수님이 정해놓은 기준이다. 그리고 워크숍 논문은 학회나 저널 논문 0.5개 정도로 어림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9년쯤은 더 있어야 박사가 된다는
말이다. 정길의 나이 서른 셋. 첫째부터 늦둥이 삼고 싶진
않다.
그래, 실력이
점점 증가하는 걸 감안해보자. 그래도 지금까지 해온 가락이 있으니까.
실력이 두 배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3년 만에 0.5개의
논문을 썼다. 실력이 두 배씩 증가한다고 가정했으니까 3/2 =
1.5년만 더하면 0.5개를 더 쓸 수 있다. 그러면
저널이나 학회 논문 1개가 된다. 합이 4.5년이다. 여기서 다시 학회나 저널 논문 하나를 추가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거지? 3/4 + 3/8 = 9/8로 잡아서 1.125년으로
계산하는 게 맞나? 아니면 처음 논문 1개가 4.5년이니 4.5/2로 해서
2.25년으로 잡는 게 맞나? 더 작은 숫자로 하자.
4.5 + 1.125를 계산하면….
물론, 그리 될
리 없다. 인생사가 언제는 내 마음대로였나. 정길은 차라리
회사나 계속 다닐 걸 싶었다. 그러면 지금쯤 돈은 좀 모아뒀을 텐데.
왜 박사를 따러 와서….
‘아. 그럼 예은이를
못 만났겠지.’
정길은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정길은 늘 “딴 건 모르겠고, 군대 제대한 다음”이라고 답해왔다. 이젠 그 답을 바꿔야겠다. “안 돌아갈래.”
어쨌거나, 연구를
더 열심히 해야겠지. 박사를 따려해도, 취직을 하려해도. 오늘부턴 데이트 후에 다시 연구실로 가야겠다.
정길은 출근을 하고 데이트를 했다. 예은이를 생각하고, 예은이를 만났다. 찰나이자 영겁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예은의 집 앞이었다.
“오빠, 이제
기숙사 가서 잘 거야?”
“아니, 나 연구실
가려고.”
“정말? 어떡해…. 할 일 많아? 미안해…. 내가
오빠 시간 많이 뺏었지….”
“아냐, 아냐! 그렇게 말하지 마. 예은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데, 뭘 뺏어. 예은이한테 멋진 남자친구 하고 싶어서 연구 더 열심히
하려는 거야.”
“나 때문에 오빠가 고생하는 거 싫어….”
“예은아. 너
때문에 고생하는 거 아냐. 널 위해서 고생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고생하는 것도 아냐. 조금 늦게 자는 거지, 충분히 잘 거야.”
“알았어…. 그럼
잘 때 꼭 카톡하기!”
“그래, 그래. 예은아, 늦겠다. 어서
들어가.”
“어? 대박. 10시 1분이네. 나
빨리 들어갈게!”
후다닥 뛰는 예은의 뒷모습.
정길은 마음속으로 사랑한다고 스무 번쯤 외치고서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래도 논문 2개는
쓰고 졸업해야 할 텐데…. 어떡하지….’
그 때였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워크숍 논문을 확장할 거리다. 그리고 다른 아이디어도
하나 떠올랐다. 주제만 떠오른 게 아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될지, 구현 해보려면 어떤 도구를 써야 좋을지, 어떤
실험 데이터가 필요할지 한 번에 다 떠올랐다.
‘와, 대박.’
정길은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급히 메모장 앱을 켰다. 생각이 흘러가기 전에 적어놓아야 한다. 오타가 나든 말든 재빨리 적어 내려갔다.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중간중간 빠진 고리가 있다. 애써 머리를 굴려 겨우겨우 채워놓았다.
희망이 생겼다. 이대로만
되면 졸업이 가능하다. 졸업을 하면, 졸업만 하면, 그래도 취직은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예은이와도….
안 그래도 부푼 가슴이 더욱 부풀었다. 정길은 아이디어를 계속 되새기면서 연구실로 갔다.
밤 10시 30분. 연구실엔 준상만 남아 있다.
심정길(박3): 안 들어갔네?
강준상(박4): 어? 벌써 10시가
넘었네요.
심정길(박3): 10시만 되면 퇴근하던 애가, 뭐하는데?
강준상(박4): 다음 주 논문 발표 제 차례잖아요. 발표할 논문 좀 고르고 있었어요.
심정길(박3): 뭐 재밌는 거 있어?
강준상(박4): 그냥 이거 저거 보고 있어요.
정길은 준상의 모니터를 봤다. 논문 저자가 만들어놓은 듯한 발표 자료가 떠 있다. 어? 근데 어디서 많이 본듯… 한 게 아니라 자신이 아까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심정길(박3): 이거, 논문 뭐야?
강준상(박4): 네?
심정길(박3): 제목이 뭐야? 어디 나온 거야?
강준상(박4): 이거 이번 ISCA[2]에 나온 건데요, 제목은 여기….
준상은 발표 자료 첫 페이지에 있는 제목을 보여줬다. 정길은 제목을 재빨리 외워서 자리로 갔다. 발표 자료와 논문을 검색해서
내려 받았다.
정확하게 정길이 생각했던 두 번째 아이디어와 같다. 게다가 훨씬 더 자세하고 명료하다. 정길이 이 논문을 보지 못한
채로 논문을 썼다면, 신경숙과 같은 말을 해야 했을지 모른다. “내가
읽지도 않는 논문을 표절할 리가 있나.”[3]
정길은 저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첫 번째 저자를 검색해봤다.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박사과정 학생이다. 출판된 논문이 몇 개 있다. 정길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다. 논문 하나의 제목이 수상하다. 찾아봤다.
그리고 확신했다. 평행이론은
진리다. 케이블 예능에나 나오는 것이 아니다.[4] 그 논문은 정길의 첫 번째 아이디어, 그러니까 워크숍 논문 확장을 위해 생각했던
바로 그것의 실현이었다. 심지어 정길의 워크숍 논문이 인용되어 있다.
평행할 거면 시간적으로도 평행하던가. 왜 자신에겐 이제야 아이디어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게 빠를까, 아니면 내가 박사를 받는 게 빠를까? 내가 사업을 해서 대박 나는
게 빠를까, 아니면 논문을 써서 박사가 되는 게 빠를까? 예은이한테
그런 말만 안 해놨어도…. 완전 연구가 하고 싶어서 박사 온 걸로 말해놨는데 또 그만 두면…. 아니 근데 이 나이에 박사도 아니면 어디에 취직해….’
이런 생각을 하던 정길은,
드디어 결론에 다다랐다.
심정길(박3): 준상아. 안 바쁘면 나랑 술 마시러 가자.
강준상(박4): 네?
심정길(박3): 바빠?
강준상(박4): 아뇨. 그건 아닌데….
심정길(박3): 그럼 술 한 번 먹자.
강준상(박4): 이왕 마실 거면, 치맥(치킨과
맥주) 어때요? 마침 배도 출출한데.
심정길(박3): 좋아. 가자.
준상은 기숙사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운동은 건너뛸 심산이었다. 이왕 쉬는 거 술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정길은 옆방에 혼자 남아 있던 정원도 불렀다. 정원도 순순히 나왔다.
셋은 치킨집에 자리를 잡았다. 오로지 먹히기 위해 살찌워진 닭이 해체되어 앞에 놓였다.
김정원(박4): 이렇게 모이니까 딱 고년차 모임인데요.
초등학교를 4학년부터
고학년이라 부르는 것처럼, 박사과정은 3년차부터 고년차라고
부른다. 물론 연구실 분위기에 따라 4년차쯤은 되어야 고년차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환갑잔치’의 의미가 퇴색된 것처럼.
심정길(박3): 그러네.
김정원(박4): 그럼, 고년차끼리 모였으니 졸업이야기나 해볼까요?
평소 같았으면 정원을 구박했을 정길이다.[5] 술 마시러 와서까지 굳이
졸업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심정길(박3): 그래, 준상이 넌 디펜스[6]가
언제야?
강준상(박4): 이제 얘기를 꺼내긴 해야 하는데….
김정원(박4): 너야, 말만 하면 되지. 논문도
넘치도록 있겠다, 교수님도 딴 데로 옮겨가시니 붙잡을 이유도 없겠다,
빨리 해라.
강준상(박4): 뭐, 11월쯤 많이 하니까, 그
때로 이야기해 보려고.
심정길(박3): 박사 받고 나서는? 생각해 봤어?
강준상(박4): 그게 문젠데요, 일단 포닥[7]을
나가고 싶긴 한데….
심정길(박3): 미국으로?
강준상(박4): 그쵸.
김정원(박4): 여자친구는 어쩌고?
강준상(박4): 그게 문제야. 내 마음대로 하자면 결혼해서 데리고 나가고 싶은데, 여자친구도 직업이 있고, 또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고 하니까….
심정길(박3): 그래도 이런 유망한 친구한테 시집가는 게 괜찮을 텐데.
강준상(박4): 유망하긴 뭘요.
심정길(박3): 근데, 포닥 갔다 오면? 그
다음엔 뭐할 거냐?
사실 이것을 묻고 싶었다.
강준상(박4): 글쎄요, 교수 자리도 생각은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돼야죠. 대학에서도 학과 별로 교수를 뽑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딱, 컴퓨터 그래픽 전공한 교수가 은퇴할 때쯤 컴퓨터 그래픽 전공하는
교수 한 명 뽑고 이런 식이라면서요.
심정길(박3): 그래, 그거 타이밍 잘 맞아야 된다더라.
김정원(박4): 거기다 해외에서 박사 받은 사람들이 드글드글할 텐데요. 외국에서
포닥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한국 대학에 자리 나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대요.
심정길(박3): 그럼, 우린 연구소 자리 알아보면 되는 건가?
김정원(박4): 연구소도 논문이 있어야 가죠. 최소한 SCI급[8]으로 2개는
있어야 한다던데.
정길은 자신의 워크숍 논문을 생각했다. 아침에 계산한 게 몇 년이었더라…. 앞으로 3년쯤 더 하면 되는 것이었나?
강준상(박4): 근데 그게 또 학회 논문은 안 쳐준다면서요. SCI급 저널로만 2개래요.
심정길(박3): 하나 쓰기도 막막한데 어느 세월에….
강준상(박4): 근데 또 우리 분야는 학회 논문을 더 쳐주잖아요. 교수님도 학회
논문을 먼저 쓰려고 하시고. 그런데 연구소에서는 저널 논문만 쳐주니까,
이걸 어떻게 하기가 힘든 거죠. 저도 지금 연구소 알아보려면 논문 2개밖에 없는 거래요.
라고, 학회 논문 2개, 저널 논문 2개의
저자인 준상이 말한다. 번듯한 논문 하나 없는 정원과 정길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심정길(박3): 아씨. 그럼 너랑 나는 역시 기업 쪽으로 가야겠네.
정길은 유일한 동지인 정원을 보며 말했다. 회사를 그만 두고 대학원에 온 정길이다. 어차피 다시 회사로 갈
거라면, 뭐하러 공부를 했을까? 실무경력이나 더 쌓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돈도 더 많이 버는데.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보는 학생들이 많다. 멀쩡히 학교 잘 다니다가도 오디션을 본다. 부모님이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오디션을 본다. 꿈을 포기하지 못해서다. 애써 합격하면 연습생이
된다. 데뷔는 요원하다. 몇 년이고 연습만 하다가 포기하기도
한다. 겨우 데뷔해서 망하기도 한다. 꿈을 취미 삼았다면
적당히 돈 벌며 즐겁게 살았을 사람들이, 젊은 시절의 경력에 지우개를 댄다. 정길에게 박사란 아이돌 같은 것이었을까?
김정원(박4): 솔직히, 우리 정도 학벌이면 대기업 취직은 쉽죠. 학교에 취업설명회도 엄청 자주 하잖아요.
심정길(박3): 그래. 그럼 돈은 많이 벌겠지.
김정원(박4): 근데 그건 계산을 해봐야 하지 않아요? 대기업에서 55세 넘기기가 힘들다던데. 국가연구소는 정년도 보장되고, 이게 공무원처럼 돼서 오래 다니면 연금도 나오잖아요.
심정길(박3): 55세? 그럼 난 애들 대학도 못 보내는 거야?
강준상(박4): 그래도 박사 따고 들어가면 좀 낫지 않을까요? 요즘 임금피크제다
뭐다 해서 정년 연장도 한다던데.
심정길(박3): 그래봤자 60 아냐? 애들
시집, 장가는 어떻게 보내냐.
김정원(박4): 그 다음은 치킨집이죠. 원래 공대생 커리어의 끝은 치킨집이잖아요. 혹시 몰라요, 저기 저 사장님도 왕년에 공대생이었을지.
심정길(박3): 너, 치킨집은 아무나 하는 줄 아니. 요즘 치킨집도 진짜 박 터질 걸. 동네마다 두 세 군데는 기본으로
있잖아. 사람들이 치킨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강준상(박4): 저도 얼마 전에 봤는데,[9] 재료값 나가고, 인건비 나가고, 카드
수수료 나가고, 프랜차이즈 수수료 나가고, 그렇게 다 빼고
나면 진짜 알바생만큼 벌기도 만만치 않다던데요.
심정길(박3): 핵심은 임대료지. 장사가 잘 되면 더 올려서 달라고 한다며. 진짜 장사 잘 되면 내쫓고 건물주가 직접 해버리고.
김정원(박4): 역시, 돌아, 돌아
건물주가 답인 건가요.
심정길(박3): 그래, 요즘 세상에, 한 15억만 있으면 어디서 건물 하나 사다가 월세 받아먹고 살면 딱이지. 진짜
돈 욕심 있는 것만 아니라면.[10]
김정원(박4): 건물만 있으면 취미 삼아 치킨집 해도 좋겠네요. 본전치기만 해도
뭐 어때요. 내가 먹을 치킨 내가 튀겨 먹는 맛만 해도 쏠쏠할 것 같은데.
심정길(박3): 그래, 근데 15억이
애들 장난이냐. 내 집 하나 마련하기가 힘든 세상인데. 애들
생기고 하면 집도 좀 커야 할 거 아냐. 재산 모으긴 뭘 모아, 모으는
족족 집 한 칸 사는 데 쏟아 붓겠지.
강준상(박4): 우울한 얘기들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요.
심정길(박3): 야, 인생도 쓴데, 우리
소주 한 잔 하자. 사장님, 여기 참이슬 하나요!
김정원(박4): 형, 근데, 결혼도
안 해놓고 자꾸 애들 얘기하는데, 애인 생겨서 그러는 거예요?
심정길(박3): 어? 너 어떻게 알았어?
김정원(박4): 푸하하하, 어떻게 미끼도 없이 던진 낚시에 걸려요? 일요일 아침에 만났던 그 여자에요?
심정길(박3): 너, 봤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11]
사장님이 참이슬 한 병과 소주잔을 갖다 주셨다. 정원이 술병 밑동을 툭툭 때리고 뚜껑을 열어 잔에 따르면 말했다.
김정원(박4): 여자친구도 생긴 분이 인생이 쓰긴 뭘 써요. 그럼 우리 소주
한 잔 하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교회에서 만났어요?
고년차들은 정길의 따끈따끈한 연애 이야기로 웃음을 찾았다. 술맛을 찾았다. 어차피 답 없는 진로 따위. 참, 진, 이슬, 로가 답이다.
[1] 2015년 10월 25일에 조사된 결과로
대학원생 1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응답률은 100%다. (그 대상자는 나다.)
[2] 이스카(ISCA, International Symposium on Computer
Architecture): 매해 열리는 컴퓨터 관련 국제학회로, 주로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한 분야를 다룬다.
[3] 한윤정 선임기자. 신경숙 ‘표절 의혹’ 확산
-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 경향신문. 2015년 6월 23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506230600035&code=960100
[4] ‘평행이론’은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과학적
증거는 없고, 우연 몇 개를 끼워 맞추어 증거 삼는 것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방영한 엠넷의 “비틀즈코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사용했다.
[6] 디펜스(defence):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을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교수님들 앞에서 박사학위논문 내용을 구두발표하는 것으로 심사 받게 된다. 구두발표를 마친 후에는 교수님들을 질문을 던지는데, 여기에 대답까지
잘 해야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박사학위논문에 대한 교수님들의 공격(질문)을 잘 막아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과정을 디펜스(defence, ‘방어’라는 뜻)라고 한다.
[7]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8] SCI급: SCI(Science Citation Index)는 직역하면 “과학논문인용색인”이란
의미로, 소위 ‘급’이 되는 논문들을 모아놓은 목록이다. (http://ip-science.thomsonreuters.com/mjl/ 에서 확인 가능) ‘SCI급 논문’이란
이 목록에 속한 저널에 실린 논문이라는 의미이다. ‘SCI급
논문’ 개수는 연구 실적의 중요한 기준이 되며, 학교에 따라서는 자신이 제1저자인 ‘SCI급 논문’이 있어야만 박사학위를 주기도 한다.
[9] 프로그래머의 치킨집 차리기.jpg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iskin=webzine&l=441993
[10] 실현시킨 사람도 있다. 5억으로. 직장생활 22년 동안 모은 5억으로 시골에 집 한 채 짓고 오피스텔 2채 사서 월세 120만원 받으며 사는 것이다. 일단 5억 모으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 박창욱 기자. “‘120만원으로
한달 살기’ 2년째 했더니...” 머니투데이. 2013년 12월 6일.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120508085078965&type=1
#17. 기대
무궁화호는 시끄럽다. 아기가
울고 어르신들이 굵은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정원은 억지로 논문을 꺼내들었다. 기차에서 읽으려 챙겨 온 것이다. 왠지 집중이 잘 될 것 같았다. 나와 논문, 둘만의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틀렸다. 모두가 함께한다.
덜컹거림과 어수선함을 공유한다. 정원은 집중하려고 논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논문을 정말 뚫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너머를 멍하니 바라봤다. 금세 생각이 산만해진다.
추석맞이 열차엔 서서 가는 사람도 많다. 정원 옆에도 흰 수염과 검버섯이 교차하는 어르신이 서 계시다. 시내버스라면
당연히 양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원은 좌석표를
샀고 어르신은 입석표를 산 것이니까. 정원도 두 시간여를 가야 한다.
서서 가긴 힘들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논문을
집어넣고 졸린 척 눈을 감는다. 외면한다. 돈 몇 푼이 누군가의
몸과 누군가의 양심을 가른다.
추석엔 왜 집에 가는 걸까?
추석의 기원은 신라시대 여인들의 길쌈대결이라고 한다.[1] 여인들이 추석을 즈음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2]을 한다. 정해진 기간 동안 더 많이 해내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진 편에서는
잔치를 준비했다. 그리고 함께 즐겼다고 한다. 전통은 계승해야
한다고 치자. 그러자면 방직회사들 중에 주가가 낮은 회사가 높은 회사에게 출장뷔페 한 번 불러주면 되는
것 아닌가. 추석이라고 일가친척이 모이는 건 전통 왜곡이다. 이렇게
문명화되고 개인화된 시대에 가족도 아닌 일가친척이라니. 굉장히 구시대적이며 동물적인 것 아닌가.
그렇다. 정원은
집에 가기 싫은 거다. 평소엔 놀면서 꼭 추석이면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은 거다. 사박오일을 뒹굴 거리면 뭐하나. 지방질만 축적할 걸. 30대면 내장지방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추석 연휴 전날 밤. 정원은
어쨌거나 집에 도착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편할 정도로 단정한 옷차림으로 백화점에 서 있었을 한 여자가, 후줄근한 츄리닝 바람으로 정원을 맞는다.
“어이구, 우리
정원이, 오느라 고생했다.”
그녀가 정원이 엉덩이를 토닥인다. 정원의 짜증이 먼지 털리듯 털린다. 엄마란, 어쩔 수 없는 존재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박사를 따야 할 텐데.
“아빠는?”
“오늘도 늦으신대.”
정원의 아버지는 방직공장을 하신다. 어느 산업이나 그렇듯, 한국 경제가 한창 성장할 땐 잘 나갔다. 하지만 경제가 너무 성장해버렸다. 그래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버렸다. 매일 같이 밤늦게까지 일해도 영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엄마가
백화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는 돈이 줄어들면서 부터다.
“엄만 드라마 보고 있었어?”
“응, 배 안
고파? 뭐 줄까? 엄마가 식혜 해놨어. 만두도 있는데, 몇 개 튀겨줄까?”
엄마는 틀어놓은 드라마는 아랑곳 않고, 냉동실 문부터 연다.
“식혜나 좀 주고, 엄만
드라마 봐. 나 공부할게.”
“배고프면 만두 좀 먹지.”
“맨날 살쪘다고 하면서 이 야밤에 무슨 만두야.”
“배고프면 좀 먹고 운동을 하면 되지! 매일 학교 두 바퀴만 뛰면 돼.”
저 놈의 학교 두 바퀴. 정원의
귓밥 한 톨 한 톨에 새겨진 글자다.
“아 몰라. 논문
읽어야 되니까 식혜나 빨리 줘.”
“알았어.”
엄마는 식혜를 떠다주고 다시 거실에 드러눕는다. 텔레비전을 본다. 정원은 발만 대충 씻었다. 그리고 명절이면 늘 머무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원의 방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사랑방이다. 전기요에 두꺼운 이불까지 깔려 있다. 정원이 온다고 깔아놓은 것이리라.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늘
그렇듯 자리에 앉는 순간 의욕이 사라진다. 시작도 안 했건만 따분하다.
스마트폰을 뒤적인다. 하트가 떨어질 때까지 게임을, 새
소식이 떨어질 때까지 페이스북을 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 땐 공부를 열심히 했었던가?
모든 놀 것을 소비했다.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 이제야 논문의 글자들이 시신경에 올라탄다. 초록을
읽었다. 생각보다 흥미롭다. 공부는 재미있을 때가 많다. 다른 게 더 재미있을 때가 많을 뿐. 정원은 내친김에 서론을 읽어
내려가려 했다.
탈깍. 스윽. 방문이 열린다.
“정원아~ 뭐해? 엄마랑 놀까?”
정원은 부모님이 신(神) 같을 때가 있다. 첫째, 거짓말한
걸 이미 알고 있을 때다. 포커페이스도 필요 없다. 그는
이미 아신다. 그리고 둘째, 공부를 시작하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방해할 때다. 공부한다고 해놓고 놀고 있을 땐 말 한 번 안 건다. 그러다 정말로 공부를 시작하기만 하면 방해한다. 청소나 설거지를
시킨다던가, 시장에 함께 가자고 한다던가, 놀자고 한다던가.
“이야, 엄마는
어떻게 여지껏 놀다가 딱 공부 시작하면 놀자고 해?”
“아, 그랬어? 그래도 집에 왔으면 엄마랑도 놀아야지!”
“엄마랑 뭐하고 놀아.”
“쎄쎄쎄할까?”
늘 똑같은 레퍼토리. 늘
똑같은 대답. 늘 똑같은 정겨움.
“무슨 쎄쎄쎄야.”
“이리 와봐~”
먼저 이불 위에 드러누운 엄마가 손짓한다. 애인이 없는 정원에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다. 어찌 손길을
외면한단 말인가. 옆에 앉았다.
“다리 주물러 줄까?”
“좋지~”
정원은 하루 종일 서서 손님을 맞았을 엄마의 다리를 주무른다. 정원은 다리 근육의 구조 따위는 모른다. 그저 엄마의 종아리를 주물주물했다. 엄마가 시원해하는 건 세로토닌(serotonin)[3] 때문이리라. 플라시보 효과[4]이리라.
‘그래, 추석에
무슨 공부야.’
정원은 엄마와 대화를 시작했다. 어차피 올해는 틀려먹은 졸업, 추석 3일 더 한다고 될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방직회사 사장 아들이니까. 추석에 잔치 좀 즐기는 건, 전통에 맞는 일이지. 암.
추석의 하일라이트는 잔칫상이다. 일가친척이 한 상에 모인다. 남자들의 유흥과 여자들의 노동과 청년들의
고통이 모인다.
“정원이는 공부 잘 돼가냐?”
큰삼촌이 묻는다. 명절마다
같은 질문.
“열심히는 하는데, 뭐
쉽진 않네요.”
정원도 이제 맷집이 컸다.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지야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을 테니.
“그래, 세상일
쉬운 게 없다. 열심히 해야지.”
“난 정원이 니가 교수가 되면 좋겠다. 우리 집안에서도 교수 한 명 딱 나오면 좋잖아.”
이번엔 작은 삼촌이다.
“그래. 내가
봐도 우리 정원이가 교수가 잘 어울릴 거 같애. 학생들도 잘 가르칠 거 같구.”
작은 숙모가 거든다.
교수는 박사여야 한다. 하지만
박사가 모두 교수가 되는 건 아니다. 박사과정 학생에게 교수가 되라고 하는 건, 대기업 비정규직에게 임원이 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박사부터
되고 보자고요. 그 다음에도 얼마나 많은 경쟁을 거쳐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는데.
하지만 여기서 학계의 구조에 대해서 강의를 할 순 없지 않은가. 어차피 관심도 없을 것이다. 둘러대는 게 최선이다.
“누가 시켜줘야 하죠. 근데
그게 쉽진 않아요. 운도 많이 따라야 하고요.”
“그래도 우리 집안에서 교수 한 명 나오면 좋은데.”
작은 삼촌은 대학을 못 나왔다. 어려운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정원은 작은 삼촌의 한을 용납해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끝났나 싶었는데 다시 큰삼촌이다.
“"그래도
꿈꾸는 대학교 박사인데, 최고 좋은데 취직해야지! 빨리 돈
벌어서 부모님 편안하게 모시고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
삼촌이 말하는 '최고
좋은데'는 아마 대기업을 의미하는 것일 거다. 돈 많이 준다는
건 전 국민이 다 알고, 빨리 잘린다는 건 업계 관계자와 직계가족만 신경 쓰는 그런 기업 말이다.
“네, 그래야죠.”
일단 대답은 했다. 꿈꾸는
대학교 박사만 따면 대기업 취직이 어렵진 않으니까. 박사를 따는 게 문제긴 하지만.
정원은 자신만 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촌들도 한 상에 앉아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정원에게만 말을
걸었다. 학벌 때문일 거다. 그들은 어른들의 관심을 비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정원을 재수 없어 하고 있을까? 그들처럼
짐짝 취급을 받는 것과 정원처럼 동물원 동물 취급을 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걸까?
정원은 답답했다. 집안
모든 어른들의 기대가 정원을 옥죄었다. 그 기대를 충족시킬 확률이 아주 낮다는 건, 정원만 아는 듯하다. 이대로 가다간 박사부터 못 딸지도 모른다. 교수는 꿈도 안 꾸는 게 맞다. 취직이야 되겠지만, 언제 잘릴지 모른다. 안 잘리고 버틴다고 부모님을 은퇴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취업이 안 돼서 맞벌이가 힘든 세상에,
애는 무슨 돈으로 키우나. 그나마 학벌이라도 되니까 한 사람 몫은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은 힘들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순 없다. 옆에 있는 사촌들을 봐서도 그렇다. 그리고 얘기해봤자 ‘열심히 해봐라’는
말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레짐작이 아니다. 부모님께
누차 설명 드려 보고 난 뒤에 얻은 실험적 결론이다.
1년에 두 번씩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명절 대화. 이모가 기어코 마침표를 찍었다.
“근데 우리 정원이 만나는 여자는 없냐? 정원이 정도면 색시감이 줄을 설 것 같은데.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훤칠한데. 학교에 누구 없냐?”
이모는 지난 설에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을까? 정원은 설과 똑같이 대답했다. 애써 웃으면서.
“하하하, 없어요. 학교엔 대부분 남자들이고요.”
정원은 대답을 하다가 보영이가 생각났다.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존재. 학교에 보영이가 있긴 한데. 보영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을 부치고 있을까?
어쨌든, 이제
질문 세트를 한 바퀴 돌았다. 아마 정원에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정원은 추석을 다 쇤 것 같았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오후. 정원은 기어코 집을 나섰다. 엄마는 저녁을 먹고 가라며 붙잡았다. 하지만 급하지도 않은 논문 발표 준비 핑계를 댔다. 기차 시간까지 바꿨다. 하행선이라 자리는 있었다.
정원은 기차 올라탔다. 할
일은 많지만 도무지 하기 싫었다.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졸리기나
하면 좋으련만. 알람도 안 맞추고 될 때까지 잤더니 식곤증도 없다.
오늘따라 왜 이리 우울할까?
명절에 받는 대접이야 늘 같은데. 달라진 게 있다면 연차다. 내년 설이면 박사 5년차. 박사과정
권장 기한을 넘기게 된다. 어른들의 기대를 처음으로 무너뜨리게 된다.
남들 다 하는 재수 한 번 안 하고, 군 휴학 빼고는 휴학 한 번 안 했던 정원이다. 다행인 게 있다면, 집안의 어른들이 박사과정 권장 기한을 모른다는
것이다. “뭔 놈의 공부가 그리 오래 걸리냐? 빨리 취직해서
부모님 쉬게 해드려야지”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어른들 신경 쓰지 말라고. 네 페이스대로 가면 된다고. 네 인생의 답은 너라고. 그런 소리 마시라. 이게 한 때 내가 찾았던 답이니까. 석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정원의
기대는, 지금의 어른들의 기대보다도 훨씬 컸다.
정원은 좌석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편하다. 아무도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년엔 뭐할 건지 관심 갖는 사람도 없다. 서로
조용히 자기 갈 길을 간다. 함께 간다.
대전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익숙한 분홍색 니트가 보인다.
“어? 보영아.”
정원은 보영이가, 동지가
반가웠다.
“어? 오빠? 여기서 만나네요.”
“그러게, 대박이다.”
정원은 보영도 자신이 반갑길 바랐다.
“근데 오빠, 일찍
내려 오셨네요.”
“집에 있어봐야 뭐해. 이젠
기숙사가 더 편해.”
“그쵸, 저도
그래서 일찍 내려 왔어요.”
“넌 이제 석사 2년찬데, 벌써 그래? 빠른데.”
둘은 웃음 아닌 웃음을 지었다.
지하철엔 자리가 있었다. 둘은
나란히 앉았다. 보영은 캐리어를 앞에 놓고, 정원은 가방을
앞에 안았다.
“어디, 시골
다녀왔어?”
“저희는 할머니가 큰아버지댁으로 오세요.”
“너, 집이 대구랬지?”
“네.”
정원은 대화를 하다보니 보영을 보게 됐다. 분홍 니트의 털실이 얼굴 솜털처럼 올라와 있다. 정말 푸근해 보인다.
“너, 저녁 어떡해?”
“음, 글쎄요.”
“추석인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래?”
“그럴까요?”
어른들의 기대 따위. 정원은
그저 기대고 싶었다.
[1]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선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고 한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 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nfm.go.kr/Data/cMaug.jsp
[2] 길쌈: 실을 이용해 옷감을 짜는 일.
[3] 세로토닌(serotonin): 행복을 느끼면 엔도르핀(Endorphine)이 뇌에서 분비되며, 이것이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엔도르핀(Endorpnine)은 우리
몸이 고통을 느낄 때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분비되는 물질이라고 한다. 행복을 느낄 때 분비되는 물질은
세로토닌이다. 우울증을 치료할 때도 세로토닌의 기능을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출처: 삼성 정밀화학 블로그 -http://finesfc.com/210
[4]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사람이 가짜약(플라시보, Placebo)을 진짜 낫게 하는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실제로 증세가 호전되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18. 힐링
대전 지하철 의자는 좁다.
보영의 어깨가 정원한테 자꾸 스쳤다. 어깨를 잔뜩 움츠려야 떨어진다. 그렇게 있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그냥 자연스레 힘을 뺐다. 보영도 딱히 힘을 주는 것 같지 않았다. 어깨가 포근하게 맞닿았다. 작용과 반작용이 평형을 이뤘다. 서로를 가볍게 밀어내면서도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어깨끼리 썸타는 것도 아니고.
정원은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애썼다. 잠시라도 침묵이 흐르면 정말 어색할 테니까. 같잖은 말장난을 총동원했다. “전을 부쳤다구? 힘에 부치진 않았어?” 다행히도 보영은 착했다. 없는 웃음 포인트까지 연구해서 웃었다.
정원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랬다. 속으론 고민이 깊었다. 그가 했던 말 때문이다. “추석인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래?” 보영이 그러자고 했다. 그러니 정원은 이 말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맛있는 거’란 무엇인가?
어떤 웹툰이 말하듯 칼로리가 맛의 수치인 걸까?[1] 인간이 느낀다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지방맛[2]들이 어떤 비율로 느껴져야 맛있는 걸까? 대체 우리의 미각세포는
어떤 분자들과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 뇌하수체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하는가? 혹시 추석 기간에 더 특별히
작용하는 분자들도 있을까? 보름달이 뜨는 날이니까 조수간만의 차가 클 것이다. 따라서 파도가 클 것이다. 그러면 혹시 바다냄새가 바람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까? 바다냄새가 은은한 상태라면 해산물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거나…….
그리고 학교 근처여야 할 것이다. 이미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이다. 게다가 짐도 많다. 그러니 기숙사에 들려야 할 것이다. 기숙사까지 갔다가 다시 멀리
나가자고 하면 보영이 싫어할 수도 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테니까.
‘학교에서 멀지 않은, 추석에
어울리는, 맛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학교 근처 음식점들은 죄다 정원의 단골집이나 마찬가지다. 11년째 같은 동네에서만 삼시세끼를 사먹고 있으니까. 메뉴는 물론
메뉴별 가격 변천사까지 훤하다. 정원은 금세 답을 찾았다. ‘없음.’ 그냥 학교식당에서 먹자고 할 걸. 왜 굳이 맛있는 걸 먹자고 해서.
결국 정원은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뭐 먹을래? 학교 근처가 좋겠지?”
정원의 고민을 알 리 없는 보영은 정말이지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싶었다. 이 오빠가 전에도 그러더니 또 이러나.[3] 왜 자꾸 떠넘기는 건가. 아무 거나 좋은데, 그냥
좀 정해주면 안 되나? 이번만큼은 정해주기 싫었다. 대신
공대 오빠 조종법을 쓰기로 했다. 공대생들은 문제를 명확하게 제시하면 어떻게든 답을 내놓게 마련이다.
“그냥 오빠가 정해주시면 안 돼요?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문제는 다시 정원에게 넘어왔다. ‘아무거나’ 음식을 정해달라는 것이다. 보통, 여자가 말하는 ‘아무거나’는 다음과 같다. ‘나도 잘 모르는 내
무의식이 원하는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것.’ 하지만 정원은 공대 남자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보영이 의도한 바도 이와 일치한다. 보영은 공대 남자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학교에서 멀지 않은, 추석에
어울리는, 맛있는 음식. 답이 없다면 조건을 완화하면 된다. ‘추석에 어울리는’은 해산물 음식으로 치환하자. 좀 웃기긴 하지만. 그리고 ‘맛있는’의 기준도 낮추자. 막상 이러니 너무 많다. 그래.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스파게티는 어떨까?
“봉골레 스파게티[4] 어때?”
“어? 봉골레
스파게티 파는 집이 있어요?”
“봉대박 스파게티[5] 몰라? 거기 그 순대국밥집에서 좀 더 가서 2층에
있는 거.”
“아, 거기요? 저, 안 가봤는데.”
보영은 지나가다 몇 번 봤던 예쁜 간판의 집이 생각났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래? 거기를
안 가보면 어떡해! 가자!”
정원은 신났다. 맛이
괜찮은 집인데 보영이 안 가본 데라니까. 명절에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게 좀 그렇긴 해도.
“와~ 진짜
맛있겠다! 오빠, 나 이거 사진 찍어도 돼요?”
보영은 대답도 듣기 전에 핸드폰부터 꺼냈다.
“그럼! 음식에
대한 예의는 차려야지.”
정원은 보영의 이런 모습이 처음이다. 초롱초롱한 눈빛. 보조개까지 이어진 미소. 팔꿈치를 갈비뼈께에 딱 붙이고 핸드폰을 잡은 손. 약간의 호들갑이
곁들여진 솔 음의 목소리. ‘전보영은 여자다.’라는 명제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된 첫 순간이었다.
보영은 먹으면서도 연신 ‘맛있다’를 연발했다. ‘고맙다’고도 했다. 정원은 하도 흐뭇해서 없던 팔자주름이 다 생길
것 같았다.
스파게티는 금방 동났다. 먹는
게 빨랐던 건지, 시간이 빨리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후식으로 빙수 같은 아이스크림 나와. 지금 달라고 할게.”
“진짜요? 저
아이스크림 진짜 좋아하는데!”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보영인
다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신나서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멈춘다. 머쓱해하며 고개를 든다.
“제가, 좀 급하게
먹었나요?”
정원이 무슨 말을 하랴. 보영은
볼마저 약간 붉었는데.
“아냐,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좋다.”
“맛있는 걸 먹으니까 힐링되는 거 같아요.”
정원은 힐링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약 같아서다. 상황은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잠시 기분만 좋게 한다. 어차피 안 될 거면서 될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정원이 힐링되고
있는 사람 앞에서 힐링을 비판할 만큼 마초적이지는 않았다.
“니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나도 힐링되는 거 같아. 너 진짜 잘 먹는다.”
보영은 어쩔 줄을 몰랐다.
부끄러워하기도 부끄러웠다.
“힐링도 했는데, 논문이나
잘 써졌으면 좋겠다.”
“미안해. 그건
내가 못 도와주겠다.”
“오빠가 왜 미안해요. 이번에
집에 갔더니 사촌 오빠가 논문 써서 어디 학회도 다녀오고 어디서 상도 받았다고 막 그러는 거예요. 다들
나도 대학원 다니는 거 아니까 한 마디씩 물어보는데, 진짜…….”
빠르게 말하던 보영이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순간, 이 말을 정원보다 잘 이해해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정원도 말을 이을 순 없었다. 빤한 소리 말고는.
“그래, 그 맘
알 것 같아.”
보영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정원 앞이기에 편하게 내쉴 수 있는 한숨이었다.
정원은 뭐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6]이라도.
“우리 인텔(Intel)[7]에
인턴이라도 갈래?”
“갑자기 인턴은 왜요?”
“왜, 인텔에
인턴 가면 회사 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해서 논문 쓸 수 있잖아. 지난번에 내가 발표했던
논문 기억 안 나?”
“아, 그거 중앙처리장치(CPU) 설정 바꿔서 실험한 거요?”
“그래, 인턴
가자. 그래서 딱 세 달만 열심히 해서 마이크로(MICRO) 논문
하나 써오자.”
마이크로(MICRO). 정원과
보영이 논문을 내려다 실패한 그 학회다.
“그럴까요? 저
미국 가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예상 외로 보영이 잘 받아준다. 그러니 막상 정원이 할 말이 없어졌다. 꿈을 꾸기엔 잘 시간도 부족한
게 현실이기에.
“근데, 인턴도
논문이 있어야 뽑혀서 갈 수 있는 거지. 논문이 있어야 논문을 더 쓸 수 있는, 이런 부익부 빈익빈 같으니라구!”
“뭐에요, 기껏
말해놓고 먼저 그러면.”
보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미국은 됐고, 어디
여행이나 한 번 가고 싶어요. 공기 맑고 가슴 확 트이는 곳으로…….”
정원은 보영은 돕고 싶어졌다. 연구로 돕는 건 이미 망했다. 그러니 이런 거라도 돕고 싶었다. 그렇다고 정말 여행을 가자고 할 사이는 아니고……. 그때, 정원에게 번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우리 천문대 갈래?”
“천문대요?”
“대전 시민 천문대[8]라고
있어. 버스 타면 삼, 사십 분이면 갈 걸? 이왕 여행 가는 김에 우주여행 어때?”
보영이 피곤해하진 않을까?
정원은 걱정했다.
“좋아요. 가보죠, 뭐.”
‘오늘따라, 잘
풀리네.’ 정원은 생각했다. 뭐가 잘 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오솔길을 얼마간 걸어야 했다. 정원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지도앱을 확인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도
측량이라도 하러 나온 사람처럼.
보영은 아랑곳 않고 길을 즐겼다. 대전엔 커다란 공장이 많지 않다. 주로 연구소다. 그래서 공기가 맑은 편이다. 도로변은 매연이 좀 있다. 하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참 괜찮다. 보영은 솔잎 향수를 폐에 가득 머금으려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탁
트인다. 멀리 가지 않아도 맑은 공기도 마시고 가슴도 탁 트이는 곳이 있다니.
반면, 정원은
조금씩 불안해졌다. 올라가는 길에 사람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도 추석 연휴니까 천문대 가는 사람이 몇 명 있을 법한데……. 연휴 마지막 날이라 밤까지는 놀러 안 나오나?
5분쯤 걸었을까. 닫힌 문이 등장했다. 하얀 종이와 빨간 글씨도.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휴관합니다.’
“어? 이런 게
어디 있어! 연휴 기간이면 오히려 더 열어줘야 되는 거 아냐?”
정원은 일종의 굴욕을 느꼈다. 보영은 자기만 믿고 온 건데. 이걸 어쩌나.
보영은 자기가 나설 차례임을 알았다.
“공무원들도 연휴는 즐겨야죠! 우리 천문대에 왔으니 별 좀 볼래요?”
보영은 고개를 한껏 젖혔다.
하늘을 봤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장관이다. 비라도 왔던 것처럼. 보영은 가만히 하늘만
바라봤다.
별이 반짝인다. 보영은
그 반짝임이 자신을 비추는 것 같았다.[9] 세상이란 무대 위, 셀 수 없이 많은 무대 조명들. 저 안 보이는 곳엔 어떤 관객들이
앉아 있을까? 지금의 날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은
잠시 슬픈 대목일 뿐이야. 곧, 막이 바뀌면, 전혀 다른 이야기, 밝은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몰라. 보영은 우주에 잠겼다.
“참, 좋네요.”
보영이 말했다.
“그래, 좋다.”
보영을 따라 하늘만 쳐다보던 정원이 답했다. 그러면서 보영을 슬쩍 봤다. 보영은 여전히 하늘만 보고 있다. 정원도 다시 하늘을 봤다. ‘저 별은 내 별, 저 별은 네 별’ 하는 옛 말이 떠올랐다. 입 밖에 낼 뻔했다. 그래도 이건 말하면 안 된다고 꾹 참았다. 꾹꾹 눌렀다.
“아, 별 하나
갖고 싶다.”
정말 뜬금없다. 보영은
고개를 내려 정원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뭐, 저건 오빠 별 하고, 저건 제 별 하고, 그러게요?”
정원은 뜨끔했지만, 말을
돌렸다.
“별 하나 가지면, 그
별에 있는 땅들 임대해서 월세 받아먹고 살 수 있을 거잖아.”[10]
“에이, 뭐에요.”
“그렇게 월세 받아서 부모님 봉양하고 다 할 수 있으면, 취미로 연구나 설렁설렁 했으면 좋겠다! 실적 걱정도 안 하고 졸업
걱정도 안 하면서 말이야.”
실없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보영은 정원의 말을 되새겨봤다.
“그러게요. 연구
하다 보면 재밌을 때도 많은데, 돼야만 하는 일이 되니까, 부담감만
늘고, 스트레스만 받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 언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데 말이야.”
“그걸 알면, 연구가
아니죠.”
“근데, 그거, 내가 했던 말 아냐?”
“맞아요. 오빠한테
들었던 거예요.”
“오, 기억력
좋은데.”
정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다가
연구가 정 내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싶으면, 연구 잘하는 교수들 데려다가 연구비나 줘야겠어. 난 연구보고서 심사나 하고 말이야.”
“그거, 괜찮네요.”
보영도 계속 고민하던 문제다. 내가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맞는 건지. 내가 연구를 계속해도 될
만한 종류의 사람인지. 직접 할 수 없다면, 그 언저리에서
구경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재밌을 것 같다. 작곡할
능력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도 음악을 즐기지 않는가.
가을 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별만 바라봤다.
“이제 갈까요?”
보영이 먼저 운을 뗐다.
“그래, 그러자.”
정원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하늘에 별이 떠 있었으니까. 막이 내리고 객석 조명이 켜지기 전이니까.
오솔길을 내려오다가, 결국
정원이 말했다.
“학교 근처에서 따뜻한 정종 한 잔 마시고 갈래?”
“아까 먹은 게 아직 배불러서요.”
“그럼, 노래방에서
스트레스 한 번 풀고 가는 거 어때?”
“음…….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아, 그래? 그럼 들어가야지.”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가요.”
기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늦은 밤, 버스엔
자리가 많았다. 둘은 나란히 앉았다. 지하철에서처럼 어깨가
닿았다. 정원도, 보영도 피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렇게 학교까지 왔다.
다음 날 아침, 정원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연구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리드미컬했다.
연구실엔 이미 보영과 정길이 앉아 있다. 문소리를 듣고 정길이 뒤돌아 본다.
“오, 정원아. 웬일로 일찍 왔어?”
“웬일은요, 일찍
올 때도 있어야죠.”
보영도 뒤돌아본다. 어제와는
다른 옷차림이다.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한다. 약간 미소를 짓는 것도 같다. 정원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한껏 미소 지으면서.
정원은 자리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게임을 켜려다가 말았다. 오늘은 연구가 하고 싶었다. 추석
전에 돌려놓은 실험이 죽어 있다. 에러 메시지를 보았다. 아, 바보. 이걸 잘못 썼군. 소스코드를
열어 고친다. 다시 컴파일을 한다. 컴파일이 끝나면 실험을
다시 돌려놓고, 논문을 읽어야겠다. 집에 가져갔다가 결국
다 못 읽고 다시 들고 온 그 논문을.
‘힐링. 그거
꽤 쓸 모 있네.’
정원은 생각했다. 정원을
힐링시켜 준 것이, 맛있는 것인지, 탁 트인 하늘인지, 별빛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 마인드C. <윌유메리미> 119화
“메리의 언니”. 네이버웹툰.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16239&no=120
[2] 인간이 느끼는 맛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1년에 나온 논문에 따르면 지방 분자에 반응하는
‘지방맛’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지방맛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며, 지방맛에 둔감한 사람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해서 비만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관련 기사: 동아일보 디지털 뉴스팀. “인간 혀 ‘지방 맛’도 느낀다”. 동아닷컴뉴스.2012년 1월 16일. - http://news.donga.com/3/all/20120116/43343540/1
관련 논문: Pepino, Marta Yanina, et al. “The fatty acid translocase gene CD36 and lingual lipase influence oral sensitivity to fat in obese subjects.” Journal of lipid research 53.3 (2012): 561-566.
관련 기사: 동아일보 디지털 뉴스팀. “인간 혀 ‘지방 맛’도 느낀다”. 동아닷컴뉴스.2012년 1월 16일. - http://news.donga.com/3/all/20120116/43343540/1
관련 논문: Pepino, Marta Yanina, et al. “The fatty acid translocase gene CD36 and lingual lipase influence oral sensitivity to fat in obese subjects.” Journal of lipid research 53.3 (2012): 561-566.
[4] 봉골레 스파게티: 조개와 조개 육수, 올리브
오일 향으로 맛을 낸 파스타의 일종. ‘봉골레’는 이탈리아어로 ‘조개’를 뜻한다. 참고: 김윤민. “스파게티
봉골레 [쉐프의 파스타 #3]”. 한겨레TV. 2014년 1월 6일. - http://www.hanitv.com/47041
[5] 봉대박 스파게티: 봉골레 스파게티를 주메뉴로 하는 프랜차이즈 이탈리아 음식점. 상호는 “선영이가 가르쳐준 ‘봉’골레 스파게티 ‘대박’날까요?”의
약자(?)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점이다. 하지만 광고비를 받은 적은 없으니 위치나 홈페이지 주소는 생략한다.
[6] 소유와 정기고가 함께 부른 노래인 ‘썸’의 가사 중 일부인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를 패러디한
것이다.
[7] 인텔(Intel):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제조사. 데스크톱이나 서버용으로는 성능으로보나 시장점유율로 보나 세계 최고다. 계속해서 뛰어난 신제품을 발표한다. 그래서 외계인을 데리고 있으며, 그 외계인들을 고문해서 신기술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루머가 있다.
[8] 대전 시민 천문대: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천문대. 일반인들도 누구나 가서 천체 관측을 해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설명도
해주고 행사도 열린다. 개장 시간은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이며, 입장료 및 관람료는 무료다. 단,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신정, 구정 및 추석 연휴 등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http://star.metro.daejeon.kr/
[9] 악동뮤지션의 노래 <작은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님 날 조금만 비춰주세요 이제 어때 좀 봐줄 만은 한가요” 이
가사에서 영감을 얻어 쓴 표현이다.
[10] 보통 ‘별’이라 부르는 것은 ‘항성’을 의미한다. 스스로 타면서 빛을 내는 천체다. 매우 뜨겁다. 따라서 실제로 월세를 받아먹을 만한 땅은 없을 것이다. 거기서 생기는 에너지를 파는 것이면 몰라도.
#19. 샛길
‘아, 좀 쉽게
하는 방법 없나?’
정원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지 벌써 1시간이 지났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정원이 하고 있는 연구 결과를 5%쯤 개선시킬 가능성이 70%는 된다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는 3%쯤 개선시킬 가능성이 30%쯤 되는 아이디어다. 구현을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정원이 실제로 하는 고민은 ‘구현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다. ‘구현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하느냐?’이다.
그런 고민 할 시간에 복잡한 방법을 사용해서 프로그램 한
줄이라도 먼저 쓰는 게 낫지 않느냐고? 공학도답게 생각해보자. 첫째, 복잡한 방법은, 말 그대로 복잡하다. 그것을 구체화시켜서 모두 구현해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간단한
방법은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좀 걸릴 지언정, 전체 구현 시간은 훨씬 짧아질 수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릴 글은 금방 쓰지만, 한시(漢詩)를 쓰려면 옥편부터 찾아야 하지 않는가. 둘째, 나중에 프로그램을 고칠 일이 있을 때도 복잡하다. 라임으로 가득 찬 랩 가사를 개사하는 걸 생각해보라. 셋째, 구현이 복잡하면 설명도 어려워진다. 설명이 어려우면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논문이 안 붙는다. 심사자가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논문을 붙여줄 것 아닌가. 논문이 안 될 거면 구현은 뭐하러 하나. 피시(PC)는 안 쓰지만 스마트폰은 열심히 쓰시는 우리 부모님들을 생각해보라.
물론, 그렇다고
정원이 캔디크러시사가[1] 게임을 하는 게 잘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일할 때 나오지만 아이디어는 놀 때 나온다’[2]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구현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고
있으니 먼저 노는 거다. 놀 거면 차라리 복잡한 방법부터 시도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그러다가 피곤해져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지면 책임질 건가?
그래, 맞다. 하기 싫은 거다. 그저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할까 싶은 거다. 정말 기똥찬 아이디어로 프로그램 몇 줄만 고쳤더니 논문 쓸 정도로 성능 좋아지는 건, 모든 대학원생의 꿈이지 않은가. 아니라고? 적어도 정원은 그렇다.
하트가 다 떨어졌다. 다음
하트가 생길 때까지 20분. 정원은 다른 게임을 켤까, 하다가 문득 뒤에 앉은 보영을 봤다. 뭔가 하고 있다. 노는 건 아니다. 쪽팔렸다. 선배씩이나
되어서 연구실에서 게임이나 하고. 이제 작정하고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생각엔 역시 믹스커피다. 정원은 믹스커피를 타려고 일어섰다.
그 때, 연구실 문이 열렸다. 4주 군사훈련을 받으러 갔던 국현이 돌아왔다.
김국현(박3): 안녕들하셨습니까.
전보영(석2): 어? 오빠! 오셨어요?
김정원(박4): 어이쿠, 오늘은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벌써 나와버렸네?
전보영(석2): 오빤, 국현 오빠가 4주
밖에 안 있다 나오니까 편지 안 쓸 거라면서요.
김정원(박4): 야, 그걸 얘기하면 어떡해!
김국현(박3): 아닙니다, 형님. 형님
말대로 4주 밖에 안 있었는데 무슨 편집니까.
김정원(박4): 그치? 니가 생각해도 그렇지?
김국현(박3): 그렇죠. 어유, 어떻게
이걸 2년이나 해요? 진짜,
저 현역들 존경합니다.
군대가 2년 내내
훈련병 때만큼 힘든 건 아니다. 정원은 이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말았다.
김정원(박4): 그래, 다들 훈련소만 갔다 오면 날 존경하더라고.
전보영(석2): 근데 국현 오빠, 살 빠진 것 같아요.
김국현(박3): 좀 그런 것 같지?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그런가봐.
김정원(박4): 그래, 규칙적인 생활 좋으니까 한 2년쯤 하지 그래?
김국현(박3): 존경하는 형님, 왜 이러십니까?
한바탕 웃었다.
김정원(박4): 어째, 행군 같은 건 잘 했어?
열외 안 하고?
김국현(박3): 전문연구요원들끼리 훈련 받는 거라 그런지 설렁설렁 하더라고요. 군장에도
뭘 거의 넣지를 않던데요.
김정원(박4): 속은 비워도 겉에 야삽은 달지 않아?
김국현(박3): 그쵸. 겉에 드러나는 건 달고,
속에는 박스 넣어서 모양만 내고 막.
전보영(석2): 진짜요? 텔레비전 보면 막 되게 힘들어 하고 그러던데….
김정원(박4): 그런데 나오는 건 진짜로 하는 거지.
김국현(박3): 어우, 그럼 진짜 힘들겠다. 어떻게
견디냐.
김정원(박4): 현역 가서 유격훈련만 가도, 웬만큼 다 넣어야 해. 가져가서 쓸 것들은 가져가야 되니까. 그러고 한 40킬로미터 걸으면 진짜 약간 붕 떠서 가는 느낌이야. 군장에 내가
끌려가는 느낌이랄까.
김국현(박3): 키야, 역시 현역은 다르네요.
정원은 보영의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김정원(박4): 관물대 각 잡을 때 각종이도 썼어?
김국현(박3): 그럼요, 조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던데요.
전보영(석2): 각종이? 그게 뭐에요?
김정원(박4): 관물대에 있는 모든 물건들엔 각을 잡아야 하거든. 근데 이불
같은 건 각 잡기 힘들잖아. 그러니까 그 안에 두꺼운 종이를 넣는 거지. 딱, 각이 잡히게.
전보영(석2): 이불도 각을 잡아요?
김국현(박3): 그치. 그게 군기지.
김정원(박4):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군기인가 싶긴 해. 깔끔한 건 중요할 수
있지만 굳이 각까지 잡아야 하는 건.
정원은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이 뭔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시스템의 한 가운데를 관통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니까. 하지만
보영의 표정은 별 변화가 없다. 에잇.
김국현(박3): 어쨌든 보영아. 편지 써준 거 진짜 고맙다. 엄마말고 편지 써 준 여자는 너밖에 없었어.
전보영(석2): 그냥 인터넷에 글 하나 올린 건데요, 뭘.
김국현(박3): 그래도 그게 여자한테 편지가 오는 거랑 안 오는 거랑 얼마나 다른지 아냐?
그걸로 거의 계급 나뉘는 분위기야.
전보영(석2): 그럼 이왕 쓰는 거 좀 여자친구인 척 써드릴 걸 그랬나요?
김정원(박4): 에이, 뭘 그렇게 써줘. 편지
내용 돌려보고 그러진 않잖아. 그냥 이름만 여자 이름이면 되지, 안
그래?
정원이 이 타이밍에 왜 끼어든 걸까? 어쨌든, 정원은 국현의 동의를 구했다.
김국현(박3): 그거죠. 어떤 사람들은 아는 남자애들한테 그냥 여자 이름으로
글 좀 남겨달라고 그랬대요. 있어 보이려고.
김정원(박4): 하여간, 군인들이란, 끌끌.
김국현(박3): 근데, 형은 이제 예비역 몇 년 남았어요?
김정원(박4): 나? 네 달.
김국현(박3): 대박. 4년도 아니고, 네
달이요?
이때, 보영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
전보영(석2): 아참, 국현 오빠. 전에
한길이가 찾아왔었는데요, 오빠 이번 학기 조교 배정 됐다던데요.
김국현(박3): 한길이면…… 그 때 그 신입생?
연구실에 들어온 지 몇 달 안 되어서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던[3] 그 남학생이다.
전보영(석2): 네, 이메일 확인이 안 돼서 찾아왔다길래 훈련소 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훈련소 다녀와서라도 꼭 좀 연락 달라고 하던데요.
김정원(박4): 너, 군생활만 남은 게 아니라,
조교도 남았냐?
김국현(박3): 안 하고 넘어가나 했는데, 얄쨜 없네요.
꿈꾸는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들은 박사과정 중에 총 네 번의
조교를 해야 한다. 보통은 1~2년차 때 꽉 채워서 한다. 국현도 1~2년차 때 세 번하고 한 번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김국현(박3): 어떤 과목이래?
전보영(석2): 뭐라더라…… 데이터베이스[4]였던 거 같아요.
김국현(박3): 헐. 한길이 연구실 어디로 옮겼죠?
김정원(박4): 김호진 교수님네 아냐? 거기 조교 빡세다던데….
김국현(박3): 아, 망했네. 내용도
한 개도 기억이 안 나는데.
학부 1~2학년들이
주로 듣는 기초과목을 제외하면[5], 조교는 보통 자신의 지도교수의 수업으로 배정된다. 조교도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공식입장일 뿐이다. 아마 교수가 가장 부려먹기 쉬운 대상이
자신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어쨌거나, 수업
담당교수의 학생들로 조교를 모두 채울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연구실 학생들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땐
국현처럼 지도교수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학생이 적임이다.
뭐, 어쩌겠는가. 좋든 싫든 까라면 까야하는 건 군대나 사회나 똑같은데.
국현은 오랜만에 자기 자리에 앉았다. 메일부터 확인했다. 잔뜩 쌓여 있다. 예상대로 한길에게도 메일이 와 있다. 그 중 가장 최근 것을 열었다. ‘목요일에 퇴소하신다면서요, 채점을 좀….’ 프로그래밍 숙제 하나를 채점해달라고 한다. 이번 주말까지. 오늘은 벌써 금요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숙제 내용부터 확인했다. 학기 초라 그런지 간단한 것이다. 다행이다.
근데 모니터가 약간 뿌연 것 같다. 곽휴지 한 장을 뽑아 스윽 문질렀다. 먼지가 묻어나온다. 그럴 만도 하다. 한 달 동안 가만히 놔뒀으니. 그렇다고 한 달 전에 청소를 했던 것도 아니니까. 휴지를 몇 장
더 뽑았다. 여기 저기 닦았다. 지난 한 달이 아련하다. 진짜로 다녀온 게 맞나? 상상훈련[6]만
했던 것 같다.
구석구석 닦은 뒤에야,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하나하나 다운로드 받기 시작했다. 간만에, 머리
좀 굴려볼까.
정원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아니, 고민을 빙자해서 놀고 있었다. 정원의 졸업이 두 시간쯤 더 늦어졌을 때, 보영이 다가왔다.
전보영(석2): 오빠, 바쁘세요?
다행이다. 모니터엔
소스코드와 논문이 떠 있다. 정원은 핸드폰으로 놀고 있었다.
정원은 바쁘다고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졸업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이미 박사 4년차다. 그러니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바쁘다. 바빠야 정상이다. 하지만 당장 하고 있는 일은 없다. 그러니 안 바쁘다. 그렇다고 안 바쁘다고 말하기엔, 연구를 안 하고 있다는 걸 들키는 거니까 좀 쪽팔리고….
정원은 그냥 대답을 회피하기로 했다.
김정원(박4): 무슨 일인데?
전보영(석2): 제가 씨피유(CPU) 스케줄러 쪽을 좀 바꾸려고 하는데요, 제가 운영체제를 고쳐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더니 오빠에게 물어보라던데요.
김정원(박4): 음, 너 디펜스 얼마나 남았지?
전보영(석2): 12월에 할 거니까, 세 달쯤이요?[7]
김정원(박4): 근데 운영체제는 한 번도 고쳐본 적이 없고?
전보영(석2): 네.
김정원(박4): 운영체제란 게, 한 줄만 고쳐도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지금 와서 그걸 배워서 건드리는 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근데
너 구현하려는 게 뭐야?
전보영(석2): 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럼
어떡하죠….
김정원(박4): 일단 니가 하려는 걸 말해봐.
보영은 자신의 연구 주제를 말했다.
김정원(박4): 음, 그런 거면 말이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운영체제에서 보면 스케줄러에서 몇 가지 기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system call[8]을 제공하거든? 그러니까 운영체제를 수정하지
말고, 1초에 한 번씩 동작하면서 스케줄러 설정만 바꿔주는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정원은 연습장을 집어다가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보영이 하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다.
전보영(석2): 근데, 이렇게 해도 돼요? 스케줄러
연구인데 스케줄러 안 고치고도요?
김정원(박4): 아까도 말했지만 운영체제 직접 고치려면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잖아.
그래서 이렇게들 많이 해. 왜, 가끔 논문보다
보면 user level scheduler[8]라고 나온 것 있지? 그게
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전보영(석2): 그렇게 많이들 한다고요? 좀 편법 같은데….
김정원(박4): 논문을 위해 구현하는 건, 그냥 아이디어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
거란 것만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이렇게 구현하면 효율은 좀 떨어져. 아주아주 약간이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능이 좋아지면, 니가 생각한 기법이 효과가 있다는 더 확실해지는 거지.
보영은 여전히 못 받아들이는 눈치다. 어떻게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김정원(박4): 음,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말했듯이 운영체제 고치는 건 노력이 많이 들어. 그러니까
내가 말한 대로 먼저 구현해보자. 그렇게 해서 효과가 있는 게 입증이 되면 그 때 운영체제를 고쳐보는
거야. 그래도 괜찮을 것 같지?
전보영(석2): 네.
김정원(박4): 그리고 혹시나 운영체제까지는 못 고치더라도, 이대로만 해도 석사
졸업까지는 문제없을 테니까. 일단 이렇게 해봐.
전보영(석2): 그럴게요. 고마워요, 오빠.
김정원(박4): 뭐, 구현하다가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나 이거 비슷한 것도 해본 적 있으니까.
전보영(석2): 아, 진짜요? 그럼
많이 물어봐야겠네요.
교수님이 정원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도, 이런 말을 기대한 것 아니었을까? 정원도 예전에 보영처럼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그 때 교수님이 그랬었다. “연구를 하는 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그 땅에서 집 짓고 사는 게 아니다.
하룻밤 생존할 곳을 찾으면 충분하다. 어서 다음 장소로 떠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너무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하지 마라. 그건 회사에서 상용화할
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 말을 그대로 전해줄 걸 그랬다. 하지만 보영은 이미 자리로 돌아간 뒤였다. 정원은 자신의 탐험에
대해 생각했다. 하라는 탐험은 안 하고 나침반만 쳐다보고 있는 자신을 생각했다. 역시, 그냥 복잡하게라도 구현을 해보는 게 나으려나….
김국현(박3): 잡았다! 요놈들!
김정원(박4): 응? 뭐야, 뭐야.
김국현(박3): 아니, 베끼는 데도 예의가 있지. 어떻게 변수 이름 하나 안 바꾸냐.
변수 이름이란 소설로 치면 등장인물의 이름 같은 것이다.
김정원(박4): 그래? 진짜 예의가 없네. 근데
너 그거 어떻게 잡아냈어?
김국현(박3): 실행만 시켜보고 채점하려고 했는데, 그냥 예의상 학생들 코드
한 번씩 열어보긴 해야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눈으로 한 번 스윽 보고 그러고 있는데, 자꾸 데자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은 내용 있는 것만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거든요. 근데 진짜 여기저기서 함수 하나씩 통째로 복사해다가 갖다 붙인 놈이
있네요.
‘함수’란 소설로 치면 제
1장, 제 2장 할 때의 ‘장’ 같은 것이다.
김정원(박4): 이야, 그 귀찮은 걸 또 했네.
어느덧 보영도 곁에 왔다.
전보영(석2): 그걸 또 언제 만들었어요?
김국현(박3): 아니 그냥, 컴퓨터도 오랜만에 만지는 거고 하니까, 감도 좀 회복할 겸 간단하게 하나 만들어봤어. 진짜 진짜 간단하게. 나 진짜, 이 프로그램 가지고 걸리는 게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전보영(석2): 근데, 꿈꾸는 대학교 학생들도 치팅 많이 해요?
김정원(박4): 많이 해. 전에 어떤 교수님이 마음먹고 치팅 잡는 프로그램 한
번 돌렸다가, 너무 많이 걸려서 난감했다고 들었어. 결국
숙제를 다시 해서 제출하는 수준으로 덮었다나.
김국현(박3): 그쵸. 근데 보통은 귀찮으니까 안 잡죠.
전보영(석2): 전, 여기 애들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똑똑한 애들이 왜….
김정원(박4): 자기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나보지. 뛰는
학부생 위에 나는 조교들이 있다는 걸 애들이 알아야 하는데.
전보영(석2): 근데 치팅하면 결국 자기 손해 아니에요? 자기가 배울 걸 다
못 배우는 거고, 자기가 한 것에 대해 피드백 받아볼 기회도 놓치는 건데.
김국현(박3): 어쨌거나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김정원(박4): 하도 많이들 하니까 별 죄책감도 못 느끼는 거 같아.
셋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정원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찾으려는 간단한 방법은, 탐험을 빠르게 하기 위한 지혜일까, 아니면 치팅처럼 눈속임을 하기 위한 꼼수일까?
고민이 생길 때는, 캔디크러시사가가
제격이다. 정원은 중독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게임을 켰다. 어느덧 레벨1000이다. 한두
번의 도전으로 깬 레벨도 많지만, 레벨 하나 깨는데 일, 이
주씩 걸린 적도 있다. 대체 얼마나 많이 한 건지, 이젠
가늠도 안 된다. 레벨1000도 4일째 하는 것 같다. 쉽지 않다.
어어어? 깼다. 드디어 레벨1000을 깨다니. 정원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가까스로 참았다. 뿌듯했다. 대견했다. 정원은 캔디크러시사가 게임을 할 때 아이템을 쓰지 않는다. 아이템을 써서 깨면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다. 게임 개발자에게 굴복하는
느낌이다. 정해진 목표를 정도(正道)만을 걸어 이루고 싶었다. 어쨌거나,
드디어 레벨1000이라니. 정원은 기뻤다.
하지만 이내 허무해졌다. 게임
잘해 뭐하나 싶어서. 게임하듯 연구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정도(正道)만 걸어 이룬 레벨1000과
샛길만 찾고 있는 연구가 너무 대비돼서.
정원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구현 방법이 복잡하든 간단하든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고민이 생길 땐? 캔디크러시사가다. 레벨1001이다.
[1] 캔디크러쉬사가: 퍼즐 게임이다. 화면에
캔디들이 가득 나오고, 색색의 캔디를 3개 이상 연결하면
캔디가 터지게 된다. 제한 횟수 (혹은 시간) 내에서 각 판의 목표(일정 이상의 점수 획득, 화면 속의 젤리들을 모두 없애기, 특정 아이템을 제일 아래까지 내려오게
만들기)를 달성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애니팡2’가 이 게임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유사하다.
[2] ‘결과는 일할 때 나오지만 아이디어는 놀 때 나온다.’ 김창대(1985~)
[4] 데이터베이스(Data Base): 컴퓨터에 형식이 있는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아주 큰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엑셀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 정보를 관리하거나 게시판에 올라가는 내용을 저장하는데 데이터베이스를 쓴다. 그러니 모든 누리꾼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매우 큰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연구되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하드웨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5] 소설 속 시간 상의 봄학기 때 정원이 프로그래밍 기초과목 조교를 했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5. 시간 관리 - http://scienceon.hani.co.kr/165776
[6]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것처럼, 상상훈련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정철상. “올드보이 오대수의 상상훈련을 꿈에 접목하라!“ 오마이뉴스. 2009년 7월 1일.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68078
- 이규창, 이석민. 운동 상상 훈련이 뇌졸중 환자의 균형에 미치는 영향.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제49권 제1호. 2010.3. 113-131. (19 pages)
[7] 이번 화의 시간적 배경은 9월 말입니다.
[8] 평생 모르고 살아도 되는 말입니다. 제대로 읽지 마시라고 영어 단어로 써놓았습니다.
#20. 중간
“여기가 김국현 조교님 연구실인가요?”
한 학생이 연구실 문을 빼꼼 열고 머뭇거린다.
“성기완 학생인가요? 여기
와서 앉으세요.”
국현은 옆에 갖다 둔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학생을 힐끗 봤다. 성기완. 다른 학생 세 명의 숙제를 조립해서 제출한 학생이다. 과목 담당 교수님께 알렸더니, 학생을 먼저 만나보라고 해서 불렀다.
김국현(박3): 메일은 읽어보셨죠? 그러면 숙제를 어떻게 하셨는지 먼저 얘기해보시죠.
프로그램을 만드는 숙제에서 치팅을 잡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을 수 십 명이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똑같은 강의를 듣고 똑같은 조교에게 힌트를 얻는다. 그러니 오히려 수업을 열심히 들은 사람들일수록 더 비슷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슷하다고 해서 베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베낀 것처럼 보여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다. 헌법에 규정된 무죄추정의 원칙[1]을 무시할 수도
없거니와, 영장도 없이 숙제하는 현장을 급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2]
하지만 이번 경우는 확실했다. 함수[3] 단위로 아주 똑같이 베꼈다. 국현은 후딱 자백만 받고 학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자기가 혼낸다고 귀담아 들을 것도 아닐 테고, 처벌 수준은 어차피
교수님이 정하실 테니까.
성기완(학부생): 저는 일단 왜 제가 치팅을 했다고 의심하시는 건지 그 이유부터 듣고 싶은 데요. 메일 받고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거든요.
학생이 세게 나왔다. 국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안타까웠다. 첫째, 연기가 과하다. 정말
안 베낀 학생들은 처음부터 세게 나오지 않는다. 둘째, 연기로
무마시킬 수준이 아니다. 베낀 것이 너무도, 너무도 확실하다. 이런 수준으로 베껴놓고 이렇게 나오다니.
김국현(박3): 김도형, 이찬규, 한세진. 이 세 학생 알죠?
성기완(학부생): 네? 누구요?
와. 연기라기엔 너무 자연스러웠다. 숙제를
베껴놓고 저렇게 모르는 척을 잘 하다니. 국현은 감탄했다.
김국현(박3): 김도형, 이찬규, 한세진. 이렇게 세 명이요.
성기완(학부생): 아, 세진이는 알긴 알아요. 나머지는
이름은 좀 들어본 것 같은데, 모르겠네요.
하긴, 같은 과 학생일 테니 이름은 들어봤겠지.
국현은 세밀한 연기에 탄복했다. 그리고 모든 취조가 귀찮아졌다. 본론으로 넘어갔다.
김국현(박3): 그래요, 성기완 학생의 숙제가,
이 세 명의 숙제를 베낀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모르겠다고요?
성기완(학부생): 아니, 숙제를 하다 보면 좀 비슷해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런 변명을 하려면, 변수명[4] 정도는 바꾸는 성의를 보였어야지. 정말 맷돌에 어이가 없고[5] 화장실에 휴지가 없고 카페에
와이파이가 없는 판국이다.
국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말없이 모니터에 성기완, 김도현, 이찬규, 한세진
학생의 숙제를 띄웠다.
김국현(박3): 그렇죠. 똑같은 숙제를 하다 보면 비슷해질 수도 있죠. 직접 보세요. 이게 비슷한 수준이냐고요.
학생은 모니터를 대충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성기완(학부생): 좀 비슷하긴 하네요. 변수 이름도 똑같고. 그런데 그렇다고 베꼈다고 단정지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우연히
같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국현은 방금 학생의 행동을 찍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찍어서 표창원 교수[6]에게 보내면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해줄 것이다. “학생의 행동을
보면 지금,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리고 있거든요.
모니터에 뭐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학생의 코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죠. 이것만으로도 이미 치팅입니다.”
김국현(박3): 이렇게 똑같은데 우연히 같아진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성기완(학부생): 정말 그렇게 베꼈다고 이미 단정 지었으면 왜 절 여기까지 부르셨어요? 전
이미 단정 짓고 시작하는 그게 기분 나쁘다고요.
사실 국현은 학생의 자백이 필요하다. 학생의 말마따나, 정말 만에 하나, 아니 수십억 분에 일의 확률로 똑같은 숙제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숙제를 베끼는 현장을 적발하지 않는 이상 조교가 가진 것은 심증에 불과하다. 물증일 수 없다. 물론 교수님은 정황적 증거만으로도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판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조교는
그럴 수 없다.
국현은 자기가 화가 나고 있는 게 싫었다. 뭐하러 치팅을 적발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그냥 이쯤에서 접을까 했다. 학생의 말을 그대로
교수님께 전달하면, 교수가 알아서 하겠지 뭐.
그 때, 정원이 다가왔다.
김정원(박4): 뭐가 어떻게 비슷하길래 그러는 거야? 저도 같이 좀 봐도 될까요?
정원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체했다.
성기완(학부생): 아니, 물론 제가 봐도 좀 비슷하긴 한데요, 그렇다고 베낀 걸로 단정 지어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영악한 척하지만 여지없이 순진한 성기완 학생. 정원이 자기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가.
김정원(박4): 그렇죠, 그렇죠.
정원은 학생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대답했다. 그리고 모니터를 봤다. 왼쪽엔 성기완 학생의 숙제가, 오른쪽엔 다른 세 학생의 숙제 중
성기완 학생의 숙제와 같은 부분들이 띄워져 있었다. 국현이가 완벽하게 세팅해 놓았다. 정원은 찬찬히 숙제를 비교했다. 여지없이 똑같다. 하지만 같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시나. 찾았다. 정원은 미소를 지었다.
김정원(박4): 자, 여기 보실까요? 이
부분에서 보면, 조건문[7] 다음에 꼭 한 칸을 띄우고 괄호를 열어요. 괄호를 연 다음에는 바로 붙여서 다음
글자를 쓰고요. 여기 조건문들이 주우욱 나오죠, 그러다가
딱 여기 한 군데서만 조건문 다음에 바로 붙여서 괄호를 쓰고, 한 칸 띈 다음에 다음 글자를 쓰네요. 그런데 학생 것에도 똑같은 부분에서만 띄어쓰기가 똑같이 달라져요. 이게
일치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학생은 당황했고, 국현은 감탄했다.
김정원(박4): 국현아, 마우스 좀 줘볼래?
정원은 마우스를 가져다가 다른 학생들의 숙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김정원(박4): 원래 반복문[8]에 대한 변수명[4]을 짓는 데는 사람마다 습관이 있게 마련이에요. 그쵸?
정원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학생을 쳐다보았다. 학생은 당황한 티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김정원(박4): 제 말이 틀려요? 맞죠?
성기완(학부생): 아, 네, 네.
김정원(박4): 물론, i, j, k를 제일 많이 쓰죠. 하지만 누구는 x, y, z를 쓰고, 누구는 a, b, c를 쓰기도 해요. 그런데 학생은 i, j, k를 주로 쓰는 것 같은데, 조금 전에 봤던 그 부분에서만 x, y, z를 쓰네요? 그렇죠?
정원은 다시 한 번 따뜻한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성기완(학부생): 네, 네….
김정원(박4): 그런데 x, y, z는 띄어쓰기가 완벽히 일치했던 바로 이 학생이
주로 쓰는 변수명이네요. 이 학생의 다른 함수들을 보세요. 제
말이 맞죠?
성기완(학부생): 네….
김정원(박4): 이게 이런 식으로 일치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학생은 정말 확률을 계산해보고 있기라도 하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입을 뗐다.
성기완(학부생): 솔직히 제가 세진이 꺼 베낀 건 인정할게요. 그렇지만 다른 건
아니에요.
이건 또 뭔가? 감형이라도 받겠다는 건가? 국현은
상상 외의 반응에 기가 막혀서 고혈압이 올 지경이었다. 국현이 흥분해서 말도 안 나오는 사이, 정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김정원(박4): 저기요, 잘 모르시나본데, 저희가
적당히 비슷해 보인다고 이렇게 학생 불러다가 물어보고 이렇게 안 해요. 학생은요, 정말 글자 하나, 띄어쓰기 하나 안 다르고 다 똑같은 거 확인했어요. 이미 프로그램 만들어서 다 돌려봤다고요. 적당히 합시다.
학생은 여기가 화장실이라면 당장 바지부터 내리고 변기로 달려갈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성기완(학부생): 아니, 저기요, 제가
사실 지지난 주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요, 장례식을 치르느라 수업도 다 빠지고 숙제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좀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한 번 반전. 정원이 머뭇거리는 사이, 국현이 다시 끼어들었다.
김국현(박3): 그런 일이 있었으면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서 숙제를 좀 늦게 내도되겠냐고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치팅을 하냐구요?
성기완(학부생): 그럼,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거예요?
김국현(박3): 원칙상으로는 숙제 보여준 사람과 베낀 사람 양쪽 다 F 받아야죠. 최종 판단은 교수님이 하시겠지만.
성기완(학부생): 아니, 저기 정말, 다
제가 베낀 거거든요. 그 애들은 잘못이 없어요. 네? 그러니까 저만 처벌 받는 걸로 해주세요.
김국현(박3): 뻔히 증거가 다 있는데 뭐가 학생만의 잘못이에요? 어차피 판단은
교수님께서 하실 겁니다. 누가 어떤 벌을 받을지는 교수님과 얘기해보세요. 이만 가보시죠.
성기완(학부생): 아니, 조교님, 교수님께
잘 좀 봐달라고 부탁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 게요. 제발요.
학생은 거의 울먹거릴 태세였다.
아직도 남은 반전이 있었다니. 국현과 정원은 혀를 내둘렀다. 너무 많은 반전이 계속되다 못해 세계평화라도 찾아와버린 듯 했다. 국현과
정원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애걸복걸하는 학생을 바라만 보았다.
학생의 소리가 약간 지겨워질 찰나, 아까부터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줄 알았던
보영이 다가왔다.
전보영(석2): 아니 지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까 그렇게 아니라고 우겼으면서
선처는 무슨 선처에요. 사람이 양심이 없을 거면 염치라도 있어야지. 여기
연구실이에요. 연구하는 데 방해되니까 빨리 나가세요!
보영의 소리는 컸다. 학생은 흠칫 놀란 듯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슬금슬금 나갔다.
놀란 건 국현과 정원도 마찬가지였다. 보영이 큰 소리 내는 건 처음 들어봤다.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김국현(박3): 보영아, 고맙다. 네
덕에 얘가 갔네.
전보영(석2): 야, 진짜 어떻게 이런 학생이 다 있어요?
김정원(박4): 조교 하다 보면 진짜 별 애들 다 있어. 물론, 요번 애는 좀 센 편이긴 했지만.
김국현(박3): 근데 형, 아까 진짜 멋졌어요.
그렇게 따박따박 설명하는 그 모습 진짜.
전보영(석2): 맞아요. 차마 뒤돌아보진 못했지만, 진짜 좀 대단했어요.
김정원(박4): 화룡점정은 보영이 너지. 너의 그 화려한 마무리가 아니었으면
아직까지 상황 종료가 안 됐을 걸?
김국현(박3): 진짜, 우리 한 팀 같지 않았어요?
전보영(석2): 맞아요. 와, 진짜.
감독이 나와 “컷!”을 외치면 딱 좋을 타이밍이다. 모든 제작진이 함께 박수치고 다음 장면을 찍으러 가면 좋을 바로 이 순간. 이
순간이 현실에서는 가장 민망한 순간이다. 이야기를 이어 가기엔 좀 민망하고, 다음 주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이 순간. 다시 한 번 보영이 상황을
해결했다.
전보영(석2): 근데 정원 오빠, 교수님 메일이 왔는데요.
김정원(박4): 아, 그래? 뭐라셔?
국현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전보영(석2): 그게… 교수님이….
김정원(박4): 뭔데? 말해봐.
전보영(석2): 구현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씀드렸었거든요, 그랬더니 구현을
왜 그렇게 하냐면서, 일단 알고리즘을 빨리 만들라고...
김정원(박4): 그래? 음, 메일을
보여줘.
혹시나, 보영이 교수님 메일의 뉘앙스를 잘못 읽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직접 보겠다고 한 것이다. 정원은 보영의 자리로 같이 갔다. 보영이 보낸 메일부터 봤다. 구구절절했다. 아마 대충 읽어 넘겼을 것 같은 길이였다. 답장도 봤다.
구현 방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왜 그렇게 하는 거지?
알고리즘[9]부터
만들어야 할 듯. 기계학습(Machine Learning)[10]을
적용해도 좋고.
권대성
역시. 웬만하면 두 줄을 넘지 않는 교수님의 메일.
김정원(박4): 음… 이게 무슨 뜻일까….
정원은 군 시절이 생각났다. 가끔 사단장이 들러 몇 마디를 하고 갈 때가 있었다. 사단장이 가고나면 대대장, 중대장,
행정관이 회의를 시작했다. 그 몇 마디의 배경과 진의를 알아내려고 머리를 맞댔다. 그냥 쫓아가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될 것을, 꼭 자기들끼리 쩔쩔맸다. 회의를 하고 나면 형식적인 인사말이 군 기강에 대한 엄중한 지적으로 바뀌고,
날씨에 대한 회고가 철저한 제설 작업 강조로 바뀌었다. 사단장이 무슨 의도로 말했는지는
영원히 아무도 몰랐다. 병사들만 영원히 고통 받았다.
정원은 자기도 그럴까봐 겁났다. 구현을 왜 그렇게 하냐는 건, 다른 방식을 찾아보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른 방식이라면 운영체제를
고치는 것일 테고, 그러면 일이 너무 커진다. 물론 확대해석일
수도 있다. 단순한 물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축소해석 해도
문제다. 교수님이 시키는 건 다 해야 졸업이 가능할 테니까. 잘못
해석하고 다른 일을 하다간 졸업이 늦어지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영이 정원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두 줄짜리 메일만 보낸다. 하지만 정원과는 두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정원에게 제 3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김정원(박4): 그래, 교수님은 연구할 때 주로 시뮬레이터(simulator)[11]를 사용하셔서 그러실 수도 있어. 네가 지금
한 걸 시뮬레이터에서 구현하자면 괜히 복잡하고 이상한 것이 되니까 말이야. 그런데 또 스케줄러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아무래도 시뮬레이터보다는 컴퓨터로 직접 돌리는 게 나아. 시뮬레이터로는 아주 짧은 시간에
대한 실험 밖에 못 하니까. 일단 나중에 교수님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고,
자신의 말을 보영이 잘 알아들었을까? 정원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말했다.
김정원(박4): 교수님 말씀대로 알고리즘 먼저 생각해봐. 순서도를 그려도 좋은데, 교수님 말씀처럼 기계학습 기법도 생각해봐. 그게 좀 있어 보이긴
하거든. 근데, 너 기계학습 수업은 들었니?
전보영(석2): 작년에 들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쨌든 고민해볼게요.
정원의 고민도 시작됐다. 어디까지 도와줘도 되는 걸까? 분명 보영의 졸업이다. 보영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보영은 연구란 걸 접한 지 이제 2년째이지 않은가. 석사과정이란 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정원도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원이 돕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잘못된 방향, 그러니까 교수님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도와줬다간 보영만 곤란해질 수 있다.
그래도 정원이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 도움이 되긴 되지 않을까?
김정원(박4): 알고리즘, 지금 같이 고민해볼래? 같이 브레인스토밍 좀 하면 뭐가 좀 나오지 않을까?
정원이 이 바닥에서 구른 지도 벌써 6년. 석사
졸업에 필요한 수준의 알고리즘은 대충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틀 뒤, 국현이 갑자기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IC)를 찾았다.
김국현(박3): 아이씨!
김정원(박4): 왜 그래?
김국현(박3): 며칠 전에 왔던 치팅한 학생 있잖아요.
김정원(박4): 응,
김국현(박3): 교수님이 그냥 이번 숙제만 0점 주고 넘어가래요. 이러면 베낄 순 없어서 아예 안 낸 애들이랑 똑같잖아요. 그럼 다들
베껴서라도 내보지, 뭐하러 양심을 지켜요.
김정원(박4): 헐. 진짜? 그럼
그 보여준 애들은?
김국현(박3): 얘가, 자기가 친구들 소스코드 훔쳤다고 했나 봐요. 직접 보여준 게 아니라고 그냥 놔두래요.
김정원(박4): 그 애 말을 다 믿으시는 거야? 교수님은?
김국현(박3): 제 말이요! 애써서 치팅을 잡아내면 뭐해요. 학생들이 무슨 재벌들도 아니고. 이렇게 다 봐주고 그러니까 애들이
계속 베끼기나 하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불만을 가지면 뭐하나. 국현은 조교다.
학생들의 귀찮은 질문과 교수의 귀찮은 일거리만이 조교의 몫이다. 모든 권한은 교수에게 있다.
왜 괜히 중간에 끼어들었을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국현은 이번엔 교류전류(AC: an Alternating Current)를
찾았다.
이 때, 보영이 들어왔다. 교수님을 만나고 온 것이다.
전보영(석2): 정원 오빠, 교수님이 시뮬레이터 쓰는 게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김정원(박4): 뭐? 스케줄러 연구하는데 시뮬레이터를 쓴다고?
전보영(석2): 시간도 많지 않으니까, 운영체제 고쳐서 시간 걸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김정원(박4): 지난 번에 내가 얘기했던 건, 말씀드려봤어?
전보영(석2): 오빠가 실제 하드웨어에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도 시간 없으니까 시뮬레이터로 먼저 하자고….
김정원(박4): 이제 와서 시뮬레이터 설치하고 설정하면 그게 더 시간 걸릴 수도 있는데.
전보영(석2): 그러니까 오빠한테 예전에 설정해 놓은 것 좀 받아서 하라고….
과연 보영이는 교수님께 잘 말씀드린 걸까? 정원은 직접 교수님을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보영이의 졸업연구다. 정원이 직접 나서기도 좀 그랬다.
김정원(박4): 그럼 알고리즘은? 그거 가지고는 별 말 없으셔?
전보영(석2): 그것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버전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김정원(박4): 결국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정원 나름대로 도와준 것이 쓸모없어지는 상황이다. 보영의 이틀만 날렸다. 어차피 교수님이 지도하는 대로 논문이 만들어질
테니까.
왜 괜히 중간에 끼어들었을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그리고, 왜 괜히 박사과정에 끼어들었을까? 가만히
있으면 평범한 계약직은 됐을 것을.
[1]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2] 대한민국 헌법 제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3] 함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한 단위. 수학에서의
함수 f(x)처럼, 어떤 값을 넘겨주면 그걸 처리해서 결과
값을 돌려준다. 소설로 치면 문단 혹은 단락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4] 변수명: 프로그램을 만들 때 어떤 의미의 값을 저장하기 위해, 그 값에 지어주는 별명. 별명만 유지한 채로 별명에 해당하는 값을
변화시켜 가며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변할 수 있는 수’라는 의미로 ‘변수’라고 한다. 소설로 치면 등장인물 이름과 같다.
[5] 어이가 없다: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 걸로 유명하다.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그걸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지면…. 근데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하지만 실제로 ‘어이’가 맷돌 손잡이라는 것은 별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의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 또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영화는 역시 허구다.
- 김주동 기자. “베테랑 유아인 "어이가 없네"의 몇가지 설”. 머니투데이. 2015년 9월 29일.
-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어이/어처구니” 2015년 11월 3일.
[6] 표창원 교수: 범죄심리학자. 경찰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역할로 많이 나왔다.
[7] 조건문: 프로그램을 만들 때 사용하는 문법의 하나.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아래 내용을 수행하시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if (a > 10) { do
something } 과 같이 쓴다. 이때 ‘if’라는
단어와 다음의 괄호(조건을 기술한) 사이에는 띄어쓰기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8] 반복문: 프로그램을 만들 때 사용하는 문법의 하나. “특정 조건이 만족하는 동안 기술한 내용을 반복해서 수행하시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while (i < 10) {
do something } 과 같이 쓴다. 이 때 ‘몇 번 반복할 것인지’에 해당하는 변수명은 i, j, k 같은 것을 많이 쓴다.
[9] 알고리즘(algorithm):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순서대로 기술해 놓은 것. 가장 유명한 알고리즘으로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10]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계를 학습시켜서 더 좋은 결과를
뽑아내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특히 쇼핑몰, 영화 사이트 등에서
사용자에게 구매할 것을 추천할 때 많이 쓰인다. 사용자가 어떤 물건들을 사는지 구매패턴을 기계학습을
통해 파악한 뒤, 비슷한 구매패턴을 가지는 다른 사용자들이 구매한 물건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Big Data)’도 큰 규모의 데이터에
기계학습을 적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11] 시뮬레이터(simulator): 실제 동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 혹은 기계. 중앙처리장치(CPU)는 실제로 반도체로 만들어서 테스트하기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따라서 중앙처리장치(CPU)의 동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새로운 기능 혹은 구조를 추가해 테스트해보며 연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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