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종종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교수" 라는 직업에 대하여 매우 낭만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곤 한다. 즉 그들의 교수에 대한 표상은 "자유인" 이다.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고, 긴 방학이 있고, 3년마다
한 학기씩 "안식학기" 가 있다. 그리고 "보스
(boss)" 가 실제로는 없는 자기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인" 이라는 이미지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학생의 "낭만적 환상" 을 깨어 주어야
하나, 아니면 스스로 터득할 때 까지 그저 그 환상을 즐기도록 놓아두어야 하나, 미소 지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 학생의 '대학교수'에 대한 이미지는, 여타의 "낭만주의화"된 이해가 그렇듯이, 반쪽 (밝은 면) 은
맞지만, 그 나머지 반쪽 (매우 복합적인, 어두울 수도 있는 면) 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거꾸로 이야기 하면, 직업인으로서의 교수는 출퇴근 시간도 "없이," 진정한 방학도 "없이," 안식도 "없이"
일상생활에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보스"가
되어 살아야 하는, 즉 엄격한 자기훈련과 책임성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대학교수일을
하게 된다 해도 스스로 괴롭고, 동시에 "아카데미" 라고 불리 우는 세계 안에서, 제도적인 생존은 물론, 자기 일에 대한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매 학기 보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3. 이제 많은 대학들은 "안식학기 (sabbatical leave)"라는
용어대신 "연구학기(research leave)"라는
말을 쓴다. 미국에서는 이 "안식 (sabbatical)"이라는 용어가 유대-기독교라는 특정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것이기에 우선적으로 이 종교적 색채를 지우려는 의미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연구" 를 위해 한 학기 학교의 다양한 업무들로부터
떠나 있다는 분명한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학기"가 아닌 "연구학기"가 끝나면, 대학에 따라 물론 다르지만,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는 자신의 연구물을 제출하고, 발표해야 한다.
4. 주말이나, 방학의 개념은 주중이나 학기 중에 끝내지 못한 이런 저런 "마감일" 들과 씨름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며, 또한 새로운 연구주제들을
찾아내고, 그 주제들에 관한 리서치와 독서, 그리고 쓰기
작업을 하는 시간이다. 이 미국에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종종 인간의 상호연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신의 삶의 철학에 反하여, 철저히
타자들로부터 그리고 종종 자신 스스로부터도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삶의 양식 속에 놓여져 있다는 아이러니를 나는 간혹 느끼곤 한다. 다른 동료들과의 교제를 위해서, 또는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교수들은 서로 알기에, 교수들끼리
"일상적인" 식사 자리는 좀처럼 만들지 않는다. 학교 연구실에 일을 하러 와도, 또는 점심시간과 겹치는 회의가 있어도
학교에서 샌드위치를 주지 않는 한, 늘 각자의 점심을 가지고 와서 먹는 것이 교수들의 '일상 생활' 이다.
5. 직업으로서의 "교수" 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밝은 면, 어두운
면'을 담은 전체 그림을 모두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라는 신념이 생길 때에만 그 길고 험난한 여정을 출발하면 좋겠다.
6. 대학교수란 "교수" 란 개념이 지칭하듯 가르치는 일 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만
가지고 직업으로서의 "교수"의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르치는 일과 동시에 "학자" 로서의 또 다른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
학자로서의 삶의 방식은 "박사" 또는 "교수" 라는 직업으로서의 타이틀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자기와의 씨름, 철저한 책임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느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앎/글쓰기에의 지속적인 열정과 에너지--이 모든 것들을
자신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신의 보스가 된다는 것--굉장한 자유이면서 엄격한 책임성과 의무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 들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7. 나의 대학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이 교수들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곤 하는 것은 "선생-학자 (teacher-scholar)"이다. 동일한 것 같지만,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자세가 요청되는 두 세계인
것이다. "선생" 일을 잘하는 반면 "학자" 일을 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또한 두 가지 다 비교적 "성공적" 으로 하든가 또는 매우 힘들어 하며 해 내는 교수들이 있다.
"선생" 과 "학자"라는 이 두 양태의 세계는 각기 다른 책임과 열정을 필요로 하기에, 일생을
거쳐서 스스로를 훈련하고 그 일들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다른 여타의 직업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교수" 란 평생 "되어가는 것" 일 뿐, "이제는 되었다"는 완성된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어느 학생의 긴 이메일을 받고서, 내가 쓴
회신의 내용이다. 그 학생이 나의 회신을 읽고나서 자신의 꿈을 변경할 지, 아니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보다 더욱 진지하고 절실한 과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매진할 것인지, 그러한 방향 선택은 그의 삶의 몫이며 자신만이 결단하고 책임질 수 있을 뿐이다. 선생으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아
주고, 필요할 때 같이 잠시라도 동반하여 걸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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