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세 시
자퇴원을 다운로드 받았다. “자퇴원 (1).hwp”로 저장된다. 아, 전에
받아둔 걸 지우지 않았구나. ‘무한도전’들과 ‘진짜사나이’들 사이에 자퇴원이 끼어 있었다. 파일을 바라만 보다가, 다시 보고 있던 ‘마녀사냥’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출연자들이 히히덕거린다. 웃기네, 생각하지만 얼굴 근육은 움직이지 않는다.
새벽 세 시다. 다들 퇴근했다.
조금 전까지 한 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자정을
넘기고 나면 늘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한동안 보지 않고 있던 ‘마녀사냥’을 다시 틀었던 게 실수였을까. 벌써
세 편째네. 이것만 보면 가장 최근 것까지 다 보는 것이다. 예능을
좀 줄이려고 ‘마녀사냥’부터 끊었는데, 포기해야 하나.
차라리 아까 술을 마시러 갈 걸 그랬다. 주성이가 가자고 했는데. 이제 막 박사과정을 시작한 주성이, 하여간 그 놈은 어지간히 논다. 오늘은 자기 동기 몇 명끼리 술을 마시러 간다면서 나를 불렀다.
“에이, 형 없이 무슨 재미로 술 마셔요? 오셔서 형 그 술력 한 번 보여주세요. 글라스에 쏘주를 똭! 그냥,”
“야, 내가 꽃박사들 모이는 곳에 왜 가냐. 내 나이가 몇 인지 알아? 이제 만으로도 서른이야.”
“형, 회사에서 일하다 오신 그 형도 와요. 나이가 무슨 대수라고.”
“야, 대학원에 오면, 나이순대로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연차순대로 먹는 거야. 내가 그 분보다 신체 나이고 정신 나이고 훨씬 늙었을
걸.”
“아, 형, 어차피
연구도 안 할 거면서 왜 그래요.”
“야, 여기 푸티[1] 켜놓은
거 안 보이냐? 오늘은 연구할 거야.”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마셔요.”
내심은 누구 새로운 사람을 만날까 싶어 두려운 것이었다. 막상
앞에서는 온갖 농담을 범벅이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오겠지만, 내일이면 뻘쭘하게 인사하는 그런 인간관계를
하나 더 만드는 게 싫어서. 이 좁디좁은 사회에서 굳이 한 사람 더 친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도
싶다. 그저 연구만 성공하면 되는 곳인데.
하지만 막상 주성이가 나가자 마음이 허해졌다. 그리고 뭐 한
편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건 다 봤고,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후환이 두려워서 결국 끊었던 ‘마녀사냥’을 다시 틀었다. 여전히 푸티도 켜 둔 채로. 하지만 손은 키보드에서 턱으로 옮겨갔다.
다시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버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새벽 세 시에,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이란 곳에서, 나는 연애와 섹스에 대한 농담들에서 웃음을 찾고 있다. 내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의미 없이 밤을 보내버렸다. 일 분
일 초라도 더 공부해야 하는데, 그래야 제때 졸업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뻐근한 것도 없는데 기지개를 폈다. 우연히 돌아간 눈에 원식이
형 자리가 보인다. 박사만 7년째 하고 있는 원식이 형, 석사까지 포함하면 9년째 이곳에 머물러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끔 원식이 형이 답답했다. 저 정도 연차면 좀
더 열심히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나를 바라본다. 나라고 뭐가 그리 다른가 싶다. 오히려 존경스럽다.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이.
내친김에 반대편도 보았다. 박사 3년차 국현이 자리. 늘 전문연구요원 복무기간만 끝나면 이 짓거리
때려 칠거라고 말하는 아이다. 회식 때 교수님 앞인데도 술김에 이 말을 내뱉어서 모두가 식겁했던 적도
있다. 내가 재빨리 “국현이가 출석부에 사인하는 걸 되게 귀찮아하거든요.”라고 수습했지만, 수습이 됐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국현이는 늘 뭔가 연구하고 있다. SCI급[2]은 아니지만 저널에 논문도 냈다. 국현이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뒤쪽에 앉은 석사 2년차 보영이. 내가 연구를 도와주고 있는, 불쌍한 아이다. 옆방에 있는 동기인 길영이는 그래도 국내 학회 논문이나마 하나 냈는데, 보영이는
아무 결과도 없다. 석사 1년차 땐 내가 아이디어 냈던 연구를
하다가 시간만 날렸다. 애초에 될 만한 아이디어인지부터 점검했어야 했는데, 구현해보려다 고생만 했다. 책상에 분홍색 머리끈 하나가 놓여 있다. 내일 오면 저걸로 머리를 묵겠지.
에이씨. 잠이나 잘까. 어차피
연구도 안 하는데. 하지만 마녀사냥이 15분 남았다. 15분? 그래, 깔끔하게
다 보고 내일부터 새출발 하자. 내일 출근해서 15분 동안
시간 버리느니 깔끔하게 오늘을 날려버리자. 이게 며칠 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멍하니 타임머신을 탄다. 더 비어간다. 머리도, 가슴도, 웃음도, 감각도. 에라이. 곰플레이어를 꺼버리고 열어놓은 탐색기들도 닫아버렸다. 가방을 둘러맸다. 며칠 전에 넣어놓고 한 번도 안 꺼낸 논문들이 날 비웃는다. 내일
하자, 내일. 연구실을 나왔다.
눈길은 자동으로 교수님 방으로 향한다. 당연하지만 불이 꺼져
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쯤 퇴근하는 우리 교수님. 참 대단한 사람이다. 어떻게 저 나이까지 저러고 살지? 테뉴어 심사가 언제라더라, 테뉴어를 받으면 좀 제때 퇴근하면서 사실까? 난 졸업만 해도 다시는
야근하기 싫은데. 하긴, 내가 갈 수 있는 직장 중에 야근
안 하는 직장이...
옆방의 불이 켜져 있다. 보나마나 정길이 형이겠지. 저 형은 언제 자는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일찍 나온다는데. 저 형, 참 열심히 하는데. 이제
결과 좀 나와 줘야 할 텐데. 안타깝다. 그렇다고 나도 박사 4년차라 도와주기도 좀 그렇고. 도와줘봤자 도움이나 될까도 싶다. 저 형은 이 바닥에 들어온 걸 후회하진 않을까. 회사에선 돈 잘
벌었다던데. 대체 왜 학문의 길로 들어선 걸까. 이런 줄
몰랐을까. 아니면 콩깍지가 씌었던 걸까.
준상이와 길영이는 아마도 들어갔을 것이다. 매일 밤 10시쯤이면 퇴근해서 운동을 한다니까. 대단한 애들이다. 연구도 잘 해내는데, 운동도 하고,
참 뭐든 잘 챙긴다. 내 동기인 준상이는 벌써 논문이 4개다. 제길. 난 뭐했지. 석사 2년차인 길영이도 벌써 국내 학회에 논문을 하나 냈다. 제길. 난 뭐했지. 보영이는...
문을 열어 정길이 형한테 인사나 하고 갈까 하다가 말았다. 괜히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사실 그보다는, 누군가에게 미소지을
기분이 아니다.
밤공기가 무겁다. 별빛이 나를 쏜다. 찬바람에 눈이 따갑다. 눈물이 배긴다. 실눈을 겨우 떠가며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안구건조증인가. 대학원에 와서 생긴 몸의 변화 중 하나다. 컴퓨터를 너무 많이 쳐다보면
안구건조증이 생긴다던데, 그렇다고 컴퓨터 사용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눈 사이로 몇몇 건물들이 보인다. 불, 참, 많이 켜져 있다. 새벽
세 시가 넘었는데. 저들은 무얼 하며 이 밤을 보내고 있을까. 내가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예능이나 보며 허전함을 달래고 있는 중일까, 내일 아침 랩미팅을 준비하는 중일까, 제안서나 보고서를 쓰고 있을까, 아니면,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학문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중일까?
내게도 꿈이 있었다. 인텔 연구원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설계하고도 싶었다. 여느 대학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성심성의껏 길러내고도 싶었다. 그러다 세계 일류가 되는 것을 포기하던 무렵부터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이라도 잔뜩 벌고 싶었다. 아니, 정부출연연구소에
가서 몇 십 년 일하다가 연금 받는 삶도 좋겠다 싶었다. 전공은 좀 달라도 근무환경이 그렇게도 좋다는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점점,
세계 일류건 이류건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박사, 그 두 글자만으로도 너무 무겁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박사를 꿈꿔도 되는 걸까?
[1] 푸티(PuTTY): 해커들이 나오는
영화에 등장하는 까만 바탕에 회색 글씨가 흘러 다니는 그런 프로그램. 원격 데스크톱과 기능은 비슷하지만
그래픽 없이 글자만 나온다. 주로, 윈도우즈로 구동 중인
컴퓨터에서 리눅스로 구동 중인 컴퓨터를 원격조종하기 위해 사용한다.
[2] SCI급:
SCI(Science Citation Index)는 직역하면 “과학논문인용색인”이란 의미로, 소위
‘급’이 되는 논문들을 모아놓은 목록이다. (http://ip-science.thomsonreuters.com/mjl/ 에서
확인 가능) ‘SCI급 논문’이란 이 목록에 속한 저널에
실린 논문이라는 의미이다. ‘SCI급 논문’ 개수는 연구
실적의 중요한 기준이 되며, 학교에 따라서는 자신이 제1저자인
‘SCI급 논문’이 있어야만 박사학위를 주기도 한다.
![00phD5.jpg](file:///C:/Users/usere/AppData/Local/Temp/msohtmlclip1/01/clip_image001.jpg)
#2. 연구 체증
한 게 있어야 잠도 자고 싶은 법이다. 세 시 반에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후딱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행여
뇌가 각성될까 봐 스마트폰도 알람만 재빨리 맞추고 덮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대로 지나가는 하루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께가 찜질방 소금방처럼
뜨거웠다. 뭔가 짠 것이, 목이 탔다. 읽으려던 논문도 읽지 못했고, 구현을 해보려던 프로그램마저 손도
안 댔다. 아, 어쩌면 좋을까. 그래, 웹툰만 좀 보자. 가슴을
조금만 가라앉히면, 잠을 잘 수 있겠지.
스마트폰이 룸메이트를 등지도록 자세를 잡고 웹툰 앱을 켰다.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그래 <마음의 소리>가 올라오는 날이구나. 손가락을 휙휙 대며 내려갔다. 오늘도 조석이 엄한 곳에서 똥을 싼다. 웃기네. 하지만 얼굴 가죽은 움직이지 않는다. <가우스전자>를 열었다. 재미는 있지만 짧다. 난 그냥 시간을 좀 더 보냈으면 좋겠는데.
‘캔디크러쉬사가’[1] 게임을 켰다. 이주일 째 못 깨고 있는 판이 나온다. 하루에 4~5시간까지도 했는데, 342판이 하도 안 깨져서 좀 시들해졌다. 캔디들을 움직여본다. 캔디들이 터지고 캔디 옆에 있던 벽돌들도 터진다. 좀 되나 싶더니 제한 횟수가 끝났다. 재도전한다. 또 캔디들이 터지고 벽돌들도 터진다. 거의 다 된다 싶었는데 제한
횟수가 세 번 남았다. 이번에도 텄다. 제길. 대충 세 번을 해치우고 재도전을 한다. 또 하고, 또 한다.
친구들이 보내준 하트까지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난 이것을 깨야만
할 것 같다. 1,200원을 결제했다. 하트 5개다. 단지 다섯 번 더 실패했다.
여전히 342판, 제자리다. 슬몃 태양이 노크를 한다. 깜깜하던 방에 옷장 그림자가 진다.
다섯 시다. 잠시 외면하던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 나는 왜 게임 한 판을 깨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30분에
하나씩 꼬박꼬박 채워지는 하트를 당장 쓰려고 돈까지 들여가면서. 그래,
어쩌면 난 게임 속에서나마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것일 게다. 게임이라도 성취해서 오늘의
의미를 찾고 싶은 것일 게다. 한 판, 한 판,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 뭔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 적어도, 뭔가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들에 중독된 것도 같다. 성공이든 실패든 금방 결과가 나오고, 또 금방 다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도, 연구랑은 참 다르다.
마음의 지진이 더 심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또 이렇게 밤을 새워버렸다. 드디어 몸이 잠을 자야만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의 피곤이라면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런데 소변이 마렵다. 화장실에 갔더니 찬바람과 약한 암모니아 냄새에 잠이 달아난다. 제기랄. 뇌 속으로 핏발이 강해진다. 눈을 감았지만 깊은 잠에 잘 도달하지
못했다. 머리는 깨어 있는데 몸만 잠든 것 같은 느낌이다.
열한 시. 늦게까지 잤지만 겨우 6시간쯤밖에 못 잤다.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피곤하다. 일어나려 해봤지만, 정작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엎질러버린 물 같다.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다시 자 보려 해도 역시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나야만 할 것 같다. 계속 불안하다. 왜 늦잠을 자는 날은 항상 우울할까? 육체에 대한 열등감일까, 정신에 대한 자괴감일까. 이딴 생각을 계속하면 더 우울해지기밖에
안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단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것도, 나는 잘 안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켰다. 페이스북을 넘긴다. 다들 잘 산다. 누구는 연애를 하고 누구는 회사를 다닌다. 누구는 논문이 됐고 누구는 숙제 때문에 멘붕이다. 누구는 짜증이
났고 누구는 맛있는 걸 먹었다. 누구는 좋은 말을 발견했지만 나는 그런 투의 말들이 지겹다. 이제 다 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바닥에 꼭 들러붙어
있다. 한겨레 앱을 켰다. 이런저런 소식들. 어떤 사람은 정치를 떠난다고 하고 어떤 부자는 돈을 더 벌려다 죄를 짓고 어떤 서민은 돈을 못 벌어 자살을
한다. 그리고 나는 연구를 하러 가야 하는데. 한참을 더
눕고서야 씻으러 갈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나왔다. 멀리서 음악이 울린다. 까리용을 고쳤다더니, 그건가. 까리용은
이상하게 생긴 조형물인데 여러 크기의 종들이 달려있다. 그걸 컴퓨터로 제어하면 음악도 연주할 수 있다는데, 지난 몇 년 간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외국에서 기술자를
불러와야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프랑스던가, 네덜란드던가. 왜 우리나라 기술자는 못 고치는지 모르겠지만, 수업료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도 내버려둔 걸 보면, 정말 우리나라 기술로는 안 되나 보다 싶었다. 저게, 정오에 울린다고 했나...
걸음걸이를 보채긴 싫었다. 땅만 바라보며 그렇게 걸었다.
그래, 나도 외계의 기술자가 필요한 건 아닐까. 지구의 힘으로는 안 되고, 외계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닐까. 허허.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런데
난 왜 또 이제야 연구실에 가고 있는 것일까.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오늘은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아,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이유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2] 사고도
나지 않았고 나들목도 아닌 곳에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차
한 대가 무슨 이유에서건 속도를 조금이라도 낮췄기 때문이다. 그러면 뒤차는 앞차가 속도를 줄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반응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앞차보다 속도를 조금 더 많이 낮춰야 한다. 그러니
그 뒤차는 더 많이 낮추게 된다. 그러다 보면 연쇄작용으로 모든 차량이 멈추다시피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차 한 대”는 무엇이었을까? 왜 나는 지금 멈추어 있는
것일까. 그래, 아까 페이스북이나 보면서 뒹굴지 않고 후딱
일어났다면 1시간은 일찍 연구실에 당도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쯤 열심히 연구 중일 텐데. 아니, 새벽에 게임을 켰던
게 문제였을 것이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훨씬 일찍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 게임은 내가 새벽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밤을 견디지 못해서 일어난
것일 게다. 역시 밤에 이불을 차지 않으면 아침에 이불을 차게 되는 법이다. 늦게 들어간 것은 <마녀사냥>을
보느라 그랬고, <마녀사냥>을 본 건 주성이가
술을 마시러 가자는 걸 거절했지만 결국 연구는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기 싫은 건 왜 그랬을까? 어려워서? 해봤자 안 될 게 뻔해서? 두려워서? 그렇다면 연구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거야 대학원생이니까 그렇지. 그럼 박사과정은 왜하려고 했었지? 왜 그랬더라... 너무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피아의 <소용돌이>. 두껍고 거친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내 기억에 혼돈스럽고 또 지나쳤던 건 이제 모두 떨치고 싶어 깊은 늪 소용돌이
속 던져버려 다 지우고 싶었어’
박자에 맞춰 건들거리며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주성이와 보영이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영이가
나를 본다.
“오빠,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위장에 기체만 가득 든 느낌이다. 밥을 먹어야겠다.
“어, 아직 안 먹었어. 먹어야지. 넌 먹었어?”
“네. 근데 혼자, 드시게요?”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혼자 먹게 되겠지. 이제 와서
같이 밥 먹을 사람 찾기도 번거롭거니와, 굳이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처량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아무렇게나 둘러대기로
한다.
“어차피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게 인생이야.”
주성이가 끼어든다.
“아이참, 이 형 또 이상한 소리하네. 형, 그건 그렇고, 저녁은
돼지국밥 어때요?”
“너도 함께 밥 먹었을 거 아냐. 점심
갓 먹어놓고 저녁 먹을 궁리부터 하는 거야?”
“아니, 이따 장보러 갈 건데, 그 마트 근처에 돼지국밥 맛있잖아요. 형도 같이 가자구요.”
“장을 왜 봐?”
“내일 준상이 형 프로포잘하잖아요.”[3]
“그게 내일이었어?”
“아따, 이 형 소식 느리네.”
그래, 얼마 전에 프로포잘 리허설을 했지. 굳이 언제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구나. 장보는 거야 저년차 위주로
부탁하면 되니까 굳이 나에게 프로포잘 날짜를 공지하진 않았겠지. 벌써 프로포잘을 하는구나. 내 동기가.
“봐서, 이따 결정할게.”
“알았어요. 어쨌든, 그럼 보영아. 이따 다섯 시쯤 출발하자. 더 늦으면 차 막혀.”
“네.”
주성이가 나가고 보영이와 둘만 남았다. 책상에 앉았다. 밥을 먹으러 가야 하나. 마우스를 휙휙 대니 모니터가 켜진다. 어제 밤에 (정확히 말하자면 저녁 즈음에) 읽다만 소스코드가 화면에 뜬다. 나머지는 어제 다 닫아버리고 갔다. 웹브라우저부터 다시 띄웠다. 메일함과 캘린더와 페이스북을 띄웠다. 기숙사에서 나오기 직전에 다 봐서 남은 것이 없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연구실을 나섰다. 그래, 연구실 오기가 무섭게 밥이나 먹으러 가는데, 연구가 진행될 틈이
있나.
찬바람이 촉촉하다. 아직 식당엔 사람이 꽤 있다. 삼삼오오의 무리들 틈에 식판을 놓고 혼자 앉았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어떤 기업의 신제품이 잘 팔려서 주가가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드라마가 중국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 그런데 준상이가 프로포잘을 하는구나. 그래, 할 때가 됐지. 준상인, 열심히 했잖아.
이번엔 아나운서가 교통 정보를 전해준다. 전국 교통 상황은 원활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데 호남고속도로에서는 사고가 났고 그래서 많이
막힌다고 한다. 교통체증에 대해 연구한 MIT(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과학자가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일단 정체가 발생하면 탈출이 불가능하다. 저절로 풀릴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4]
침이 잘 나오지 않는다. 몇 술 뜨지 않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걷고 싶었다. 멈추어 앉아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1] 캔디크러쉬사가: 퍼즐 게임이다. 화면에 캔디들이 가득 나오고, 색색의 캔디를 3개 이상 연결하면 캔디가 터지게 된다. 제한 횟수 (혹은 시간) 내에서 각 판의 목표(일정
이상의 점수 획득, 화면 속의 젤리들을 모두 없애기, 특정
아이템을 제일 아래까지 내려오게 만들기)를 달성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애니팡2’가 이 게임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유사하다.
[2] 김한별 기자, "과학으로 본 교통체증 원인", 중앙일보 2011년 3월30일(온라인 게재일). 다음 논문을 중심으로 한 기사이다. Orosz, G. &
Stepan, G. 2006 Subcritical Hopf bifurcations in a car-following model with
reaction-time delay. Proc. R. Soc. A 462, 2643?2670.
[3] 프로포잘(Proposal):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보통 다섯 명의 박사(주로 대학 교수들)에게
구두 발표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심사를 받기 전에(몇
개월에서 2~3년 전) 같은 심사위원들에게 박사학위 내용에
대해 예비 심사(역시 구두 발표로 진행됨)를 받으면서 조언도
듣게 되는데 이것을 프로포잘이라고 한다. 이때 참석하신 심사위원들이 발표를 듣는 도중에 먹을 다과를
준비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장을 보러” 가는 이유는 다과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4] A. Trafton, "Mathematicians take aim at
'phantom' traffic jams", MIT News June 9, 2009.
다음 논문에 대한 기사이다. Flynn, M. R., Kasimov, A. R., Nave, J. C., Rosales, R. R., &
Seibold, B. (2009). Self-sustained nonlinear waves in traffic flow. Physical
Review E, 79(5), 056113.
#3. 매몰 비용
![00dot.jpg](file:///C:/Users/usere/AppData/Local/Temp/msohtmlclip1/01/clip_image003.jpg)
벌써 저널에 발표한 논문이 2개나 되는 준상이의 프로포잘은, 대단히 잘 한 발표는 아니었다. 스토리텔링이 부족했달까, 기승전결을 살리지 못했고 약간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몇 가지 실험을
추가한다면 훨씬 논리가 탄탄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은 여지없이 교수님들도
지적하셨다. 내가 그래도 꽤 많이 배웠구나.
이내 자괴감이 들었다. 소설가가 되려고 국문학과에 들어가서 문학비평만
배운 것 같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욕하는 데는 약간의 지식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려면……. 더군다나 저 사람은 내 동기, 그러니까 6년 전, 같은
시기에 비슷하게 실력을 인정받았던 사람이다.
긴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뒤, 준상이는 무거운 표정으로 세미나실을
나왔다. 연구실 사람들도 뒤따라 나왔다.
“고생하셨어요.” 나 빼고 다들 한마디씩 한다.
“다들 고마워.”
“형,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하겠던데요. 아니, 이미 저널에 실린 논문인데 뭐가 그리 불만들이 많으신지. 그 많은 실험들을 언제 다 해요?”
국현이가 말했다. 프로포잘 때 지적한 사항들을 모두 보완하거나, 최소한 논리적인 핑계라도 만들어두지 않으면, 졸업은 요원한 것이니까.
“그러게 말이다. 올해 말까지 디펜스[1] 마치고 내년에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게 맘대로 될는지.”
“이야, 형 드디어 상투 트는 거예요?”
주성이가 거든다. 하여간 녀석.
“아직 멀었어. 졸업부터 해야지. 어쨌든, 저녁에 갈매기살 어때? 오늘은
내가 쏜다!”
“아 형, 왜 그 말 안 나오나 했어요. 오늘 소주도 가나요?”
“야, 갈매기살에는 소맥을 가야지!”
“소맥대장님께서 어련하시겠습니까. 바로 가시죠.”
모두가 웃으며 두 개의 연구실로 나누어 들어간다. 나도 슬리퍼를
끌며 들어갔다.
학교에도 국방부 시계가 달려있으면 좋겠다. 아니, 내 자리에만. 내 시간만 천천히 흐르면 나도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런데 ‘남들처럼’에서 ‘남들’은 대체 누구일까?
왜냐면 지금 이 연구실만 봐도 ‘남들’은 나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것 같거든. 준상이만
빼고. 그러게, ‘남들’은 사실 우리의 욕망이 투영된 허상인지도
모른다. 잘 나가는 사람들만 추려놓은 추상적 존재. 물론
‘남들’을 내 주변의 장삼이사로 바꾼다한들, 내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느끼는 시간의 빠르기는 뇌 속 도파민 신경세포에서 들어오는 도파민 신호에 따라 결정된다. 도파민 신호가 활성화하면 내 안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상대적으로 바깥세상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도파민 신호는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활성화한다.[2] 즉, 박사과정 학생에게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것은 연구를 게을리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다 못해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박사과정이니까.
빈 연구실, 이런 뻘생각이나 하며 웹질이나 타칵타칵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원식이 형이 들어온다. 아, 형도 갈매기살 먹으러 안 갔구나. 원식이 형이 멈칫하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넌 왜 갈매기살 먹으러 안 갔어?’ 하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형이 자기 자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는 말했다.
“야, 소주나 한 잔 하러 가자.”
막창 모양의 과자와 함께 소주 한 병이 놓였다. 소주잔을 채우면서
대뜸 물었다.
“형, 형은 박사 왜 해요?”
“동기가 프로포잘하니까 어때?”
대답 대신, 되물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냥, 난 뭐했나 싶고, 음, 계속해도 되는 건가도 싶고.”
“그치? 난 후배가 디펜스 하는 것도 봤어.”
형이 조용히 잔을 내민다. 살짝 잔을 부딪친다. 하이파이브라도 하는 양. 우리는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차마 말을 잇기 힘들었다. 나보다
3년을 더 있었던 원식이 형. 그랬구나. 지금
나와 원식이 형의 차이는, 친구 결혼식과 후배 돌잔치쯤 되겠지.
“그러네요.”
막창 모양의 과자 몇 개를 입에 넣었다. 이빨에 짓이겨진 과자가
혀에 닿아 스러진다. 다시 형과 내 잔을 채웠다. 형이 물었다.
“넌 박사 왜 하는데?”
“그러게요. 왜 하고 있을까요?”
“왜 왔었는데?”
“그 땐, 연구가 재미있었으니까요. 이것저것 해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자꾸 뭐가 안 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너 잘 하고 있잖아.”
“변변한 논문 하나 없는데요, 뭘.”
형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담배라도 피고 싶은 표정이다. 아, 내가 지금 박사 7년차
형에게 무슨 말을 한 건가.
“연구란 게 좀 그래. 뭔가 좀 돼야 신이 나고 열심히 할
텐데, 그게 잘 되질 않잖아. 몇 달, 아니 몇 년을 해도 성과가 나올까 말까고.”
“그냥, 이걸 계속해도 되나 싶기도 해요.”
“너 박사 왜 따려고 하는 건데?”
“음…… 그것도 모르겠어요. 해봤자 결국 어디 취직이나 할
텐데. 대기업은 야근만 진탕 한다고 하지, 중소기업은 월급은
적은데 야근마저 진탕 한다고 하지.”
“교수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교수는 누가 시켜주나요.”
“왜, 그래도 될 수도 있지.”
“우리 교수님 보면 겁나요. 머리도 엄청 좋아야 하는 것 같고요, 교수님은 밤이고 주말이고 상관없이 그렇게 연구만 하시잖아요. 전
그렇게 연구에만 파묻힐 자신이 없거든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교수를 하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하긴, 좀 그렇긴 하지. 나도
처음엔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우리 교수님 보면서 나는 좀 아니다 싶더라.”
“준상이 같은 애들이 나중에 교수 되겠죠.”
사장님이 채 썬 오이와 고춧가루가 곁들여진 짜파게티를 들고 오신다. 다시
한 번 잔이 부딪히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진다. 젓가락을 집어든 형이 말했다.
“많이 먹어. 너 여기 짜파게티 좋아하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짜파게티를 입에 넣었다. 쫄깃한 면발이 이빨을
감싸고 달콤한 조미료가 혓바닥을 감싼다. 오이채가 이빨을 자극하고 고춧가루가 혓바닥을 자극한다. 두 잔째 털어 마신 소주 기운이 살금살금 올라온다. 다시금 잔을
들고 쭉 들이켰다.
“야, 왜 혼자 마시냐.”
핀잔을 주면서도 형은 소주잔을 만지지 않는다. 내 잔만 채워준다.
동기가 프로포잘을 마친 날, 나는 연구실 선배와 소주를 마시고
있다. 동기가 미래를 향해 한 발 더 내딛은 날, 나는 여전히
정체된 상태로, 언제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취해가고 있다. 몇 년째 진전 없는 연구,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이렇게 열등감이나 느끼고 있는 게 손해는 아닐까?
“형, 저 정말 계속해도 될까요?”
“너 정말 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대체 어딜 봐서 잘 하고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다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번듯한 학교를 다닌다는
핑계로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렇다 치는데, 이 형은 내 실적도
알고 내가 얼마나 놀아제키는지도 알면서,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건 과학 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발언이다. 요즘
나오는 힐링 운운하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하지만, 또한 내 실적도 알고 내가 얼마나 놀아제키는지도 아는
사람의 말이다. 같은 길을 3년 더 걸어가고 있으면서 말이다. 동정이 아닌 애정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물론, 교수가 될 정도는 아니겠지만.
다음 말을 이으려던 형이 갑자기 잔을 잡고 반쯤을 마셨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나도 하잖아. 너도 해도 돼.”
경제학 용어로 ‘그만 둘 때 발생하는 비용’을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박사과정에서
매몰비용은 무엇보다 이제까지 보낸 시간일 것이다. 매몰비용을 고려하자면 아니다 싶을 때 재빨리 그만
두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내가 형보다 실력 면에서 나을 것은 하등 없으니, 저 말은 ‘너는 나보다 매몰비용도 적다’는 의미겠지. 그러고 보니
형의 (SCI급[3]은 안 되는) 저널 논문도 박사 5년차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4년차니까, 계속
해봐도 되는 걸까? 물론 내가 내년이 된다고 어떤 형태든 저널 논문을 쓸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 이게 시간을 넣는다고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시간을
넣지 않으면 결과는 절대 안 나오지만.
그렇다면 형은 계속해도 되는 걸까? 갈수록 매몰비용만 늘어 가는데. 매몰비용만 고려할 순 없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매몰비용’을 매몰하지
않게 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소유자에게 박사를 받는데 얼마나 걸렸는지는 잘 신경 쓰지
않으니까. 원식이 형도 이제 SCI급 저널 논문 투고를 앞두고
있다. 물론 투고를 한다고 논문이 게재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 지도교수님이 보시기에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연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논문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의 틀도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고, 그러면 더 내실화를 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도 쉽다. 박사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뜻이다. 물론, 더 많은 시간, 그러니까 ‘매몰할지도 모르는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더 이상 연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저 맛집 이야기, 연예계 소식, 새로 나온 스마트폰과 타블렛, 컴퓨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형과 함께한다는 것이 뭔가 모르게 괜찮았다. 내일이면 다 까먹을
이야기들이지만 즐거웠다. 무언가 모르게 허전해질 때마다 마셨더니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뻗었다.
새벽 5시. 눈을
떴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문득 상쾌했다. 술에 취해 들어왔지만
빨리 마셔서 취한 거지 많이 마신 건 아니어서 숙취도 없다. 간이 지쳐서 그런지 몸은 노곤했지만.
충분히 잔 건 아니었다. 12시쯤 누운 것 같으니까 5시간쯤. 더 자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왠지 일어나보고 싶었다. 동기도 프로포잘을
하는데, 나도 뭔가를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지금 여유롭게
씻고 준비해도 연구실에 가면 새벽 6시쯤이겠지. 뭔가 괜찮은
출발 같다. 하루 종일 열심히 공부하면 피곤할 것이고 그러면 또 일찍 자고, 내일도 일찍 연구실에 갈 수 있겠지? 이참에 늦잠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거다. 차갑고 촉촉한 레몬에이드 같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면 논문도 잘 이해될 것 같고, 프로그램을 짜도 에러가 없을 것만 같다.
룸메이트는 아직 자고 있다. 아침에 룸메이트가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얼마만인가. 묘한 승리감도 든다. 조심조심 샤워실로
갔다. 그리고 노곤한 몸을 깨우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뼈마디가
분리되고 다시 맞춰지는 느낌, 내 몸이 해체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좋다. 어제 입었던 모든 옷을 외투까지 다 빨래바구니에 넣어버리고 다른 옷을 입었다.
연구실에 가는 공기가 좋다. 갓 떠오르는 태양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의 나를 지켜보라며.
매몰비용은 의사결정과 무관해야 한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이미
매몰되어 버린 비용이기 때문에 매몰비용은 무시한 채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님이
별로 없는 오후 시간대에 식당이 문을 닫지 않는 이유도 이것에서 연유된다. 건물임대료와 식당 기자재
가격은 이미 지불되어버린 매몰비용이기 때문에 의사 결정과 무관해야 한다. 그리고 재료비야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으니, 매 시간 종업원의 시급을 줄 수 있는 정도의 이익만 올릴 수 있다면 식당 문을 열어두는
것이 나은 것이다.[4] 사실 이미 사버린 재료들의 값과 이미 고용하기로 계약한 인력의 인건비도
매몰비용이라고 볼 수 있으니 식당은 계속 문을 여는 것이 맞다.
그러니까 이미 3년이나 허송세월한 것이 아까워서 박사과정을 계속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만을 고려해서 판단하면 된다. 박사과정의 현재가치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만들어가는, 내가
꿈꿔왔던 삶이다. 그리고 미래가치는 이런 삶을 지속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기회도 갖게 되는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제 밤에 생각했다면 현재 가치는
우울한 시간들이고 미래 가치는 야근으로 범벅된 삶이었겠지. 하지만 승리의 맛이 나는 새벽 공기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에는 모든 나쁜 것들을 잊기로 했다. 원래 꾸었던 꿈을 다시 꾸기로 했다.
그러다가 현재와 미래까지 몽땅 매몰돼버릴 수도 있겠지만.
[1] 디펜스: 박사학위논문을 최종적으로
심사받는 자리. 프로포잘(2화 주석 3번 참고) 때와 동일한 심사위원들에게 유사한 형식으로 발표를 진행한다. 발표 후 심사위원들이 모두 박사 학위 수여에 동의해야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2] 홍수.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빠르게
흐를까?” http://scienceon.hani.co.kr/151419
[3] SCI급:
SCI(Science Citation Index)는 직역하면 “과학논문인용색인”이란 의미로, 소위
‘급’이 되는 논문들을 모아놓은 목록이다. (http://ip-science.thomsonreuters.com/mjl/ 에서
확인 가능) ‘SCI급 논문’이란 이 목록에 속한 저널에
실린 논문이라는 의미이다. ‘SCI급 논문’ 개수는 연구
실적의 중요한 기준이 되며, 학교에 따라서는 자신이 제1저자인
‘SCI급 논문’이 있어야만 박사학위를 주기도 한다.
[4] N. Gregory Mankiw 지음. 김경환, 김종석 옮김. <맨큐의 경제학> 제2판. 교보문고
출판. 327-329쪽
#4. 책상 정리
책상 정리 상태와 연구 진행 속도 사이엔 상관관계가 있을까? 양의
상관관계일까, 음의 상관관계일까?
어떤 책에서는 정리는 돈이자 시간이며 삶의 의욕이자 여유이며 창조력이고 기회라고 한다.[1] 맞는 말 같다.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을 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언제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어떤 글에서는 어지럽혀진 책상이 창조자의 표지일 수 있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등을 예로 들면서. 심지어 한 박사는 “무질서한 환경이 전통과의 단절을 촉진하고, 이는
새로운 통찰력의 원동력이 된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2] 정리된 책상이 창조력이라는 주장과
무질서한 환경이 새로운 통찰력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 어느 것이 맞는 걸까?
아침 7시, 오랜만에
의욕을 가지고 연구실에 와서 책상 앞에 앉은 지금, 내 결론은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다”였다. 키보드 앞에 팔을 올려놓을 공간만 겨우 비어 있는 책상. 각종 잡동사니들과
논문들과 책들이 난잡하게 쌓여 있다. 잡동사니들을 정리해놓기 위해 사다 놓은 서랍장은 또 하나의 거대한
잡동사니가 되었을 뿐이고 논문들을 정리해놓기 위해 사다 놓은 서류함은 이면지 보관함이 되어버렸다. 아니
논문은 양면인쇄를 하니까 이면지조차 아니구나. 정리정돈을 위해 사다 놓은 물건들이 되레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되어있다.
정리를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연구를 시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믹스커피를 타 마시고 내버려둔 종이컵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초콜릿 까먹은 종이껍질 세 개와 귤껍질도 쓰레기통에 넣었다. 널브러진
펜과 지우개들은 서랍장 속에 일단 넣고 책들은 다 책장에 꽂았다.
이제 남은 것은 논문이다. 적으면 3장, 많아야 12장 정도가
스테이플러로 묶여 있는 종이다발들. 먼저 서류함을 살폈다. 8칸
모두 각각 종이뭉치들이 들어 있다. 제일 위 칸부터 열어본다. 6개월
전쯤까지 했던 연구와 관련된 논문들이다. 지난 반 년 간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버리긴 아깝다. 몇 달만 바짝 하면 논문이 하나 나올 것만
같다. 두 번째 칸으로 넘어 갔다.내가 작성했던 보고서들이
들어 있다. 필요 없을 것 같아 버리고 나면 꼭 누군가가 관련 내용을 물어보길래 아예 모아놓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도 패스. 세 번째 칸과 네 번째 칸에는
지금 진행 중인(사실 정체되어 있지만) 연구와 관련된 논문들이
들어 있다. 주로 참고하는 건 몇 개 안 되지만 왠지 모아놓아야만 할 것 같다. 언젠가 논문을 쓰게 되면 관련 연구 장을 쓰면서 참고하게 되지 않을까? 아, 논문을 쓰긴 쓸 수 있을까. 그래,
어쨌거나 이미 출력을 했지 않은가. 버리는 것도 자원 낭비다. 인쇄했을 때 이미 자원낭비였겠지만.
다섯 번째 칸과 여섯 번째 칸에는 예전에 들었던 수업과 관련된 출력물들이 들어 있다. 필기도 되어 있고 간혹 가다 발견되는 오타도 정성스레 수정해놓은 출력물들이다.
연구하면서 수업 때 배운 테크닉을 사용하려면 이 출력물을 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아 잘 정리해두었다. 하나 꺼내보았다. 인공지능 수업에 대한 것이다. 이때 공부 참 열심히 했는데…. 몇 장을 넘기니 복잡한 수식들이
나온다. 내가 이런 것을 배웠던가…. 수식 전개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중에 이것이 필요한 때가 오면, 이것을
보고 공부하면 될 것이다. 요즘은 중앙처리장치(CPU) 연구에도
인공지능 기법들이 쓰일 때가 있으니까. 지난번에 확률과 통계 과목의 수업자료들을 모두 버렸다가 나중에
애먹은 기억도 났다. 그래, 이건 남겨두자.
남은 두 칸은 ‘언젠가 읽으려 했던’ 논문들이다. 선배가 소개해
준 논문, 다른 논문을 찾아보다가 흥미가 생긴 논문, 누군가가
세미나에서 발표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인쇄해 놓은 논문들이다. 두 뭉텅이를 꺼내 놓고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읽은 것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항상 ‘곧’ 읽을 생각으로 뽑은 것들인데. 심지어 약간 낡아버린 종이들도 있다. 대체 언제 인쇄했던 거지…. 초록[3]이라도 살펴보면서 버릴 것들을 추려낼까도 싶었다. 그러기에도 너무 많다. 제목만 보면서 ‘절대 안 읽을 것들’을 추려보기로
한다. 그런데 제목을 보니 내용이 궁금해진다. 서론 부분을
조금 읽어본다. 아, 남은 것들이 많지. 이런 호기심은 왜 책상 정리를 할 때만 생기는 것일까?
무언가는 빼야 무언가를 더할 수도 있을 텐데. 과감하게 추려내
보기로 한다. 냉철하게 돌아봐서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논문들을 모두 버린다. 그래도 많이 남는다.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은, 왠지 금방 읽을 것 같은 논문들. 아마도 내 욕심이겠지. 내게 연구 욕심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썩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아직 포기한 건 아니니까.
오늘부터 다시 해보기로 했으니까.
책상 여기저기 쌓아놓은 논문들도 정리하려고 하는데, 문이 열린다. 교수님이다. 정말 일찍 출근하시는구나. 퇴근도 항상 늦으시면서. 대체 교수란 어떤 존재인 걸까? 교수는 단지 교수인 것 같다. 남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닌, 다른 삶과 역할은 전혀 없는 사람인 것만 같다. 하루 종일 교수
회의와 학생과의 면담, 그리고 각종 문서 작성, 논문 읽기, 세미나 참석, 수업 준비, 논문
쓰기를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이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럴듯하게 해내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것 같은데 가정은 어떻게 챙기시나도 싶다. 테뉴어[4] 받을 때까지만 참기로 하고 저렇게 사시는 건가?
“정원. 니가 이 아침에 웬일이야. 커피 한 잔 할까?”
빈틈없이 말씀하신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교수인 걸까?
“네네.”
사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책상 정리가 끝나면 앞으로 무슨
연구를 할지 차분하게 생각해보려 했는데, 그래, 커피 한
잔 하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부르시다니.
아직 교수님 앞에서 드릴 말씀이 없는데. 딱 하루만, 아니
한 시간만 뒤에 부르셔도 괜찮았을 텐데.
하지만 교수님은 벌써 커피숍으로 향하고 있다. 나도 급히 뒤따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침 안 먹었지? 뭐 좀 먹을래?”
교수님이 도너츠 두어 개를 쟁반에 올리면서 말씀하신다.
“아,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한테서 쟁반을 건네받고, 내 것도 두 개 올려놓았다. 결제는 교수님이 하시고 진동벨은 자연히 내가 집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도너츠를 뜯으며 물으신다.
“그, 사성프로젝트는 어떻게 돼가?”
사성기업과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대해서. 그런데 뭐가 돼야지 말이다. 이런 얘기가 나올까봐 교수님과 마주치기
싫었는데.
“실험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데요, 그게 잘 안 돼서….”
“그래? 뭐가 문젠데?”
“지금 운영체제를 소스[5]부터 컴파일[6] 해서 다시 집어넣어봤는데, 그러고 나면 자꾸 핸드폰이
죽어서요.”
“그래? 프로젝트 시작한 지 세 달도 더 지났잖아. 빨리 좀 해결해봐.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고 나면, 그 프로그램들 넣어서 테스트 좀 해보고, 전력소모량 측정 해봐. 그 전력 측정하는 기기 잘 된다고 했지?”
“네, 기본적인 동작은 하는 것 같습니다.”
벌써 몇 번째 듣는 말인지 모르겠다. 테스트와 전력소모량 측정. 시작 단계에서 막혀 있으니 저 말만 수없이 듣게 된다. 전혀 도움은
안 되는 말. 하긴, 교수님이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스마트폰이란
게 존재하질 않았으니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을 겪어보신 적이 없으실 것이다. 교수가 된 뒤부터는 실험은
다 학생들 시키고 본인은 논문이나 보고서 쓰는 것만 하셨을 테니까. 결국 내가 감내해야겠지.
진동벨이 울린다. 더 이상 할 말도 없는데 다행이다. 커피 두 잔을 받아왔다. 도너츠를 먹다가 커피를 한 모금 삼킨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이번 프로젝트하면서, 프로젝트만 생각하지 말고 논문도 좀
써볼 수 있도록 해봐. 기업체 과제지만 주제가 괜찮아서 연구로도 가치가 있을 거야.”
“네, 그래야죠.”
말이야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환경, 특히 저전력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생기는 환경에서 하는 운영체제 연구니까, 연구로서
가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결국
마감일이 다 돼서야 최소한의 요건만 채워서 소스코드나 넘겨주게 될 테니까. 물론 처음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야 논문도 쓰고 그걸 빌미로 해외 학회도 다녀오고 싶었지만, 세 달이 넘도록 기본 설정도 잘 안 되다보니, 그런 생각들은 다 사라졌다.
“그거 말고, 전에 연구해보고 싶다던 그건 어떻게 됐어?”
아, 잊지 않으셨단 말인가. 몇
달 전에, 하던 연구가 엎어졌을 때, 교수님이 ‘앞으론 무슨
연구 할 거야?’라고 물으신 적이 있다. 아직 멘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무렵인데, 또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그 때 생각난 걸 아무거나 둘러댔었다. 그걸 기억하시다니.
사실 아까 책상에서 정리하던 논문들도 그 주제와 관련 있는 것들이다. 뭔가 할 수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미 뭐가 얼마나 연구가 돼 있는지를 조사해 보려고.
“아, 그거 지금 논문 좀 찾아보고 있어요.”
“그래?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그게 될지 안 될지 그것부터 빠르게 파악해봐. 그 국현이가 시뮬레이터[6] 갖고 있으니까, 거기서 최소한도로 구현해 봐서 가능성만 좀 확인해봐.”
저 놈의 ‘빠르게’란 말 좀 생략하면 안 될까? 그리고 ‘최소한도’로
구현해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 모르시나? 그래, 교수님이야
뚝딱뚝딱 잘 해내시겠지만, 난, 난, 교수가 아니다. 아시잖아요. 저는
교수님 옛모습처럼 뛰어난 대학원생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그래서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시뮬레이터부터 만지기는 너무 두려워서. 그 방대한 소스코드를 읽고
이해해야 새로운 것을 추가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정말 확실해질 때 노력을 들이고 싶은 것이다.
“너도 이제 프로포잘 준비해야 할 거 아냐.”
교수님은 기어이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결국 교수님과 나눈 커피 한 잔의 시간은 교수님께 진행 상황을 보고 하는 자리가 되었다. 정확히는 얼마나 진척이 없는지를 보고하는 자리가 되었지. 진행을
좀 시키고, 아니 생각이라도 좀 진중하게 해보고 나서 교수님을 만나 뵙고 싶었는데. 또 실망만 하셨겠지. 아니, 실망은
하셨을까? 애초에 기대조차 없겠지 뭐. 이런 것도 1~2년이어야지.
돌아온 자리가 어지럽다. 정리한답시고 벌려놓은 논문들이 오히려
전보다 더 지저분하다. 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나면 항상 단 게 당긴다.
방금 커피를 마시고 왔지만 믹스커피를 하나 탔다. 설탕과 프림을 남김없이 털어 넣었다. 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책상을 마저 정리해야 할까. 이 논문들부터 읽어야 할까.
프로젝트부터 시도해 봐야 할까. 시뮬레이터부터 설치해 봐야 할까. 어느 것 하나 쉽게 끝나는 일도, 하면 된다는 보장이 있는 일도
없다.
졸리다. 몇 시간 못 잔 잠이 갑자기 몰려온다. 어지러운 논문들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책상에 엎드렸다. 벌써 두 잔이나
마신 커피 덕에 잠은 들지 않는다. 머리 속이 밤하늘 같다. 어둡고
막막한데 별이 몇 개 반짝인다. 하지만 별들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오늘부터는 잘 해보려고 했는데.
[1] 윤선현,
<하루 15분 정리의 힘>, 위즈덤하우스
[2] Herbert Lui, Why You Should have a
Messy Desk, https://medium.com/busy-building-things/c6e7b9b5bc1f 안병찬 님이 번역한 http://www.ppss.kr/archives/14932 를 참고하였다.
[3] 초록(abstract): 논문 내용을 2~3문단으로 요약해놓은 글. 연구의 동기와 제안하는 내용, 핵심 결과들이 간략하게 포함되며 논문의 제일 앞에 수록되어 있다. 예능프로그램의
서두에 가장 웃긴 장면들을 모아서 방영해주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4] 테뉴어(Tenure): 교수에게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 일반적으로 교수는 첫 임용 때는 계약직이다. 몇
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나가다가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여 테뉴어 심사를 통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거나 해고한다.
따라서 테뉴어 심사를 받기 전까지 실적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
[5] 소스 혹은 소스코드(source code) 그리고
컴파일(compile): 스마트폰을 포함하여 일반적인 컴퓨터는 0과 1로만 구성된 기계어만을 해독해서 실행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0과 1만을 써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은 너무 어려우므로, 사람이 알아보기 쉬운 언어(물론 전공자들에게나 쉽지 일반인에겐 영어
단어들의 이상한 조합이다)를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작성한 다음, 이를
기계어로 번역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컴퓨터에서 구동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곤 한다. 이
때 ‘알아보기 쉬운 언어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소스코드’라고 하고, 이를 기계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컴파일’이라고 한다.
[6] 시뮬레이터(simulator): 실제
동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 혹은 기계. 중앙처리장치(CPU)는
실제로 반도체로 만들어서 테스트하기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따라서 중앙처리장치(CPU)의 동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새로운 기능 혹은 구조를 추가해 테스트해보며 연구하기도
한다.
#5. 시간 관리
뭔가 모를 불안감에 깨어 보니 구글캘린더[1]가 깜빡인다.
“09:00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 실습반”
조교 역할을 하러 갈 시간이다. 20분쯤 잔 건가….
저린 팔을 주무르며 일어나는 내 모습이 마리오네트[2] 같다. 구글캘린더가 날 조종하는 것 같다. 감정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프로그램을
깨우고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캘린더에 일정을 넣은 것은 분명히 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에 의해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소설을 읽었을 때, 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로봇을 만든 것은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방문한다는 가정만 없다면. 내가 지금 연구하는 컴퓨터도 인간이 뭘 시키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소위 인공지능이란 것마저 인간이 구현해놓은 것일 뿐이다. 1997년, 처음으로 체스 프로그램이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고 한다.[3]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반칙일 뿐이다. 인간 체스 챔피언과 대결한 것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명의
프로그래머였으니까. 여러 명의 프로그래머들은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들을 미리 슈퍼컴퓨터에 일러주었고
슈퍼컴퓨터가 대신 계산을 수행한 것뿐이다.
하지만, 내가 일정을 입력해둔 캘린더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지금, 로봇에 의한 인간 지배는 허상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나는 시간을 관리할 만한 의지와 능력, 그리고 곳곳에 수많은
시계마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캘린더에 모든 걸 맡겨둔 채 내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체스 프로그램 제작자들도 매번 말의 움직임을 고민하는 대신 말의 움직임을 대신 고민해주고 선택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든 거니까. 생각하기를 점점 더 귀찮아 하는 인간이 스스로 로봇을 만들고 거기에 지배 받기를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머리가 아직 멍하다. 느릿느릿 흐른다. 하지만 부유물이 잔뜩 떠다니는 느낌이다. 복잡하다. 카페인은 아직 심장을 간질인다. 심장이 빠르게 움찔거린다.
하지만, 조교 일은 하러 가야지. 주머니에 펜 하나만 찔러 넣고 컴퓨터 실습실로 향한다.
9시 3분 전, 건물에 도달했다. 9시 수업이 있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가고
있다. 나도 거기에 올라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빨리 걸어가는가?
아마 직접 물어본다면 모두가 “수업 가야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수업은 왜 가지? 신청했으니까. 신청은 왜 했지? 졸업 요건을 채우려고. 졸업 요건은 왜 채우지? 학사학위를 받아야 하니까. 학사학위는 왜 받지? 그래야 취업하기 좋으니까. 취업은 왜 하는데? 돈을 벌려고.
돈 벌어서 뭐하게?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먹고
사는 건 왜하는데? 음… 그럼 죽게?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일까? 물론, 다른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은 왜 가지? 신청했으니까.
신청은 왜 했지? 이 과목을 배우고 싶었거든. 왜
배우고 싶었는데? 의사가 되려고. 의사가 돼서 뭐하게? 우리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난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돼서, 할머니 같은 사람을 살릴 거야. 언제부터 그 생각을 했어? 대학 가려고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그리고 좀 더 고상한 방향으로도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은 왜 가지? 지식을 얻으려고. 지식은 왜 얻지? 배우고 싶으니까.
왜 배우고 싶은 건데? 배울 때 행복하니까. 왜
행복하려고 해? 불행한 건 싫잖아.
물론, 이런 괴상한 문답법을 거치지 않는다면, 혹자들은 “배움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라거나 “99%에게
유익한 지식을 창조해내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같은 질 좋은 문구를 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바삐 걷는 저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것이다. 돈 버는 게 인생의 목표인 자들마저, 지금 이 순간 움직이는 이유는
“수업 갈 시간이니까”일 것이다.
길에 쓰러진 사람을 돕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에 대해 한 심리학자가 조사해보았다.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심지어 길에 쓰러진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한 설교 준비를 시킨 직후에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절반도 안 되는 사람만이 쓰러진 사람을 도왔다고
한다. 하지만 양심만 문제인 건 아니었다. “가능한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자 10%도 안 되는 사람만이 쓰러진 사람을 도운 것이다.[4]
‘~할 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묻힌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목적까지도.
실습실에 도착하니, 앞에 있던 대장 조교가 오늘 실습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 전공을 가리지
않고 모든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프로그래밍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도 많이 들어야 해서
실습할 때 도움이 많이 필요하고, 그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미 여러 번 해봤던 조교라 내용도 다 안다. 뒷자리에 앉아 게임이나
켠다.
캔디크러쉬사가, 여전히 342판. 탐욕 알고리즘(greedy algorithm)[5]을 적용해볼까
싶다. 간단히 말해서, 현재 상황만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식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계속하면 궁극적으로는 최적해(optimal solution)를 찾게 될 수 있을 때 이 방식을 적용한다. 또, 많은 문제들에 탐욕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최적은 아니더라도 최적에 가까운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옆을 보니 다른 조교들도 다들 얼굴을 파묻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갑자기
지금 다 뭐하고 있는 건가 싶다. 탐욕 알고리즘을 적용한다면 지금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10~20분이면 끝날 이 시간에 굳이 다른 일을 하기도
그렇다. 논문을 읽기도 집중이 잘 안 될 것 같고. 그냥
게임이나 계속한다.
실습이 시작된다. 게임을 그만두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벌써 다섯 번째 실습이라 학생들의 얼굴도 꽤 친숙하다. 스무 살, 아무 것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흘려버리기 마련이지만.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미지 파일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요?”
“그거, 지난 시간에 했잖아요.”
“생각 안 나요.”
그냥 가르쳐 줄까, 하다가 자존심을 세웠다.
“과목 홈페이지 보면, 미디어 렉쳐 노트라고 있어요. 그거 보시면 나와요.”
잠시 뒤 돌아보니 다른 조교가 이미지 파일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가르쳐 주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든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이거 무슨 에러인지 모르겠어요.”
“봅시다…. 음, 여기 g, r, t라고 써있네요. 이거
g, e, t라고 쓰려던 것 맞죠?”
“헐, 그러네요?”
“원래 에러의 90%는 오타 때문에 나는 거예요. 힘내세요.”
한 건 올렸으니 다른 데로 가려는 걸 학생이 붙잡는다.
“조교님, 이거 실행 한 번만 시켜보고요.”
“넵,”
다시 학생이 만지는 컴퓨터를 쳐다본다.
“어? 왜 안 되지? 조교님, 이거 프로그램이 여기서 여기로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학생 말이 맞긴 한데, 코드에서 어디가 틀렸는지는 얼른 보이지
않는다.
“음, 그럼 여기다가 출력문을 써서 이 변수랑 이 변수 내용을
출력시켜 볼래요? 여기요.”
“네.”
“그리고 실행시켜 보세요.”
“이거 하면 뭐가 되는 건데요?”
“음…. 제가 생각할 시간을 벌어요.”
학생이 웃는다. 뭐, 사실이니까. 계속 코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래도 문제가 안 보인다. 이게 여기로 가서, 여기로 가야하는 것 같은데….
“실행됐어요.”
“이 값이 왜 이렇지? 아!
여기 이게 잘못 됐네요. 이 함수는 반환 값이 있는 게 아니라 파라미터를 직접 바꿔요.”[6]
“아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뿌듯하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든다.
“조교님, 첫 번째 과제 다 했는데요.”
“코드를 먼저 좀 볼까요? 음…. 실행시켜 보세요. 34랑 16을
넣어보시고요. 네, 잘 나오네요. 다음 과제 계속 하시면 됩니다.”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 실습조교를 하다보면 학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모르겠다고 징징대며 무조건 빨리 끝내려고만 하는 학생,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 그리고 이미 다 알아서 잘 하는 학생. 공통 필수 과목이라 어렵지
않은 내용만 가르치다보니 프로그래밍을 배운 경험이 조금만 있어도 거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실습 시간이 별 의미가 없다. 다 아는 것, 너무 간단한 것을 굳이 다시 한 번 해보는 것이다. 단지 학점만을
위해 실습에 참여한다. 그렇다고 이 부류의 학생들만을 위해 추가 과제를 내주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니
어쩔 수가 없다.
모르겠다고 징징대기만 하는 부류에게도 실습이 짜증날 뿐이다. 그들
역시 실습은 학점만을 위한 것이다. 자기는 전산학과에 진학하지 않을 테니 대충 해도 된다고 한다. 얼마 전 생물을 전공하는 친구가 나에게 프로그래밍을 물어보며 학부 1학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고 이야기해줘도 소용이 없다.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 이들만이 지금 배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보 같은 실수도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사실 수업
시간 때 이미 다 배운 것이지만)도 얻는다. 그러다보니 조교를
하면서도 많이 대화하게 된다. 친해져서 농도 많이 치게 된다. 참
예쁘다. 보람이 느껴진다.
조교 일이 끝나면 또 얼마지 않아 다음 일정이 있다. 그리고
또 다음 일정이 있다. 그 일정들 사이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분명
내가 결정한 일정들인데,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건지 시간이 날 관리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교를 하는 동안, 그러니까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을 돕는 동안만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관리하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순전히 학생이 질문하려고 올린 손만 바지런히 쫓아다녀야 하는 시간인데도, 내 존재가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너무 잘 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일정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그것의 관리를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효율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에도 탐욕 알고리즘이 통한다면, 지금 이 한 순간의 의미를 찾는 것이 궁극적인 최적일 텐데 말이다.
[1] 구글캘린더: 구글에서 제공하는 일정관리
서비스. https://www.google.com/calendar/
[2] 마리오네트: 인형 등의 물체에 줄을
달아 위에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 (설명의 출처는http://ko.wikipedia.org/wiki/%EB%A7%9D%EC%84%9D%EC%A4%91)
[3] 1997년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 블루는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 그랜드마스터 가리 카스파로프를 시간 제한이 있는 정식 대국에서 이겼다. http://ko.wikipedia.org/wiki/%EB%94%A5_%EB%B8%94%EB%A3%A8
[4] 리처드 와이즈먼, <괴짜심리학>. 인용한 부분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목사 vs. 자동차 판매상, 누가 더 정직할까”(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052)
[5] 알고리즘(algorithm):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순서대로 기술해 놓은 것. 가장 유명한 알고리즘으로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6] 몰라도 인생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_^
댓글 없음:
댓글 쓰기